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마지막 기회다
- 미국은 수십 년 동안의 오락가락 대북정책을 마감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경파 관료와 전문가들에게 휘둘리면서 북미 회담의 좌초가 시작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예정됐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첫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회담을 취소하면서도 “이 가장 중요한 회담과 관련해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주저 말고 전화하거나 편지해 달라”고 밝혀 대화의 여지를 남김으로써 이것이 협상 전략일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돌출행동은 협상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난 3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수락한 이후, 미국은 수십 년 동안 반복해왔던 오락가락하는 대북정책을 짧은 기간 동안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노동당은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냉철한 현실 인식을 주문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 당국자들에게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때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적으로 수락한 것은 그동안 미국이 보여준 모습에 비하면 여러모로 의미 있는 조처였다. 협상을 통해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려 한 점, 북미 담판을 통해 해결하려 한 점, 일괄타결방식으로 해결하려 한 점 등에 있어서 진일보한 것이었다. 그러나 북의 핵무력 완성이 코앞에 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당연한 반응이기도 하다.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회담 취소 선언은 풍계리 핵실험장의 폭파가 이루어진 직후에 발표됨으로써 도대체 누가 더 비핵화에 성의를 가졌는지를 전 세계에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북은 남북정상회담에 나서고, 억류자를 석방하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조건 없이 폭파하는 등의 선제적 조치를 했다. 예전의 북한이라면 상대방과 힘겨운 협상을 통해서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는 것이 확실해야 실행에 옮겼을 조처들이다. 북한의 이러한 선의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회담을 취소했다는 것이 상징하는 바는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얼마나 소중히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지켜보는 전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는 힘 있는 자의 횡포 부리는 모습에 불과하다.
북미 정상회담 국면에서 미국은 이미 많을 것을 이루기도 했지만, 잃은 것도 있다. 미국이 강경한 태도를 보일수록 중국과 북한의 공조는 더욱더 굳어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북미 대화를 미국이 먼저 걷어참으로써 중국에 대북제재를 거부할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을 주었다. 트럼프는 전쟁이라는 수단을 선택할 수 없으며 선택해서도 안 된다. 남한의 입장에서도 전쟁은 절대로 용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미국으로서도 너무나 큰 희생이 따르는 모험이다. 따라서 남는 방법은 압박과 제재밖에 없지만, 이미 제재의 정당성이 상실된 상황이다.
미국의 국익에도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는 도움이 안 된다. 미국이 가장 막강한 패권을 자랑하던 시절에도 중동과 동북아의 두 군데 전쟁은 감당할 수 없었다. 이제 미국은 이란 핵협정 파기와 북미대화 실패라는 이중의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란에 이어서 북한 핵협상도 좌초되면 핵 없는 세상은 물론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 미국은 수십 년 동안의 오락가락 대북정책을 마감해야 할 때다. 이제 미국은 자신의 역량과 이념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순간에 직면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2018.5.25. 금, 평등 생태 평화를 지향하는 노동당 대변인 이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