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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해요”


송경원(진보신당/ 교육), 090916



4년 전 일입니다. 직장 때문에 경기도의 한 아파트로 이사하였는데, 운좋게 비슷한 연령의 부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같은 또래여서 가끔 단지 내에서 만나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시간이 되었다며 집에 들어가겠다고 하더군요. 영어선생님이 올 때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당시 큰 아이는 아직 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부부의 아이 역시 돌잔치 전이었습니다.

평소 ‘남의 가정 일을 묻지 마라’는 귀차니즘과 자칭 ‘쿨한 성격’으로 무장되어 있었지만, 그 때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나 봅니다. 부지불식간에 “아직 말도 못하는데, 무슨 영어요?”라는 질문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자기 동으로 발걸음을 돌리던 부부는 무례한 이웃에게 친절하게 대답해줍니다. “다들 해요”

순간 황당함과 작은 불안이 밀려듭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 건지 반문합니다.


“불안해서 사교육 받는다” 33.1%

공교육이 부실해서 사교육을 받는다고 합니다. 한동안 이런 시각이 우세하였습니다. 특히, 정치권은 심했습니다. 그래서 선거 때만 되면, 공교육을 정상화하여 학원비를 잡겠다고 떠들어댑니다.

요즘은 다른 관점이 점차 부상하고 있습니다. 공교육 부실과 사교육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사교육은 경쟁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취업경쟁, 일류대 입학 경쟁, 일류고 입학 경쟁 등에서 남보다 한 발 앞서려고 하기 때문에 학원을 찾는다고 봅니다. 학교는 내 아이와 다른 아이 모두에게 같은 걸 주지만, 학원이나 개인과외는 ‘내 아이에게만’ 뭔가 ‘다른 거’를 준다고 믿는다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공교육 부실 운운하면 최신 트렌드에서 뒤쳐집니다. 공교육이 경쟁적인 게 원인이라고 말해야 그럴싸 해보입니다. 여기에 학벌사회, 대학서열체제, 자신과의 경쟁이 아니라 타인과의 경쟁 등을 추가하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런데 경쟁의 다른 이름은 불안입니다. ‘승리해야 한다’는 승부욕과 ‘패배하면 어쩌나’하는 불안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물론 IMF 전과 후가 조금 다릅니다. IMF 이전에는 승부욕이 더 강했습니다. “넌 나보다 더 잘 살아야 하니 이겨라”며 투자하는 마음이 우세하였습니다.

하지만 20세기 말의 금융위기 이후 ‘뒤쳐지면 인생 막장이니 적어도 패배하지 마라’는 불안 심리가 커집니다. 특히, 사회 중간층이 두드러집니다. 본인이나 가족이 직접 추락한 경험이 있거나 간접적으로 봐왔기 때문입니다. IMF를 지나면서 중간층 이상에서 사교육비를 공격적으로 지출하여 하위층과의 거리가 벌어지는 ‘사교육비 격차’ 현상은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에 학원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어느 정도일까요. 33.1%입니다. 올 2월의 통계청 <2008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서 전국 초중고 3만 4천명의 학부모가 일반 교과와 논술 사교육을 받는 목적으로 이렇게 답했습니다. 선행학습(59.9%), 학교수업 보충(52.3%)에 이어 세 번째로 많습니다. 복수응답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꽤 높은 비율입니다.

뒤이어 재밌는 모양새가 나옵니다. 불안심리는 아이가 커갈수록 줄어듭니다. 아래 그래프처럼 초등학교 36.5%, 중학생 32.8%, 일반고생 23.4%로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학부모의 불안이 점차 희석됩니다. 선행학습 때문에 학원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등학생 68.1%, 중학생 56.8%, 일반고생 38.7%로 줄어듭니다.

반대로 진학준비 목적은 차츰 늘어납니다. 곧 어미와 아비는 어린 자녀를 보면서 불안한 마음에 선행학습을 시킬 요량으로 학원 봉고에 밀어넣습니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면 불안감은 어느 정도 감소합니다. 그리고 ‘맞춤형’ 진학준비를 위해 학원에 보냅니다.

불안심리가 잦아드는 건 두 가지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이의 수준을 알게 되는 겁니다. 자녀가 특목고와 일반고 중 어디에 갈지, 일류대로 진학할 수 있는지 감을 잡습니다. 그러면서 화가 나기도 하고 자신감을 갖기도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적당한 포기입니다. 아이에 대한 기대가 성적표와 만나면서 눈높이를 맞춰갑니다. 포기할 건 포기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입니다. 


입시제도의 잦은 변경도 불안에 한 몫

고등학교로 갈수록 줄어들지만 불안이 모두 해소되는 건 아닙니다. 대학입시제도라는 커다란 장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누굴 골탕먹이려고 작정한 것 마냥 쉼없이 변화합니다.

해방 이후 올해까지 대입제도는 크게 17번 바뀌었습니다. 자잘한 것까지 합하면 거의 1년에 한 번 꼴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4년지대계’라는 말도 나옵니다. 가장 최근의 변화는 수능 9등급제가 수능 점수제로 바뀐 겁니다. 여기에 입학사정관제가 갑자기 등장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뜬금없이 필을 받아 임기말에는 100% 입학사정관제로 학생을 뽑겠다고 말합니다.

이러면 학생과 학부모의 스트레스가 급상승합니다. 입시 준비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입학사정관제만 하더라도, 학생의 잠재력을 종합적으로 본다는 등 말이야 참으로 훌륭하지만, 도대체 어떤 절차와 내용으로 선발할 것인지 아는 게 없습니다. 심지어 왜 합격했는지 탈락했는지도 모를 수 있습니다. 한 쪽에서는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야 한다느니, 다른 일각에서는 고교등급제로 악용된다느니 하는데, 이러면 입에서 아름다운 욕이 튀어나옵니다.

