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에 도움이 될까 퍼옵니다..
홍준표 의원의 말과 한국적인 연합정치의 길
채진원(경희대 시간강사)
1. 홍준표 최고위원의 인터뷰 내용
7월 16일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이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안상수 대표는 친이강경에, 친박과 대척점에 섰던 분이다. 당내 화합보다는 당을 집행기구로 전락시키고 청와대 정책을 일방적으로 집행해왔던 사람”이라며 안상수 신임 당 대표의 당선을 정치역행이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홍준표 최고위원은 “국민과 일반 대의원들의 바람은 한나라당이 화합, 변화, 개혁하라는 것인데 실제로 투표해보니 지금까지 비화합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 당 대표가 돼 버렸다”며 “막판에 가서 또 강성 친이들이 나서 윗분의 뜻을 내세우며 또 줄 세우기하는 식으로 전당대회를 치렀다. 이 체제가 정당한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상으로 안상수 신임대표에 대한 홍 위원의 비판은 개인적인 감정도 섞어 있다는 점에서 100% 신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뷰 내용 중 “막판에 가서 또 강성 친이들이 나서 윗분의 뜻을 내세우며 또 줄 세우기하는 식으로 전당대회를 치렀다. 이 체제가 정당한가”라는 그의 지적은 매우 신뢰할 만하다.
즉, 홍 위원의 말을 통해 드러난 것은 두 가지 사실이다. 첫째는 다름 아닌 3김시대에 지배적인 관행이었던 의원 줄세우기 관행과 보스정치가 아주 오래된 관습처럼, 2010년 대한민국 집권당에서도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3김이 정치적으로 물러간 지 20여년이 넘었고, 이른바 보스정치를 혁파하기 위하여 의원들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당을 원내정당화하자는 내용으로 정치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된 지가 10여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청와대의 외부간섭이 여전히 뿌리 깊게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역으로, 이러한 대통령과 청와대의 의원 줄 세우기 관행이 쉽게 변하지 않고 저항에 부딪히면서 오랫동안 반복되는 배경에는 무엇인가 구조적인 차원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암시해준다는 점이다.
2. ‘중앙중심의 소용돌이 정치패턴’
그렇다면 숱한 정치개혁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청와대가 의원들의 줄 세우기 등 보스정치가 계속되도록 하는 구조적인 차원의 문제란 무엇일까? 정치개혁에 저항하는 한국정치의 구조화된 관행이란 무엇일까?
이것에 대해 여러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우선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를 쓴 그레고리 헨더슨의 입장을 참조해보면 좋을 것이다. 일찍이 외교관 출신의 미국 정치학자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의 정치를 ‘소용돌이 정치’(The politics of vortex)라고 보았다. 사회의 모든 요소가 중앙권력을 향해 소용돌이쳐 몰려 들어가는 현상을 한국 정치의 구조화된 특징으로 보았다. 즉, 그는 고대 삼국시대 이래로 조선과 일제시대를 거쳐 대한민국의 수립과 1960년대까지 한국정치에서 이 같은 소용돌이 정치가 아주 오래된 관습으로 일상화되었다고 보았다.
여기서 그가 소용돌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부딪치면 마치 찬 공기와 더운 공기의 세력이 만나서 대기가 불안정해지고 더운 공기가 솟아오르거나 찬 공기가 가라앉을 경우 토네이도와 같은 거센 소용돌이의 바람이 형성되는 것과 같은 상황을 비유하는 것이다. 즉, 일단 소용돌이가 빠르고 거세게 회전하면 할수록 그 회오리 속으로 주변의 나무나 가재도구, 자동차, 심지어 사람까지 빨려 들어가는 파괴력을 지닌다.
그렇다면 한국정치가 소용돌이 정치를 반복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헨더슨은 이런 현상의 배경을 민주주의 선진국인 미국과의 비교 시각을 통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첫째, 한국이 인종ㆍ언어ㆍ문화의 동질성이 너무 강해 다양성이 부재하여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이 부재하여 패싸움(파당싸움)을 잘한다고 지적하였다.
