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 - http://ohmyphysica.tistory.com/entry/심상정은-왜-눈물을-흘렸을까
심상정은 왜 눈물을 훌렸을까?
6.2 지방선거는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를 한나라당이 가져가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야당이 승리한 선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명숙과 유시민이 낙선하긴 했으나 예상 밖의 접전을 벌였고, 기초단체장이나 광역의원에서 물갈이가 상당했으며 여당의 텃밭인 강원 경남에서 친노인사들이 과반득표로 당선됐다.
서울에서 한명숙 후보가 간발의 차로 낙선하자 일각에서는 노회찬 후보의 완주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를 계기로 진보신당의 존재의의와 성과 및 한계를 둘러싼 논의들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미 심상정 후보가 투표 3일을 남기고 전격 사퇴하면서 진보신당에 대한 뒷말은 예견되었는지도 모른다.
미리 밝혀두자면 나는 노회찬 후보에게 한명숙 낙선의 책임을 묻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회찬 때문에 한명숙이 떨어졌다는 주장보다는, 이를테면 심은하가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지 않은 결과 지상욱 후보가 오세훈의 표를 많이 가져가지 않아 오세훈이 당선됐다는 얘기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너도 후보단일화 못한 노회찬을 결국 욕하려는 것이냐”고 오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점을 미리 확실히 해두고서, 나는 이번 선거를 계기로 한국 진보운동에 대한 몇 가지 느낌을 적어보려 한다. (나는 학생운동을 지금의 진보진영 풀에서 했었고 그 뒤로는 선거 때마다 투표한 것 말고는 진보정당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평범한 유권자일 뿐이다.)
먼저, 심상정 후보는 왜 사퇴했을까? 나도 그의 결정을 쉽게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 몇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국민의 이명박 정권 심판의 뜻을 받드는 데 저의 능력이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합니다.” (기자회견문 중)
“왜냐하면 저는 현재 국민들의 엠비심판의 바람은 단순히 보수세력과 자유주의세력의 다툼, 또는 과거정권으로의 회귀로만 폄하될 수 없는 역사적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 중)
선거공학적인 혹은 진보신당 내부의 디테일을 다 빼고 얘기하면 결국 반MB가 키워드였다. 사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군사독재 치하에서 민주화운동을 할 때부터 이분들은 가장 앞장서서 반정부 투쟁을 해 왔던 사람이, 왜 지금은 반MB라는 화두에서 부족한 능력을 자인하게 되었을까? 그러나 한편 나는 이 한마디에 모든 얘기가 들어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지지자 입장에서 진보정당에 내가 지금까지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한국 사회의 일반 민주주의의 문제에 진보정당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사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은 노무현 탄핵 때였다. 시민들은 이미 길거리로 나가 탄핵의 부당함에 저항하고 있었는데 당시 민노당은 어영부영하다가 “노무현에 반대하지만 탄핵은 잘못되었다”는 성명을 냈다.
민노당이 노무현에 반대한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탄핵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시민들이 이미 다 느끼고 길거리로 나간 때였다. 사람들은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며 절박해하는데, 진보정당은 어떻게 하면 노무현과의 차별성을 드러낼까만 고민했다는 의혹을 피하기 어려웠다.
가장 가까이는 이번 선거 최대 현안이었던 천안함 사건과 전쟁선동에 대해 특히 진보신당에게서 이렇다 할 얘기를 들을 수가 없었다. 천안함 사건은 단순한 함정침몰과 이로 인한 46명 장병의 사망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남북관계는 전쟁을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험악해졌고 중국과 북한이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으며 6자회담도 큰 차질을 빚는 등 동북아 전체의 판세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는 진보신당에게서 이 사건의 본질과 해결책에 대해 가장 진일보한 대답을 듣고 싶었으나, TV 토론에 나선 (물론 거의 기회가 없긴 했지만) 후보들은 상대적으로 복지와 교육에 열을 올렸다.
물론 지금의 북풍은 선거용일 뿐이고 개표가 끝나면 전쟁 운운하던 말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한반도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첨예하게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지역이며 MB 정권 등장 이후 그 긴장관계는 나날이 높아져 왔다. 한반도 상황에 대한 남한의 통제력이 점차 힘을 잃어 가면 우리나 혹은 북한조차 원하지 않더라도 전쟁의 불시위가 당겨질 개연성이 높아진다.
무상급식과 육아문제가 물론 중요하지만, 예컨대 지금 군대에 자식을 보낸 어미의 심정은 어떨까? 휴가 나온 아들을 최전방으로 돌려보내며 서로가 제 위치에서 전쟁을 각오하자는 어느 보수 일간지 칼럼을 읽는 여염집 부모들에게, 평화의 솔루션이 보이지 않는 복지공약은 무척이나 공허해 보였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한 이래 진보정당이 복지 분야에서 쌓아 온 노하우와 정책적 역량, 그것이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은 매우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딱 거기에만 머물렀을 때, 진보정당은 권력을 쟁취하는 집단으로서의 정당이 아니라 주변부의 시민단체와의 차별성이 없어진다. 수권의 기획, 진보정당에서는 이것을 찾기 어렵다.