아는 게 없으면 준비할 수 없습니다. 인생이 달린 문제라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점을 봐야 합니다. ‘논술이 대세’라는 이야기가 들리면, 논술학원으로 향합니다. 입학사정관제 어쩌구 저쩌구 하면 그 쪽 학원으로 갑니다. 그리고 수백만원에 달하는 복채를 냅니다.

입시제도는 간단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학교마다 계열마다 다르고, 이것도 준비하고 저것도 대비해야 하면 머리만 아픕니다. 입시전형 파악하다가 시간 다 갑니다. 2007년 3월 한창 3불 논란이 벌어질 때, <한겨레> 여론조사에 따르면 고교등급제와 기여입학제와 달리, 본고사는 허용 의견이 59.8%로 금지 의견 30%보다 많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걸 ‘3불 깨자’는 여론으로 해석하면 곤란합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본고사로 한 방에 깔끔하게 합격 여부를 결정하자”는 의견으로 봐야 합니다. 간단하고 명쾌한 입시제도에 대한 선호인 것입니다. ‘예전 학력고사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다’와 같은 맥락입니다.

하지만 입시제도는 점차 복잡해집니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넘어 헥사곤이나 무한대가 될 판입니다. 이렇게 복잡하면 할수록 정보가 중요해지고, 경제력과 정보력을 지니고 있는 계층이 보다 유리해집니다. 동시에 미지의 존재를 바라보는 불안감은 커집니다. 학원 유리문을 열 수 밖에 없습니다.


옆집 엄마를 만나지 마라?

직장이건 동네건, 아이가 있다면 자녀교육에 관한 대화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두 딸을 찾으면서 우연치 않게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아이가 말해주기도 하고, 직장에서 들은 이야기를 아내가 전해주기도 합니다. “어느 오빠는 영어학원 다녀서 영어로 말해”, “옆자리 동료가 개인과외 시키는데 얼마짜리래”처럼 대부분 같은 래퍼토리입니다.

아이가 좀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주워듣는 이야기는 좀더 구체적인 것으로 바뀔 겁니다. 동네 아줌마 둘이서 특목고에 보내려면 어디가 좋대 라며 주고받는 대화를 우연치않게 엿들은 것처럼 말입니다. 좋은 동네 잘 사는 집 엄마들은 좀더 은밀한 정보를 서로 나누면서도 자기만 알고 있겠죠.

이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두 개의 마음이 충돌합니다. “학원은 무슨 학원이야. 책 많이 읽고 이것저것 경험 많이 시키면 되지”와 “이거 나중에 아이에게 욕먹지 않으려면 나도 뭐 시켜야 되나”가 뒤죽박죽 엉킵니다. 학교에 들어가고 학년이 올라가면 불안과 갈등은 당연히 점점더 심해질 겁니다.

이기려는 경쟁은 일단 뒤처지지 않으려는 경쟁입니다. 이 상황에 처해있는 어미와 아비는 ‘죄수들의 딜레마’에 빠집니다. 옆집 엄마가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다면, 난 학원에 보내지 않습니다. 그것이 윈윈입니다. 하지만 당분간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옆집 엄마가 사교육시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모두가 학원에 보내지 않고 학교교육만으로 공정하게 경쟁하는 걸 믿었다간 나만 바보가 됩니다. 이후 성인이 된 아이에게 나만 한 소리 듣고, 나만 버림받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좀더 많이 좀더 빨리’의 속도 경쟁에 뛰어듭니다.

아이가 어리거나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나름대로의 생각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서있으면 딜레마 상황이 문득문득 닥칩니다. 여기서 옆집 엄마의 길을 택하면, 나 또한 다른 이에게 옆집 엄마가 됩니다. 택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갈등하거나 “세상 물정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예 자녀교육의 실권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간혹 ‘옆집 엄마와 만나지 말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하지만 이 말을 실현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이 땅을 떠나야 합니다.


자괴감 생기는 출혈경쟁

‘앞에서는 공교육, 뒤 돌아서서 사교육’이 우리네 모습이라고 합니다. 나쁘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학원에 보내지만, ‘이건 교육도 삶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마음 한 편에 지니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참교육에 대한 열망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아직 참교육의 세상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도 아비와 어미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사교육을 시킵니다.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경제력과 정보력을 동원하여 ‘좀더 많이 좀더 빨리’ 출혈경쟁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괴감을 동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작년 말에 차를 바꿨습니다. 가장 먼저 나온 경차를 폐차하고, 역시 둘 글자짜리 경차를 구입합니다. 작은 차라 하더라도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이것저것 따집니다. 아무래도 경제력을 가장 많이 생각합니다. 이걸 ‘합리적인 소비’라고 하더군요. 가진 돈에 맞게 작은 자가용을 사도, 이동하는 데에는 큰 불편이 없습니다. 목적지에 갈 수 있습니다. 운전만 잘하면 고급차보다 먼저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을 먹고 사는 사교육 출혈경쟁은 다릅니다. 이 게임에서는 ‘합리적인 소비’를 하면 안됩니다. 가진 돈이 얼마이든 간에 에쿠스를 사야 합니다. 경제력에 맞춘다고 경차를 샀다가는 목적지에 99.99% 갈 수 없습니다. 자괴감을 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자괴감이 자녀의 눈빛과 마주하는 아비와 어미의 또 다른 불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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