헌재판결 이후-정당들은 헌법재판소를 비난만 해야 하나?
채진원(경희대 정치학 시간강사)
1. 갈등을 재생산하는 헌재의 결정
지난 10월 30일 야4당이 제출한 미디어관련법 권한쟁의심판소송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대략 신문법과 방송법의 처리과정에서 대리투표, 일사부재리의 원칙 위배 등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지만, 법안의 가결 선포는 ‘무효’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판결을 두고 헌재에 대한 극심한 비난에서부터 헌재결정 존중에 이르기까지 여야와 주요언론들 및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하게 표출되었다. 하지만 헌재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여야와 정파적 언론과 시민들은 미디어관련법 처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고 더 큰 홍역을 치러야 만 할 것 같다. 결국 이러한 과정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헌재가 현재의 갈등을 조정하거나 약화시키기는커녕 더 큰 갈등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돌이켜 보면, 헌재의 이 같은 부정적인 판결효과는 소송을 제기하는 주체가 여든 야든 상관없이 관습처럼 되풀이 되고 있는 듯하다. 일련의 헌법재판소의 판결들 즉, 대통령탄핵소추에 대한 기각과 행정수도이전법에 대한 위헌판결 및 행정중심복합도시법에 대한 각하결정에서도 그랬다. 일련의 이 같은 판결과 그것의 효과들을 볼 때, 과연 헌재의 정치참여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고 있는지 궁금하다. 혹시 헌재의 이 같은 정치참여가 오히려 민주주의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지 의심된다.
2. 정치의 사법화와 그 의미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란 말이 있다. 다른 말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politics by other means)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법부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으로서, 국가의 중요한 정책결정과 정책갈등 및 정치적 경쟁이 정당과 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과정’이 아닌 검찰, 법원, 헌재중심의 ‘사법적 과정’으로 해소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입법권력의 정치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하는 각종 정치적 갈등과 쟁점을 최종적으로 헌법해석권을 가지고 있는 헌법재판소나, 대법원 그리고 사전단계의 검찰을 정점으로 하는 사법권력에 기대어 해결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법부의 정치참여 현상 즉, 사법부에 의한 정치적 판결과 결정은 그간의 헌재판결이 보여준 경험적 효과처럼 민주주의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보다는 부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법부에 의한 판결과 정치적 결정은 민주주의에서 강조되고 있는 충분한 대화와 토론 및 공론장의 여과없이 독자적인 집단인 사법부에 의해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법부의 승패결정과정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발생하는 선호와 이익 및 정체성의 변화를 통한 공공선 추구 및 갈등해소와 사회적 합의라는 민주주주의의 이상적 지향점에 도달하기 어렵고, 따라서 민주주의의 장을 축소하는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의 사법화가 가진 핵심적인 문제는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지 않은 권력집단에 의해 국민의 의사와 의지가 포획됨으로써, 정치영역이 축소되고 민주주의가 화석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정치의 사법화 현상의 배경은?
그렇다면 정치의 사법화 현상의 배경은 무엇일까? 그 핵심에는 정당이 사법부를 활용하려는 단기적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즉, 정당 간 권력경쟁의 수단으로 사법부를 활용하려는 이해를 말한다. 상대당과의 정치적 경쟁을 유권자를 놓고 그것의 지지획득이라는 민주적 방식이 아니라 사법적 판결이라는 다른 수단에 의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즉, 민주주의가 공고화 될수록 정당들의 정치적 경쟁은 경쟁의 최종 심판자인 유권자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찌보면 손 쉬운(?) 사법부에서 찾으려는 단기적 이익 때문이다. 물론 사법부의 판결과 결정에 의한 문제해결은 승자와 패자를 명백하고 스릴있게 가르기 때문에 효율적이고 효용이 큰 부분도 있다.
