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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5+4 참여는 올바른 전술이었다."는 글을 쓰고 레디앙에 가보니 아래와 같은 글이 있더군요. 대체로 동의하는 글입니다. ---------------------------------------------------------------------------------------------------
"고립 아니면 투항?…양자택일 넘기 위해" | |
그러나 이러한 판단에 기초해서 야권연합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쪽은 진보정치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하거나 그것을 대기론적으로 연기(그러나 언제까지?)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전혀 답할 수 없게 됩니다. 반대로 독자적 진보정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진보신당의 현재와 같은 고립을 어떻게 설명하고 타개할 것인지를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는 곤혹스러운 문제와 맞닥뜨려야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 편에서 제기된 문제가 해결불가능한 문제라고 한다면, 두 번째 편에서 제기된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비대칭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정치(진보신당은 그 일부이며 여기서 민노당은 이제 제외하겠습니다)가 고립된 것은 진보신당이 단순히 5+4에 참여했거나 끝까지 참여하지 않고 도중에 테이블을 빠져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5+4를 비밀주의와 대중에 대한 배제적 정치의 장소로 만들면서 '홀로' 참여하고 '홀로' 빠져 나왔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진보신당이 5+4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진보정치가 과연 현재와 같은 고립을 면할 수 있었을까요? 고립을 완전히 면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어느정도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모종의 추동력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글쎄요. 저는 의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5+4를 보이코트 하는 것 역시 정확히 정치 하기를 포기하는 쪽으로 귀결될 뿐이라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다양한 입장차이를 중심으로 갈등하고 충돌하는 것을 의미하는 한에서 자기들끼리 그 나물의 그 밥을 놓고 최후의 만찬을 엄숙하게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정치다운 정치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정치를 하기 위해서 진보정치는 처음부터 5+4에 갈등적인 방식으로, 충돌의 방식으로 참여했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5+4를 정치의 '쟁점'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참여했어야만 합니다. 진보정치의 현재적 고립은 사실 이렇게 봤을 때, 5+4를 대중정치의 장 및 쟁점으로 만들어 내지 못하고, 정치공학적인 선거구 분할 문제나 논의하는 밀실 속의 공간으로 만들어 냄으로써(또는 그렇게 만드는 데에 무력하게 동의해줌으로써) 대중들로부터 스스로의 고립(!)을 자처한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설사 이 밀실 안에서 정책적 이슈들에 대한 야당간 논쟁이 있었다고 해도(아마도 추측컨대 있었던 것 같기는 합니다), 그것이 사태를 전혀 변화시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슈들은 여전히 대중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중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논쟁이 탁상공론 외에 다른 그 무엇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5+4의 틀을 깨고 나왔을 때, 진보신당은 사실 여부를 떠나 대중들의 눈에 그냥 자기들 밥그릇이나 챙기는 이기적 집단으로 밖에 인식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진보신당은 처음부터 이러한 비민주적이고 대중 배제적인 비밀주의를 거부하고 5+4를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민주적인 토론의 장으로 전환시킬 것과 함께, 보수야당 들러리 격인 시민단체들만이 아니라 다른 민중운동단체들을 대거 참여시킴으로써 5+4를 확장시킬 것을 요구했어야 합니다. 이러한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투쟁하고, 그 투쟁 속에서 제반 민중운동단체들의 조직화 그 자체에 또한 나섰어야 합니다. 만일 그랬다면, 보수야당들이 이러한 요구를 끝까지 거부할 때 진보신당은 그들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면서 거기에서 갈라져 나올 수 있는 절호의 정치적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만일 그랬다면, 진보신당이 갈라져 나왔을 때 그것이 자리싸움, 밥그릇 싸움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대중적으로 어느정도 각인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반대로 요구가 관철되어 논쟁이 공개적으로, 대중적으로 진행되었다면, 그 과정 속에서 현재 야당간 쟁점이 무엇인지를 알려나갈 수 있었겠지요. 그야말로 대중적인 방식으로 정치를 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이러한 경우에라도 진보신당 및 진보정치는 최종적으로 고립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진보정치의 힘이 약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그러한 '정치적' 과정을 통한 고립이었다면, 적어도 이후에 그 고립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추동력을 얻을 수 있는 고립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어차피 "신자유주의 좌파"가 지방권력 및 정권 장악에 성공한다고해도 이들이 신자유주의를 반성하고 포기하지 않는 한에서 이들은 대중들 앞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그들을 뽑아준 대중들 자신의 손에 의해 권좌에서 끌려내려올 운명에 처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점점 심화되는 현재의 경제 위기 또한 이들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만들 뿐입니다. 민주노동당 또한 지금 보수야당과 함께 웃고 있지만, 오늘 그들이 들이키는 술잔이 머지 않아 그들에게 독배가 되어 돌아올 것 또한 분명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일이 일어 났을 때, 바로 그때 진보신당 및 진보정치가 대중들에게 어떤 대안으로 다가갈 수 있는가는 전혀 정해져 있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대중이지만(계급이 아니라), 이 대중은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대중은 다시 우익적이거나 심지어 과거보다 더 우익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이 더 좌익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마찬가지로 열려있음을 봐야합니다. 누가 이 대중이라는 변덕 많은 행운의 여신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요? 누가 이 행운의 여신을 잡을 수 있는 역능을 자신의 내부로부터, 또한 외부로부터 찾아낼 수 있을까요? 물어 봅니다. 적어도 진보적 대중정치의 플랜을 지금부터 지체 없이 짜나가고, 좌파적이면서 구속력있는 대중조직들과 정당조직의 연합의 틀을 빠른 시일 안에 마련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차대한 과제라는 점을 이번에도 깨닫지 못한다면, 진보정치는 또 한 번 앞서 말한 딜레마, 즉 '고립인가? 투항인가?'의 딜레마 속에서 갈갈이 찢겨지는 일을 반복하게 될 것 같습니다. '고립인가? 투항인가?' 이 양자택일을 넘어서는 일에 모두가 지혜와 힘을 모아야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
2010.06.09 11:32
"고립 아니면 투항?…양자택일 넘기 위해" [펌/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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