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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자전거나 버스로 출근을 하다보면 꼭 넘어야 하는 고개가 하나 있습니다. 쑥고개. 그 정상에서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펼쳐지는 회한의 풍경, 봉천12-1 철거현장입니다. 자연스레 그쪽으로 돌려지는 모가지를 애써 꼿꼿이 세우고 정면을 응시한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세입자 대책위가 조합에 대해 정당한 이주비와 임대아파트 보장을 요구하며 이주를 거부하여 협상이 시작되었으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협상이 지지부진하던 중, 세입자대책위 부위원장을 비롯한 회원들은 위원장 몰래 조합과 협상을 하고야 맙니다. 위원장이 소위 '강성'이라서 요구조건이 하나라도 안받아지면 협상 자체를 무위로 돌릴 수 있다는 판단때문입니다. 일종의 조직내 쿠데타인 셈인데 쿠데타 세력의 사정도 딱한 것이 함정입니다. 보증금 100만원, 50만원 하는 집에서 월세 10만원~15만원 내면서 살았던 이 분들 입장에서 조합과 합의만 하면 하시라도 받을 수 있는 이주비용 1,000만원~1,500만원은 어쩌면 '대가없는 구제금융 자금'이자 이스라엘 백성이 사막에서 받은 '만나'같은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이 협상은 '내 임기내 강제철거는 없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측면지원때문에 개시된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입자 대책위 회원들이 요구한 것은 법으로 보장된 정당한 이주비용과 임대아파트 였습니다. 이 법으로 보장되어 당연해 보이는 권리보장을 주장하는 이유는 이것을 보장받지 못하고 쫓겨나듯 거처를 옮겨야 했던 사람들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서울시장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면 이런 문제 정도는 직접 해결했어야 합니다. 그 당시 남아있던 세입자들을 포함해서 이미 이주했지만 권리를 모른 상태에서 비참하게 짐을 싸야 했던 사람들을 모두 모아서 정당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서울시장으로서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다시 쿠데타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강성인 위원장이 없는 사이에 부위원장과 절대다수의 회원들은 조합과 합의서를 작성했지만 그래도 위원장의 안위가 염려되었습니다. 한 동네에서 짧게는 3년, 길게는 20년을 이웃으로 지내며 가난을 관심과 사랑으로 이겨냈던 각별한 그들이라 비록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았던 것이었죠. 그래서 조합장에게 위원장에 대한 고소고발은 없도록 해달라는 것과 위원장이 받아야 할 이주비 등 정당한 보상은 약속해 달라는 것을 요청하여, 조합장에게 사업지연에 대한 사과를 하면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듣습니다. 대책위 회원들이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 협상내용에 서명을 해 버렸다는 사실과 그 직후 시작한 철거작업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대책위원장은 장애가 있는 다리를 끌고 철거현장으로 달려가 그 자리에 주저 앉는 갸날픈 저항을 시도했지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가난한 세입자들이 시공업체와 철거업체, 조합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토요일날 시작한 철거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바라만 봐야 했던 대책위원장에게 그 다음날 쿠데타 세력의 대표격인 대책위 부위원장이 만나자고 연락을 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냈고 이렇게 된 마당에 위원장이 조합장에게 사과를 하면 우리가 약속을 받아 놓은 게 있으니 위원장이 고생한 대가는 받을 수 있도록 해 보겠다는 부탁 아닌 부탁을 합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세입자 대책위 위원장은 조합장을 찾아가 그냥 사과만 한 게 아니라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감히 세입자 주제에 하늘 같은 '토지 등 소유자'에게 개긴 죄, 세입자 대책위를 만들어 '토지 등 소유자'들이 만든 '조합'을 능멸한 죄, 하늘 위의 하늘 같은 시공업체와 철거업체의 공기를 늘어나게 한 씻지 못할 죄에 대해 용서를 빌었습니다.

이렇게 세입자들의 대표가 '토지 등 소유자'에게 죄를 빌고 용서를 구하고 있을때 박원순 시장은 사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박원순 시장을 탓하고, 이들 세입자들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시장께는 봉천 12-1구역의 문제가 이해관계인들의 원만한 합의로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고 보고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이건 시장의 탓이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지에 대해 우리 모두가 깊게, 정말로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십년을 한 동네에서 가난을 벗삼아 오손도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쫓겨나는 동안에도 서울시는 '마을'만들기 사업에 예산을 쓰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마을입니까? 토지등 소유자들만을 위한 마을을 만들 요량이면 괜찮습니다만, 그것이 아니라면 이 마을 파괴의 현장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늦었지만 저는 서울시장이 이들을 만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을 만나서 위로해 달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분들을 서울시장의 주택정책 현장보좌관으로 모시고 이들이 겪은 억울한 경험이 다른 마을에서 확대재생산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그야말로 진지하게 탐구해야 합니다.

세입자 대표가 소유자 대표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마을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맙시다!
  • 길 위의 날들 2012.10.17 14:57

    잘 읽었습니다.

  • 신희철 2012.10.18 08:52

    가슴이 아프네요... 대부분 마을만들기 사업이든 마을 잔치 등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마을에 거주하는' 건물주이고 세입자 주민들은 정보도 알기 어렵고 참여는 더욱 어렵다보니 세입자가 배제되는 구조가 계속 재생산되는 것 같아요...T.,T 성북구도 개발 반대 모임을 지원하고 있는데 현재 단계는 가옥주 중심이라 많이 아쉬운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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