어떤 면에서는 진보정당의 이런 모습이 이미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진보신당 혹은 처음 민노당을 만들었던 주축들 중에는 예전 노동운동을 할 때 조합주의 혹은 경제주의에 매몰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사람들이 상당수인 것으로 알고 있다. 조합주의란 노동조합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제일의 목적으로 삼는 노선으로, “더 많은 임금”(물론 여기에는 각종 ‘복지’도 포함된다.)이라는 슬로건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조합주의적인 노선은 90년대를 거치면서 큰 탄력을 받는다. 더 이상 정권에 대한 대적전선만으로는 운동을 이끌어 나가기 힘든 상황이 도래하며 각 분야별 정책적 전문성을 획득하는 것이 진보운동의 핵심적인 의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경실련이나 여러 시민단체들이 많이 생겨난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정책적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나무랄 데 없이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권력에 대한 문제와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않는다면 조합주의적이고 경제주의적인 아젠다에만 머물 수밖에 없다. 언젠가 홍세화는 단병호에게 “천만 노동자의 노동자 의식은 어디로 갔나”라고 물은 적이 있다. 체제변혁과 탈권에 대한 의식이 없는 노동운동은 조합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질문으로 나는 이해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지금의 진보정당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나는 진보정당의 현실이 여기서 멈춰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심상정이 두 손에 들고 나온 ‘복지’와 교육은 그 자체로 너무나 중요한 아젠다임에도 불구하고, 본인 스스로 시인했듯이 반MB라는 일반민주주의의 과제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국가 지양과 자본주의 극복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는 진보정당이 눈앞의 반민주적인 정권을 심판해 달라는 시민의 요구를 받아 안지 못한다는 현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진보신당 당원인 어느 교수가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을 계기로 삼성불매운동을 주장했는데, 재벌해체를 명문화한 당이 당 차원에서 그런 운동에 나서지 않은 것도 미스터리다.) 가장 경제적인 문제조차도 가장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임을 가르쳐 왔던 것이 ‘좌파’가 아니었던가.
만약 한국의 민주주의가 굉장히 성숙되고 안정되어 있으며 유럽처럼 안보체제가 갖춰진 상황이라면 훌륭한 복지 정책만으로 수권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87년 민주화투쟁과 김대중-노무현을 거치며 한국 사회도 어느 정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았다는 인식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기도 하다. 그러나 MB정권 2년 반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지, 강대국에 둘러싸인 정전체제의 한반도는 얼마나 위험한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진보정당이 북유럽이 아니라 한반도의 정당이라면 이런 문제들을 반드시 고민해야만 한다.
특히 진보정당이 수권을 기획하려면 나름대로의 안보솔루션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체로 ‘좌파’들은 북한문제나 주한미군 문제, 혹은 외교문제 등이 터지면 꿀 먹은 벙어리인 경우가 많다. 흔히 그런 사안들은 ‘친북주의자’들의 사안이라고 치부하고서는 노동자 관련 사안에는 매우 민첩하게 행동한다. 이렇게 사안별 소재주의적 함정에 빠져서는 책임 있는 정책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없다. 국방과 외교는 한 국가가 국가로서 갖춰야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여기에 대한 전문적인 고민이 없이 수권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지금의 진보정당 역량으로 무리한 면이 현실적으로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의 열악한 현실이 아니라 그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다. 노무현의 경우와 비슷하게, 진보정당도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완벽한 준비를 채 갖추기도 전에 집권하는 경우를 고려해야만 한다. 평소에 수권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예컨대 2016년 진보신당이 갑자기 집권했을 때 노무현만큼 정권운영을 할 수 있을까? 미국이 북폭으로 위협하며 전투병 파병을 요구할 때에 대한 매뉴얼이 준비되어 있을까? 강대국의 탐욕 때문에 한반도가 또다시 그들의 전쟁터로 변할 개연성에 대한 대책이 있을까? 그 때는 이미, 우리는 미처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고 변명하기에는 너무 늦다.
일반민주주의적인 의제는 결국 권력에 대한 문제이다. 수권의 기획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정치정당이라면 따라서 일반민주주의 의제를 둘러싼 권력의 문제에 최선두로 나서서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해야만 한다. 지금까지의 진보정당이 선보인 화려한 복지정책들에는 상대적으로 이 권력의 문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유권자들은 교육과 복지를 전면에 들고 나온 심상정과 노회찬에게 한가롭다는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심상정이 그 한계를 절감한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더 늦기 전에 깨달은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진보정당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한국사회에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나라당은 실제로는 수구정당이고 민주당은 실제로는 보수정당이니, 모두가 자기 실체에 걸맞는 진짜 이름을 찾아야 하고 진짜배기 진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그런 정당이 지금 필요하다는 말이다. 공자나 한비자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수학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제대로 된 개념정의는 무척이나 중요함은 자명하다.
진보정당의 이런 주장에 빗대어, 진보정당부터 “우리는 북유럽식 사민주의를 지향한다.”라고 ‘커밍아웃’하는 것이 차라리 좋지 않겠냐는 어느 지인의 쓴소리는 그래서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현실국가를 지양하고 자본주의를 극복하며 국가전체를 다시 세운다는 당 강령의 아름다운 글귀를 들고서도 눈앞의 반민주적인 정권 심판에 선도적으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어느 심상정이라도 그날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ps.
2년 전 진보신당이 막 분리되어 나왔을 때 그 대변인을 내가 인터뷰한 기사도 도움이 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