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Extra Form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3.4 통합당대회 개회사] 고백컨대 저는 당대표가 된 이래 말이나 글을 통해 수도 없이 ‘당원 동지 여러분’이란 말을 사용해 왔지만 지금 이 순간처럼 목구멍 가득 뜨거운 것이 밀려오던 때는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분명 지금 이제는 한 몸이 된 어제의 사회당, 어제의 진보신당 당원들을 향해 ‘당원 동지 여러분’이라고 하나의 이름으로 호명하여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에게 갈 길이 아직 멀지만, 이것 하나만으로도 제 마음은 기쁨과 긍지로 벅차오릅니다.

 

20120306214842_5092.jpg


 

“굳어진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신성한 모든 것들은 모독당하며, 사람들은 마침내 냉정하게 자신들의 참된 삶의 조건들, 그리고 자신의 동료들과의 관계를 직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공산당선언》 중에서


소멸消滅을 무릅쓰는 용기

이 자리에 모인 당원 동지 여러분.


고백컨대 저는 당대표가 된 이래 말이나 글을 통해 수도 없이 ‘당원 동지 여러분’이란 말을 사용해 왔지만 지금 이 순간처럼 목구멍 가득 뜨거운 것이 밀려오던 때는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분명 지금 이제는 한 몸이 된 어제의 사회당, 어제의 진보신당 당원들을 향해 ‘당원 동지 여러분’이라고 하나의 이름으로 호명하여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에게 갈 길이 아직 멀지만, 이것 하나만으로도 제 마음은 기쁨과 긍지로 벅차오릅니다.


이렇게 부르는 것이 이제 마지막이 되겠지만, 저는 무엇보다 사회당 동지들이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조금의 가식도 없이 저는 여러분이야말로 ‘낡은 것은 사라져가지만 새로운 것은 아직 출현하지 않은 시대’에 진정으로 새로운 것의 탄생을 위해 기꺼이 소멸을 무릅쓴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의 이름이 현재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진보좌파정당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진보신당이란 이름마저 내려놓을 다짐을 하는 우리들에게 그것은 티끌만큼의 의미도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결단은, 자신들의 존립을 위해서라면 어제 자신들이 몸담았던 당의 간판까지도 떼어가려는 이들에게 그 자체로 통렬한 야유입니다.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의 입을 빌어 말했지요. 가문의 굴레를 괴로워하는 줄리엣에게 창밖의 로미오가 이렇게 묻습니다. “이름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What's in a name?” 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간만큼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시선을 거두고 우리들 자신에게 몰두해야 합니다. 저는 감히 단언하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의 결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혹은 언론이 관심을 보이는가 하는 것조차도 하찮은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니 우리 자신이 스스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을 해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신자유주의 교리를 신봉하는 자들조차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위기의 시대입니다. 전全지구적 자본주의의 위기가 한국사회의 모순과 결합하여 어떠한 크기의 변화를 몰고 올지 쉽게 예단할 수 없지만, 우리는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공산당선언》(1848)의 시대로부터 “전체 사회관계들을 지속적으로 변혁”하면서 “굳고 녹슨 모든 관계와 관념들을 해체”시켜온 자본주의가 두 세기만에 심장에서부터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면, 이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위기는 거대한 폭풍과도 같은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폭풍은 지금까지 견고한 것들로 여겨지던 ‘모든 관계와 관념들’을 휩쓸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폭풍 전야前夜에 우리는 두 갈래에 선 진보세력의 행보를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소멸에 대한 두려움으로 스스로도 오래 지속될 것이라 믿지 않는 외형의 집짓기에 매달리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소멸과 해체를 무릅쓰고 그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새로운 소생蘇生의 모험을 감수하려는 길입니다.

이 모험이 성공할지 패배할지 누구도 예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설혹 우리가 아니라 우리 후배세대에게 이 짐이 떠넘겨지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오늘 우리의 이 결단이 ‘지금과는 다른’ 인간과 사회의 미래를 가져오는 씨앗을 준비하려는 안간힘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피노체트 쿠데타에 맞서 싸우다 숨지기 전 칠레 인민정부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마지막 연설에서 했던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이라는 외침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동지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서 마음으로 외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사라지는 것과 남는 것

오늘 이 자리는 통합 당원대회이자 목전에 다가온 총선에서의 ‘승리’를 다짐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당 안팎에서 늘 부딪히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4·11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대책이 있느냐는. 축구경기에서 아무리 열심히 공을 차도 골을 넣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과 동일하게 선거에서 의회에 진출하지 못하는 정당이 뭘 할 수 있느냐는 이 시선을 피해가는 것은 물론 불가능합니다.


