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척 좋아하는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는 바라타족 형제들간의 대전쟁을 그린 서사시다.
완역본이 나오면 줄을 서서라도 사고 싶지만 그럴 일은 영원히 없을 것 같다. 분량이 워낙 많아 번역도 어렵고
팔리지도 않을테니까. 덕분에 700여쪽짜리 단행권으로 읽고 끝마칠 수 있게 되었다.
마하바라타 시대의 전쟁은 아주 법도가 있게 치러졌다. 장수는 장수끼리만 싸워야 한다. 병졸은 병졸끼리 싸운다. 공격을 할 때는 상체만 공격해야 하며 하체를 공격하면 비겁한 행위로 지탄을 받는다. 기습은 없고 오직
정당하게 싸워야 한다. 전투를 벌이는 시간은 해가 떠 있는 시간 뿐이다. 해가 지면 모든 싸움은 멈추고 난
동안 적으로 싸웠던 사람들이 저녁에는 상대방 진지를 찾아가 술도 마시고 대담도 할 수 있다. 전투와 관계
없는 아녀자들에 대한 공격은 절대 금지된다. 그런 전투에 대한 규칙이 이 전쟁을 통해서 철저히 깨지게 되었다. 그것도 선한 자로 평가받는 주인공측을 통해서. 그 뒤 모든 전쟁에서 기습과 매복은 전쟁의 최고 기술이 되었다.
당 대회는 끝났다. 당원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던 4번 안건에 대해서는 제대로 표결도 해보지 못하고 유회되고
말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별로 끌리지 않는다. 유회 전술을 구사한 측이
고도의 도덕률을 어겼다고 비난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그들을 비난하긴 어렵다. 그들이 우리 당이
만든 룰을 깨뜨린 것은 아니었으니까.
진정 비판받아야 할 당사자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4번 안건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었으면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과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러나 당 대회 당일 느꼈던 바에 의하면 철저한 준비는 거의 없었다.
전술도 없었고 노력도 없었고 아무 것도 없었다. 사실 이미 예견된 것이기조차 했다. 이게 우리의 현 주소이고
실력이다.
이제 약속대련의 시간은 지나갔고 진검승부가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천하태평이다. 열심히 준비하고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뛰어야함에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구슬은 서말이나 있지만 그것을 꿰고자 나서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그 구슬들을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 헌상하기만 바라고 있을 뿐이다.
근거없는 낙관주의 때문인지 아니면 그간 관행화된 복지부동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샌 움직이는 놈만
바보가 되는 세상인 것 같은 느낌이다. 그나마 움직이는 사람들도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개별적, 파편
적으로만 움직여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아주 이상한 세상이 되다
보니 우리 당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다.
관을 보아야 눈물을 흘린다는 무협지에 잘 나오는 말도 있지만 우린 아마 죽어봐야 그 처참함을 느낄 것 같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경매로 집을 빼앗긴 사람들처럼 처절한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