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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투표 마감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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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투표 마감을 앞두고


선거 운동 마지막 날인 어제 몇몇 언론은 이번 선거를 ‘3무 선거’ 즉 정책, 인물, 바람이 없는 선거라고 하는 일종의 총평을 내 놓았다.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 정권 들어 유행한 ‘유체이탈 화법’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굳이 언론의 당파성을 거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론이 의제 설정 능력이 있으며, ‘뉴스 가치’라는 기준으로 인물이 등장할 수 있는 무대와 바람이 불 수 있는 장을 일정하게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선거 운동이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른 것에 대해 훈계하는 말투를 내뱉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물론 선거 운동이 이런 양상을 보인 것에 대한 주된 책임은 의제 설정 능력과 뉴스 가치가 있는 기성 정당과 정치인 들의 몫이다. ‘경제 살리기’와 ‘경제민주화’ 등 의제 설정의 토대가 되는 담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싸움의 주된 무기는 아니었다. 싸움은 그저 기존 지지층의 표를 누가 혹은 어떻게 가져가느냐를 둘러싸고 벌어졌을 뿐이다. 새누리당이 유권자들에게 사죄의 절을 한 것이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호남을 둘러싸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이나, 정의당이 이름, 역사, 구성과 맞지 않게 ‘진보’라고 말하는 것도 결국은 기존의 몫을 지키겠다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 바람도 불지 않고, 그 바람을 타고 등장하는 새로운 인물을 볼 수 없었던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모습은 지금의 커다란 위기를 감당할 능력과 의지는 없지만, 자리는 지켜야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보일 수 있는 행태이다. 덕분에 언론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번 선거 운동은 참으로 진부하게 진행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쉽게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함’을 떠올릴 것이다. 홀로코스트의 주된 책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반유대주의나 인종주의를 열정적으로 신봉하는 사람이 아니라 거대한 관료제의 톱니바퀴에 불과하다고 본 아렌트는 곧장 이런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아렌트의 이런 분석은 일상과 미시적인 것에 대한 주목, 시민 모두의 책임 등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렌트가 놓친 것은 평범함으로 가장하고 나타난 악의 열정이었다.


새누리당 후보들이 절을 할 때 우리가 볼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깨문 입술 안에서 맴돌던 ‘이번만 참는다’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호남을 가지고 싸울 때 듣지 못한 것은 ‘여기가 누구 땅인데’ 혹은 ‘역시 자기 땅이 있어야 해’ 같은 말들이 아니었을까? 정의당이 진보를 외칠 때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것은 ‘역시 힘이 있어야 해’ 같은 속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진부함은 그들의 힘이 되고,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그런 장벽을 넘어서려는 열정이 있다. 그 열정은 당연하게도 기존의 것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의지에서 나오며, 그렇기에 가장 합당한 정책으로 표현된다. 사실 이번 선거 운동이 진부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거의 모든 당파가 거의 같은 시대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 위기라고 하고, 다 내일이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결론은 다르다. 새누리당은 여전히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한 묘수를 부리려 하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철 지난 노래를 부른다.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국민의당은 논외이다. 그저 세상이 어려우니 자신들을 뽑아달라는 말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모두의 소득을 보장해야 하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아야 하고, 민주공화국의 기초를 마련해야 한다고.


이렇게 합당한 정책이 당장 바람이 되지는 않았다. 우리가 함께 하는 후보들이 크게 주목받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 후보들, 그들과 함께 한 선거 운동원들의 눈을 통해 우리가 말하는 것, 즉 최저임금 1만원, 노동시간 단축, 기본소득이 유쾌한 상식이 되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식은 지금과 같은 시기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지표일 것이다.


2016년 4월 13일

노동당 대변인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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