20120306215004_0695.jpg


 

자본주의 극복을 외치는 국회의원 1명의 가치를 누가 모르겠습니까? 2퍼센트 미만의 득표로 당의 해산을 바라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당의 존립과 의회 진출이라는 목표를 위해 남은 한 달 열흘 동안 피 말리는 노력을 다 기울일 것입니다. 날카롭고 설득력 있는 공약을 벼르고, 지친 무릎을 세워 현장과 현장을 누빌 것입니다. 진보적 가치를 이야기해온 우리들조차 등한히 해온 소외된 싸움의 현장을 찾아 겸허하게 연대를 호소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다르게 말한다면, 이번 선거에서 우리의 적敵은 우리의 패배를 바라는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우리들이 뽑아들 칼의 초라함이 아니라, 아무리 발버둥 쳐도 충분치 않을 ‘실탄’이 아니라, 우리들의 영혼 속에 숨은 적이 가장 두려운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벌써부터 패배를 자인하면서 이미 한계를 그은 범위 안에서 의미 없이 움직이려는 관성적인 자세, 머지않아 다가올 거대한 변화의 폭풍이 아니라 선거라는 작은 폭풍의 자장磁場 속에 갇혀 떨어진 이삭이나 줍거나 어부지리를 구하려는 근시안적인 태도가 우리의 적인 것입니다. 패배를 각오하는 것이 아니라, 패배를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가 싸워야 할 패배주의인 것입니다.

이제 총선 승리의 방책을 묻는 질문에 답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회당 동지들이 이번 통합을 가능케 만든 ‘소멸을 무릅쓰는 용기’입니다. 너무도 단순하고, 너무도 추상적이어서 공허하게 느껴지십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단순한 것이지만, 소멸을 각오하는 자들의 집중된 정신이 만들어내는 이 단순함 속에서 관성을 초월하는 상상의 힘과 돌파력이 나올 것입니다. 소멸을 각오한 자들만이, 죽음을 목전에 둔 치열함만이 한계 너머로 자신을 이동시킬 수 있으며, 소멸의 시간을 소생의 기회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선언》에서, 굳어진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사람들이 마침내 자신들의 참된 삶의 조건들, 그리고 자신의 동료들과의 관계를 직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했을 때 그때 그 ‘사람들’은 소멸의 대상일 수도 있고 남겨지는 주체일 수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왜 누군가는, 혹은 무엇인가는 사라지거나 녹아져 내리는데 다른 누군가는 남거나 새로이 탄생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새로운 전망’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라짐은 새로운 것의 탄생을 위한 치열한 자기해체가 아니라 ‘공허empty’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르주와지가 생산하고 생산품을 취득하는 토대 자체가 대규모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그들의 발밑에서 허물어졌다”는 오래 전 《선언》의 예언이 아니더라도, 자본주의 경영학마저도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이야기하기 시작한지 오래인데 오히려 서둘러 ‘자본주의 극복’의 전망을 스스로 지운 진보세력은 이미 공허에 자신을 내맡겼음을 의미합니다.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게 될까요? 눈앞의 총선에서 생존한다 하더라도 총선 너머의 폭풍에 날아가 버리고 말 ‘전망 없는 생존’이라면 그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요?

자본주의의 심장부 미국에서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는 마샬 버먼이라는 사람은 《마르크스주의의 향연(원제; Adventures in marxism)》이라는 책에서,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주는 위대한 선물은 자본주의적 근대의 삶의 모순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니라 그 모순들 속으로 들어가는 좀 더 깊숙하고 분명한 길을 안내하는 것이라 말한 바 있습니다. 다가오는 4·11 총선은 진보좌파에게 새로운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의 ‘길 찾기’이자 ‘길 열기’의 의미를 갖는 것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총선만이 아니라 총선 너머의 변화에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 역시 공허 속으로 편입되게 될 것이며 역사 저편으로 노을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굳어진 것들은 모두 사라진다
그러나 우리가 던진 ‘질문’들은 남아 세상을 바꿀 것이다


