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무(無)에서 생기는 것은 무(無)이다
-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필요한 건 말잔치가 아니라 실효적 조치
역사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밖에 없는 남북 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시간의 흐름이란 게 사람의 감각을 무디게 하는 효과가 있지만, 기대감에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은 도리어 우리의 이성을 더욱 날카롭게 할 수도 있다.
1월 초에 있었던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부터 평창올림픽,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개최 소식까지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진 변화로 인해 우리는 '역시 천지간에는 우리의 철학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란 게 있구나'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남북관계에 정통하다는 이른바 전문가들이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정말로 우리가 따져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우선 우리의 출발점은 상호 간의 인정일 것이다. 법률적으로 이는 휴전 상태를 끝내고 종전과 평화 체제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북미 간의 수교가 포함될 것이다. 현실에서 이는 북한의 '체제 보장'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문제는 체제 보장이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이는 미국이 군사적으로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점을 보장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그저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북한의 체제 보장은 북한이 '정상 국가'로서 안팎의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는 일이어야 한다.
북한이 중국의 개혁 개방 모델로 나아갈 것이며, 김정은이 덩샤오핑이 될 수 있다는 예상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가능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단순 비교를 해 보아도 몇 가지 조건이 맞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미국이 과연 북한을 주요한 무역 대상국으로 삼을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 경제적 혁신을 위해 북한이 최소한의 개방적 체제를 형성하고 감당할 수 있는가? 한국이 최소한 경제적인 면에서 화교 자본이 담당했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우리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은 리어 왕의 다음과 같은 말이다. 무(無)에서 생기는 것은 무(無)이다(Nothing will come of nothing). 이제 필요한 것은 말의 잔치가 아니라 실효적인 조치인데, 이는 북한의 핵 폐기뿐만 아니라 그 이후를 바라보는 어떤 게 필요하다. 이번 회담이 그런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면 그 누구 이를 환영하지 않겠는가?
(2018.4.26. 목, 평등 생태 평화를 지향하는 노동당 대변인 안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