하지만 경험해서 드러났듯이, 헌재의 의한 해법은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며, 모두를 불만족스럽게 만든다. 왜냐하면, 사법적 영역은 법의 논리라는 점에서 볼 때,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제기된 의견이 서로 소통되고 토론되면서 설득되는 의견의 영역인 ‘정치의 영역’과는 다르게 옳고 그름을 따지는 즉 진리를 따지는 ‘철학영역’ 또는 ‘윤리영역’으로 전환시켜 승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사법적 영역에서는 정치적 과정이 제공하는 다양한 의견간의 차이가 존중받지 못하고 승패의 관점에서 적대적 관계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정당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사법부에 들고 가는 정당의 사법화는 자제될 필요가 있다.
4. 정당정치의 반성과 그 정상화가 실마리
그렇다면 이 같은 정치의 사법화 또는 사법의 정치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 사법부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국민에 의해 동의받지 않은 권력을 동의받도록 하는 배심제, 재판과정의 투명화 등 제반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선 너무도 뻔한 답이지만 정당정치의 반성과 그 정상화가 먼저라 생각된다.
결국 정당정치의 정상화문제는 민주화 이후 시대상황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정당모델 찾기와 관련되어 있다. 즉 진보의 방향 혹은 보수의 방향이라는 하나의 목소리로 나아가려는 극단주의와 편향성을 경계하면서, 생각과 의견의 다양성과 복수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정당모델은 결국 말과 대화를 중심에 놓는 가운데 통합과 화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전환기적 시대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다양성과 복잡성 및 유동성이 커지는 민주화 이후 시대에는 ‘추상적인 이념’에 기초하기보다는 ‘시민들의 구체적인 삶’에 기초한 다성악(多聲樂)적인 정당모델이 필요하다. 다성적인 정당모델은 다른 말로 시민사회와 네트워크하면서 토의민주주의가 강조되는 ‘원내정당모델’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다성악적인 진보와 어울리는 원내정당모델이 정착되기 시작한다면 다성악적인 보수와 어울리는 원내정당모델이 짝을 이룰 가능성이 커질 것이고, 결국 다성악적인 진보와 다성악적인 보수가 등장하여 경쟁할 때 중도실용의 길은 열리고 그것의 결과는 정당정치의 정상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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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경희대 정치학 시간강사)
1. 갈등을 재생산하는 헌재의 결정
지난 10월 30일 야4당이 제출한 미디어관련법 권한쟁의심판소송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대략 신문법과 방송법의 처리과정에서 대리투표, 일사부재리의 원칙 위배 등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지만, 법안의 가결 선포는 ‘무효’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판결을 두고 헌재에 대한 극심한 비난에서부터 헌재결정 존중에 이르기까지 여야와 주요언론들 및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하게 표출되었다. 하지만 헌재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여야와 정파적 언론과 시민들은 미디어관련법 처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고 더 큰 홍역을 치러야 만 할 것 같다. 결국 이러한 과정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헌재가 현재의 갈등을 조정하거나 약화시키기는커녕 더 큰 갈등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돌이켜 보면, 헌재의 이 같은 부정적인 판결효과는 소송을 제기하는 주체가 여든 야든 상관없이 관습처럼 되풀이 되고 있는 듯하다. 일련의 헌법재판소의 판결들 즉, 대통령탄핵소추에 대한 기각과 행정수도이전법에 대한 위헌판결 및 행정중심복합도시법에 대한 각하결정에서도 그랬다. 일련의 이 같은 판결과 그것의 효과들을 볼 때, 과연 헌재의 정치참여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고 있는지 궁금하다. 혹시 헌재의 이 같은 정치참여가 오히려 민주주의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지 의심된다.