오늘 한국 정치는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앞에서 ‘공허한 단순함’ 속으로 침몰하고 있습니다. “닥치고 정치”로 표현되는 단순화의 논리는 2004년 이전의, 멀게는 1987년 이전의 하나의 여와 하나의 야 구도로 정치의 후퇴를 강요하는 한편으로, 보수주의―자유주의 정당이 모두 ‘좌클릭’하는 가운데 이를 주도해야 할 진보정치인들의 몸은 정작 대거 ‘우클릭’하는 기이한 현상이 다른 한편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진보정치가 자신의 소멸을 가져오는 정치적 구도 속으로 자진해서 편입되는 전도顚倒된 희비극이 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보좌파는 “닥치고” 얌전히 엉터리 정치게임에 순응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 다가오는 총선에서의 우리의 첫 번째 싸움은 한국사회가 맞이할 위기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들이 차단되는 현실을 뒤흔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공허함의 정치’를 ‘실체實體의 정치’로 전환시키는 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낡고 구태의연한 처방전들이 유포하는 환상을 흔들어 진정한 진보의 현존現存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운 싸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우리들에게서 나온 진보의 처방전들이 역사의 잔해殘骸더미가 되어 쌓이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지만 진보의 새로운 미래를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지 아직은 막막한 말 그대로 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발터 벤야민이 〈역사철학테제〉에서 말한 대로 어쩌면 이러한 역사적 ‘비상사태’는 억눌린 자들에게 있어 ‘예외’가 아니라 ‘상례’였는지도 모르지요. 가난하고 배제된 자들에게 있어 현실은 늘 비상사태였는데 진보는 낡은 규범과 관습에 매달려 있었다면 오늘의 진보의 위기가 부당하다고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역사철학테제>를 접한 사람이라면, 벤야민이 언급하는 ‘역사의 천사’라는 대목을 인상 깊게 기억할 것입니다. 역사의 천사는 눈을 크게 뜨고서 “잔해 위에 또 잔해를 쉬임없이 쌓이게” 하는 하나의 파국破局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머물고 싶어 하고 또 산산이 부서진 것들을 모아서 다시 결합시키고” 싶지만 “천국으로부터는 폭풍이 불어오고, 때문에 천사는 날개를 접을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거센 변화의 폭풍 때문에 날개를 접고 현실에 안주할 수도, 방향을 돌려 바람에 실려서 미래를 향해 곧장 나아갈 수도 없는 역사의 천사……. 날개를 접을 수도, 힘찬 날갯짓을 할 수도 없는 오늘 진보좌파의 처지를 이처럼 정확하게 비유할 방도가 달리 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불확실성 속에서의 모험’이 오늘 진보좌파의 숙명입니다. 위기의 시대에 가장 민첩하고 빠르게 대응하는 것은 자본이었습니다. “굳어진 것은 모두 사라진다”는 《선언》의 명제를 가장 먼저 이해하고 자신을 변화시켜온 것도 자본이었습니다. “혁신적인 자기파괴!” 이것은 1978년에 모빌Mobil사의 광고 문안입니다. 그러나 자본에게 있어 의미 있는 유일한 활동이 잉여가치의 축적이고 이윤창출인 한, 자본은 궁극적으로 역사와 더불어 사라져야 할 구체제에 불과한 것입니다.


《선언》이 분명히 밝혔듯이, 굳어진 것들은 모두 사라지는 위기와 전환의 순간은 우리가 마침내 “자신들의 참된 삶의 조건들, 그리고 자신의 동료와의 관계를 직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생산력의 위기가 낡은 생산관계를 부수는 변증법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위기와 모순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아니라 그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합니다. 


꿈과 현실을 혼돈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날개를 편 채 미래를 향해 밀려가면서도 우리의 눈과 손은 현실을 응시하고 현실을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유가 집중을 통해 근원을 응시하는 진정한 단순성에 도달한다면 우리가 걸어 들어가야 할 현실은 먼 곳에 있지 않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곳은 끝없이 자기진화를 거듭해온 자본이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인간을 극단적으로 착취하는 현장이며, 우리 안의 다른 모든 것, 즉 매매할 수 없는 모든 것은 가혹하게 배제당하고 그렇지 않으면 용도가 없다는 이유로 폐기되는 생존의 현장입니다. 우리를 갈라놓는 그 힘을 인식하고 우리가 연대하고 단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향해 안간힘으로 기어서라도 그곳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금 시작해야 할 정치적 모험이며 소멸의 위협에 대한 진정한 저항인 것입니다.


진보정치의 최전선은 언제나 생존의 최전선이었습니다. ‘사회당-진보신당 수임기관 합동회의’가 이 다급한 선거의 계절에 ‘(가칭)희망운동본부’를 설치하여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 그리고 금융수탈에 저항하는 99% 점령운동 등의 사업을 담당하도록 한 것은 바로 이 생존의 최전선으로 가는 다리를 놓고자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다리를 건너가 “왜?”라는 질문의 망치를 손에 들고 힘을 다해 고립과 배제의 벽을 내리칠 때, 그리하여 그 벽들이 소리 내며 무너질 때 어쩌면 우리는 그곳에서 아직 날개를 펴보지 못한 역사의 천사들이 우리를 향해 보내는 미소를 목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미 배제된 자들은 《공산당선언》의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바꾸어 외치고 있지 않습니까?



“만국의 프레카리아트Precariat여, 단결하라!”



20120306215113_7328.jpg



[ 홍세화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laborkr@gmail.com
사랑과 혁명의 정치신문 R(rzine.laborparty.kr) - copyright ⓒ 노동당.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