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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900일이 지나도록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by 대변인실 posted Oct 04, 2016 Views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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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900일이 지나도록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 세월호 참사 끝까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가만히 있으라!

2016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에서 5천 톤이 넘는 배가 물속으로 침몰했다. 전 국민이 TV를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304명의 목숨이 수장됐다. 아니 학살당했다. 승객 중 다수는 단원고 2학년으로 수학여행 중이었다. 검찰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배가 바다 위에 멈춰 섰을 때 즉각 퇴선 명령을 내렸더라면 10분 이내에 전원 구조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선내 방송은 그저 “가만히 있으라!”였고 배는 90분여분 동안 표류하다 침몰했다. 학생들을 포함한 승객들은 그 말만 믿고 선실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그런데 선원들은 별도 통로를 통해 탈출했고 해경에 의해 대부분 구조됐다. TV 뉴스는 처음에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를 날렸고, 배가 침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수백 명의 잠수사, 수백 척의 배가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고 떠들어댔다. 모두가 거짓말이었다.


이게 나라인가?

지난 9월 30일 세월호 특조위 활동이 강제 종료되는 날 국회 앞 노동당 정당연설회에서 단원고 고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 씨는 말했다. “세월호 소식을 듣고 팽목항에 갔을 때, 대통령이 내려오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내 아이는 살겠지 생각했습니다. 내 아이만은…. 그런데 대통령이 다녀간 후 알았습니다. ‘다 죽이겠구나!’ 너무 억울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서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반쪽짜리 특별법을 만들었습니다. 근데 진상규명도 안 되고 인양도 안 됐는데 그만둔다고 합니다. 이게 나라입니까!”

2014년 4월 16일 오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시각부터 대통령은 7시간 동안 연락이 두절됐다가 나타나서는 “구명조끼도 입었는데 그렇게 구조(발견)하기가 어렵습니까?”라고 물었다. 구조된 학생들과 승객들도 스스로 탈출했거나 함께 타고 가던 의인들의 도움이 컸고, 주변 어선들이 바다에 떨어진 승객들 대부분을 섬이나 육지로 실어 날랐다. 김기춘 비서실장이란 자는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 타워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다는 나라인가?


유가족들의 피눈물과 600만 서명 그리고 반쪽짜리 특별법

대통령은 유가족들에게 언제든지 청와대를 찾아오라고 말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시련은 계속됐다. 안산에서 팽목항, 팽목항에서 광화문, 안산에서 광화문까지 발자국을 남기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쳤다.  수많은 집회와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그러나 권력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국회입법을 위한 전 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유가족들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피켓팅을 하고 서명을 받았다. 6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그 힘으로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됐다. 공식명칭은 <4·16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다. 이 법은 유족들의 요구였던 수사권은 포함시키지 못했지만,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통한 진상규명조사 및 청문회 실시, 특별검사 임명 등을 주요 내용으로 만들어졌다. 특조위 활동 기간은 1년 이내이고, 1회에 한하여 6개월 이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라 지난 9월 30일까지 활동하였다. 아니 새누리당과 정부에 의해 강제종료 당했다.

특별법은 2014년 11월 19일 제정됐고, 2015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시행령은 2015년 5월 발효됐고, 특조위가 사무처를 구성한 것은 같은 해 7월, 특조위에 첫 예산이 배정된 것은 한 달 뒤인 2015년 8월이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1년밖에 활동하지 못했다. 그것도 해양수산부와 해경, 검찰은 조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청와대 조사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20대 국회 들어 야당을 중심으로 8건의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아직 9명의 미수습자가 차가운 바닷속 세월호에 갇혀 있다. 이들 가족들은 하루빨리 유골이라도 찾아서 유가족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가슴 아픈 일이다.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900일 동안 세월호 참사의 진실과 책임자 처벌을 외쳤다. 그러나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단원고 고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 씨는 말한다.

“진상규명이 돼야 마음의 치료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건 다 소용없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을 보고 세금도둑이라고 하는데 국회의원이 세금도둑 같습니다. 뭐 하고 있습니까! 900일이 다 되었는데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단지 변한 게 있다면 유가족들 가슴이 멍들었다는 것, 죽어가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청해진 해운이 이명박 정권 당시 선령 20년을 30년으로 연장하는 규제 완화 조치에 따라 일본에서 선령 20년이 훨씬 지난 배를 사 들여와 화물을 더 많이 싣기 위해 불법 증·개축을 한 것은 알려진 바 있다. 그러나 세월호 출항 당시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투입될 철근이 다량 실려 있었다는 사실은 특조위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청해진과 국정원 관계, 청와대 역할, 해양수산부 역할, 선원들만 탈출한 경위, 해경이 미군헬기를 돌려보내고 해군에 지원 요청을 하지 않았으며 승객을 구조하지 않은 이유 등이 밝혀져야 한다.


끝까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형식적으로 세월호 특별법이 정한 특조위 활동을 종료됐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정부와 새누리당은 철저하게 특조위 활동을 방해하였다. 이제 여소야대 국회에서 제출된 세월호특별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되고 세월호 특조위가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04명의 국민이 수장된 사건에 대해 진실을 밝힐 수 없는 국가라면, 진실을 감추려는 국가라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단원고 고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 씨는 말한다. “포기 안 합니다! 끝까지 갈 겁니다! 세월호 진상을 규명하고 인양될 때까지 끝까지 갈 겁니다!” 4.16연대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시민단체 역시 세월호 학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그 날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당 역시 피눈물을 흘리면서 싸우는 가족들과 함께 세월호 학살의 진실을 밝혀내고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의 노력할 다 해 나갈 것이다.


(2016.10.4.화, 노동당 대변인 허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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