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평]
성폭력 피해생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사회가 유죄
- 유명연예인 박OO 성폭력 사건 무고죄 1심 판결에 부쳐
배우 박OO를 성폭력 혐의로 고소했던 성폭력 피해생존자가 무고죄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피해생존자의 조력자였던 2명도 함께 구속됐다. 재판부는 “협박 정황과 사건 경위, 협박 액수 등을 비춰볼 때 매우 죄질이 나쁘다.”며 피해생존자에게 유죄를 판결했다. 그렇게 피해생존자는 가해자가 됐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여성가족부에서 진행한 ‘2013년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폭력 신고율은 1.1%다. 신고를 꺼리는 이유는 신고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 혹은 남들에게 알려지는 게 두려워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수사 과정과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2차 가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으며 무혐의 처분도 많다. 이는 남성중심적인 수사사례에서 뒤로 밀리고, 증거 채택에서 피해자의 목소리가 쉽게 무시되기 때문이다. 경찰과 법원이 피해생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면서 2차 가해가 발생된다. “피해자답지 않은” 피해자는 꽃뱀으로 분류되고 무고죄에 의해 가해자로 취급된다. 용기 내 성폭력 사건을 신고해도 상처만 덧나고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박OO 성폭력 사건의 무고죄 1심 재판부는 피해생존자가 피해 장소를 빠져나오지 않았다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성폭력 피해를 인정하지 않아 “피해자다움”의 통념을 여실 없이 드러냈다. 피해생존자가 가해자의 유형력 행사가 있었음을 일관되게 진술했지만 어떠한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저항하면 성폭력은 피할 수 있다는 “정조 관념”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근거로 사용됐다.
재판부는 가해자 측이 피해자의 조력자인 피해자 남자친구를 공갈미수로 고소함에 따라 피해자가 조력자를 보호하고자 가해자에 대한 고소를 취하한 것도 문제 삼았다. 이는 다른 형사사건에 합의금이 심리적·육체적 피해에 대한 물질적 보상으로 취급되는 것과 달리 성폭력 사건에서의 합의금은 돈을 뜯어내는 꽃뱀으로 낙인찍는 근거로 활용돼 “피해자다움”의 또 다른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가 유흥 관련 직업, 전과, 이혼 경력, 성력이 있는 경우 “피해자답지 않다”고 의심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숭배로 칭칭 감긴 법정에서 성폭력을 “인정”받긴 쉽지 않다. 성폭력은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 폭력이지만 한국의 법 현실은 다르다. 신변에 위협과 공포로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해 피해자가 직접적으로 거부하지 못했어도 피해자가 죽을 만큼 저항할 폭행, 협박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동의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는 ‘폭행·협박 최협의설’에 근거하여 성폭력 유·무죄를 가리는 남성중심적 법 적용 때문이다. 이를 ‘증명’한 피해자만 ‘진짜 성폭력 피해자’로 여겨지는 것이다.
100명 중 1명이 성폭력 피해를 신고하고 그중 소수만이 ‘진짜 성폭력’으로 인정받는 사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온갖 2차 가해와 피해자 가해자 만들기가 판치는 사회가 성폭력을 지속시킨다. ‘진짜 성폭력’을 증명하지 못한 피해자를 우리 사회가 부르는 이름은 무고죄를 범한 꽃뱀이다. 그렇게 유명연예인 유O무, 이O욱, 박O천 등이 줄줄이 무혐의로 풀려났고 성폭력 피해생존자는 감옥에 갔다. 배우 곽O화 씨는 자신의 동의를 받지 않고 노출신을 유포한 것과 관련하여 이O성 감독을 고소했지만,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고 피해자인 곽O화 씨는 오히려 무고죄로 몰렸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과 남성중심적 법질서가 만나 성폭력 피해생존자는 가해자가 됐다. 성폭력 피해생존자를 가해자로 만든 사회가 유죄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편견과 성폭력에 대한 남성중심적 법과 관행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성폭력 사건은 계속 음지에 남을 수밖에 없다. 피해생존자에 대한 더 많은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 사회가 침묵을 요구할수록 우리는 더 크게 말해야 한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2017. 1. 20
노동당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