2. 정치의 사법화와 그 의미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란 말이 있다. 다른 말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politics by other means)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법부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으로서, 국가의 중요한 정책결정과 정책갈등 및 정치적 경쟁이 정당과 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과정’이 아닌 검찰, 법원, 헌재중심의 ‘사법적 과정’으로 해소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입법권력의 정치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하는 각종 정치적 갈등과 쟁점을 최종적으로 헌법해석권을 가지고 있는 헌법재판소나, 대법원 그리고 사전단계의 검찰을 정점으로 하는 사법권력에 기대어 해결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법부의 정치참여 현상 즉, 사법부에 의한 정치적 판결과 결정은 그간의 헌재판결이 보여준 경험적 효과처럼 민주주의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보다는 부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법부에 의한 판결과 정치적 결정은 민주주의에서 강조되고 있는 충분한 대화와 토론 및 공론장의 여과없이 독자적인 집단인 사법부에 의해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법부의 승패결정과정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발생하는 선호와 이익 및 정체성의 변화를 통한 공공선 추구 및 갈등해소와 사회적 합의라는 민주주주의의 이상적 지향점에 도달하기 어렵고, 따라서 민주주의의 장을 축소하는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의 사법화가 가진 핵심적인 문제는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지 않은 권력집단에 의해 국민의 의사와 의지가 포획됨으로써, 정치영역이 축소되고 민주주의가 화석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정치의 사법화 현상의 배경은?
그렇다면 정치의 사법화 현상의 배경은 무엇일까? 그 핵심에는 정당이 사법부를 활용하려는 단기적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즉, 정당 간 권력경쟁의 수단으로 사법부를 활용하려는 이해를 말한다. 상대당과의 정치적 경쟁을 유권자를 놓고 그것의 지지획득이라는 민주적 방식이 아니라 사법적 판결이라는 다른 수단에 의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즉, 민주주의가 공고화 될수록 정당들의 정치적 경쟁은 경쟁의 최종 심판자인 유권자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찌보면 손 쉬운(?) 사법부에서 찾으려는 단기적 이익 때문이다. 물론 사법부의 판결과 결정에 의한 문제해결은 승자와 패자를 명백하고 스릴있게 가르기 때문에 효율적이고 효용이 큰 부분도 있다.
하지만 경험해서 드러났듯이, 헌재의 의한 해법은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며, 모두를 불만족스럽게 만든다. 왜냐하면, 사법적 영역은 법의 논리라는 점에서 볼 때,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제기된 의견이 서로 소통되고 토론되면서 설득되는 의견의 영역인 ‘정치의 영역’과는 다르게 옳고 그름을 따지는 즉 진리를 따지는 ‘철학영역’ 또는 ‘윤리영역’으로 전환시켜 승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사법적 영역에서는 정치적 과정이 제공하는 다양한 의견간의 차이가 존중받지 못하고 승패의 관점에서 적대적 관계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정당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사법부에 들고 가는 정당의 사법화는 자제될 필요가 있다.
4. 정당정치의 반성과 그 정상화가 실마리
그렇다면 이 같은 정치의 사법화 또는 사법의 정치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 사법부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국민에 의해 동의받지 않은 권력을 동의받도록 하는 배심제, 재판과정의 투명화 등 제반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선 너무도 뻔한 답이지만 정당정치의 반성과 그 정상화가 먼저라 생각된다.
결국 정당정치의 정상화문제는 민주화 이후 시대상황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정당모델 찾기와 관련되어 있다. 즉 진보의 방향 혹은 보수의 방향이라는 하나의 목소리로 나아가려는 극단주의와 편향성을 경계하면서, 생각과 의견의 다양성과 복수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정당모델은 결국 말과 대화를 중심에 놓는 가운데 통합과 화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전환기적 시대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다양성과 복잡성 및 유동성이 커지는 민주화 이후 시대에는 ‘추상적인 이념’에 기초하기보다는 ‘시민들의 구체적인 삶’에 기초한 다성악(多聲樂)적인 정당모델이 필요하다. 다성적인 정당모델은 다른 말로 시민사회와 네트워크하면서 토의민주주의가 강조되는 ‘원내정당모델’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다성악적인 진보와 어울리는 원내정당모델이 정착되기 시작한다면 다성악적인 보수와 어울리는 원내정당모델이 짝을 이룰 가능성이 커질 것이고, 결국 다성악적인 진보와 다성악적인 보수가 등장하여 경쟁할 때 중도실용의 길은 열리고 그것의 결과는 정당정치의 정상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