둘째, 아래로부터 시민사회(시민결사체)와 중간조직(지방자치)이 발전하지 않아 중앙권력이 분산되지 않았고, 따라서 중앙집권화된 정치체제가 고착화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하였다. 셋째, 첫째, 둘째의 배경에 따라 권력투쟁이 중앙차원으로 집중되고 그 방식도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선과 악과 같은 이분법적인 수준에서 all or nothing(전무 아니면 전부)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되었다. 넷째, 이러한 all or nothing(전무 아니면 전부)의 방식은 ‘정파적․이념적 극단주의’를 순화시켜 정치적 다양성을 인정하거나 조정․타협시킬 중도적인 중간세력의 부재를 양산하여 중앙집권화된 체제를 고착화했다고 언급하였다.
3. 점진적인 정당개혁과 연합정치의 길
위에서 논의하였듯이, 대통령과 청와대의 의원 줄세우기 관행이 쉽게 개선되지 않는 배경에는 헨더슨이 지적한 것처럼,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 온 관행인 중앙집권화된 정치체제가 의원과 정당의 자율성을 규제하는 요소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만큼 정당개혁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치개혁과 정당개혁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다만 그 방식을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장기적인 이익과 시각에서 점진적인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교훈일 것이다. 개혁이란 결국 과거의 오래된 관행과의 투쟁으로, 오랜 관행을 변화시키는 일이란 점에서 매우 힘든 일이란 것을 깨닫고, 급진적으로 추진할 경우 그 역풍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점진적인 정당개혁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정당개혁의 모델로는 산업화와 국가건설기에 적실성을 가졌던, 단일한 이념과 정파성 그리고 철의규율을 강조하면서 특정한 계급과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중정당모델보다는 원내정당모델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원내정당모델은 후기산업화와 지구화 그리고 탈냉전과 탈이념, 정보화라는 전환기적 시대상황속에서 복잡하고 유동적인 이해관계를 의원들의 자율성과 소통능력 그리고 토의민주주의를 통해 해결하고자 정당의 개방성과 포괄성을 추구한다. 무엇보다도 원내정당모델은 다성악적인 목소리가 충만하도록 다양성과 개방성을 추구하는 모델이다.
이 원내정당모델의 긍정성은 무엇보다도 다양한 정치세력들과 정당간의 협력과 연대활동(선거, 정책, 정부구성)및 연합정치에 비교적 잘 반응하고,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대중정당모델과 같이 특정한 이념성과 정파성을 고집하여 배타성을 강조하기보다는 다양한 정치세력의 존재를 인정하는 가운데 토의민주주의에 입각한 공공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의견조정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의 한국적 상황에서 진보세력의 정치경험은 유럽의 산업화와 국가건설기에 유행했고 적실성을 가졌던 대중정당모델과 그 모델에 따라 노동세력이 사회주의적 노동자정당을 만들어 자유주의 세력을 밀쳐내면서 보수당-노동당 중심의 양당체제를 구축했던 경로를 똑같이 따라가는 전략은 시대적실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후기산업화, 지구화, 탈냉전, 탈이념, 정보화라는 전환기적 시대상황이 비교적 단일한 사회적 균열구조를 복잡하고 유동성있게 파편화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 만큼 단일한 정체성을 형성할 수 없기 때문에, 유럽과 같은 단일한 이념과 정파 및 계급노선에 기반한 대중정당모델과 보수-노동 양당중심의 정당체제가 구축될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약하다.
노동자만 보더라도, 과거와 같은 단순한 정신노동자와 육체노동자간의 분화가 아니라 무수한 직종에 따라서 분화되었고 최근에는 다양한 수준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발생하였으며, 노조원과 비노조원이라는 균열측도 만들어 냈다. 과거와 같은 단일한 노동자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전환기적 시대상황에 부합하기 위한 한국적인 경로에는 원내정당모델과 이것에 기반한 정당간의 연대와 연합정치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다양한 수준의 세력들이 연대와 연합정치에 나설 수 있도록 이니셔티브를 주기 위하여, 다성악적인 원내정당모델을 내실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민노당, 국참당 등과의 정치연합을 위해 변화하기 시작하면 한나라당도 이것의 전철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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