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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박정현과 장근석에게 띄우는 공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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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평화미술전이라니요,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어린이평화를 끌어와 을 홍보하는 행사를 했답니다. 케이블 방송에서 방사능 문제도 있고 암도 걱정이고 하니 보험을 들라고 설득하는 광고를 보고 기막힌 세상이라고 한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말, 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노래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순수한 매력을 지닌 박정현 씨와 장근석 씨가 핵안보정상회의를 위한 홍보대사로 나섰다는 겁니다. 핵무기의 확산을 막고 원자력발전을 잘 관리하여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로 알고 응했을 겁니다. 선의였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역배우들도 함께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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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을 피할 수 없는 선택인양 선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석유는 문제가 많은 연료입니다. 자동차는 한계에 달한 석유생산시스템과 석유제국질서의 첨병이자 소비자본주의의 상징입니다. 어쩌면 이라크 전쟁은 부시 정권이 아니라 모든 자가용 운전자들이 함께 일으킨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원자력, 즉 핵은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친환경에너지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연기보다 훨씬 무서운 물질을 한가득 품고 보이지 않는 곳에 쌓아놓고 있을 뿐입니다. 독성물질이 아니라 그 자체인 핵폐기물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실상 정화되지 않습니다. 누가 그 대가를 지불할까요? 바로 우리와 미래의 세대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과 고속증식로 건설을 논의한답니다. 경제성도 의문일뿐더러 위험성도 높습니다. 자위 목적의 무기일 수 없으며, 자멸을 넘어 공멸의 무기인 핵무기의 원료가 그 과정에서 나옵니다. 이러한 핵연료와 폐기물을 어딘가에 쌓아두거나 재처리해야 하는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가 아니라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이런 장면을 그림으로 옮긴다면 죽음의 신에게 손목을 이끌려 무덤을 향해 내려가고 있는 모습일 겁니다. 그래서 핵의 평화적 이용이란 말 자체가 모순입니다. 3월에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는 핵을 줄이자는 모임이 아닙니다. 범죄자들이 모여 범죄확산을 방지하겠다면 설득력이 있겠습니까. 자신들에게만 범죄를 저지를 권리가 있다고 공언하는 자리에 누가 박수를 보내겠습니다. 핵장사꾼들의 모임이 바로 핵안보정상회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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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의를 유치한 한국은 마침 신규 핵발전소 부지 후보로 삼척과 영덕을 선정했습니다. 1980년대부터 누출과 파단, 고장 사고가 끊이지 않는 노후 원전들의 수명연장을 시도하고, 고도 경주에 방폐장을 건설하겠답니다. 그동안 전기발전설비 부족이 아닌 이유로 이해할 수 없는 20119월의 단전 사태가 있었고, 이후에도 잦은 단전 사고와 겨울철 전력 수급 비상과 같은 보도가 약속이나 한 듯 쏟아졌습니다. 전기가 부족하니 핵발전소를 지을 수밖에 없구나 생각하게 만듭니다. 반면에 노동자들의 죽음은 물론이고 인근 주민과 토양 그리고 가축의 오염사례까지 보고된 핵발전소의 실상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 중 어떤 분들은 두개골이 두 배 이상 크거나 아예 뇌가 없는 아이들을 낳기까지 했다고 들었습니다. 여전히 이 비극을 아는 사람들보다 듣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연인에게 선물 받은 꽃다발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면 어떨까요? 이웃나라에서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큼직큼직한 뉴스들 틈에 한동안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단신으로 다뤄졌지만, 그동안 일본의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2011311, 후쿠시마 재앙 이후에 자살자가 평년보다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넓은 지역에서 심각한 징후들이 잇따라 포착되고 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방사능 피해로 인한 질병은 시간차를 두고 수년 후에나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 그러니까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의 문제로 나타납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니 심각성이 희석될 수 있지만 이것이 사실입니다.

 

미래를 알고 싶으면 과거를 보면 됩니다. 절대 안전하다던 미국은 1979년에 스리마일 참사에 직격탄을 맞고 33년 동안 핵발전소 건설을 중지했습니다. 자기넨 다르다며 호언장담한 소련은 1986년에 그 대답을 스스로 얻게 됩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실패와 함께 구소련 붕괴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체르노빌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어떤 보고서에 의하면 이 참사로 수십만 명이 사망하고, 비밀스럽고 무서운 일들이 벌어졌으며, 서유럽에서까지 중절수술이 대규모로 행해졌다고 합니다. 무수히 죽은 이들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태어나지 못한 이들이 배출되었습니다. 이전에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 그리고 태어날 사람이었습니다. 좌익 공포를 거쳐 바이러스 공포로 해석하는 서구영화의 좀비전통에는 핵 공포도 포함됩니다. 그러더니 자기들은 괜찮다던 일본에서조차 체르노빌을 보라던 운동가들의 경고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평화를 위한 핵이라는 거짓말은 기대를 저버리고 기대이상의 끔찍한 보상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똑같은 말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1978년에 상업용 원자로가 고리에서 가동된 이래 죽음의 고리가 좁은 땅 안에 다닥다닥 이어져온 한국은 세계 최고의 핵발전소 밀집률이라는 영예로운 기록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핵기술 선진국들조차 핵사고 국가의 지위를 얻고야 말았는데, 열 개가 넘는 핵발전기를 추가로 건설 중이거나 건설할 계획인 한국은 그들과 동등한 지위를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안전하다는 핵발전소를 중국은 황해 연안에 늘어놓았고, 한국은 동해에, 그리고 일본은 태평양 쪽에 지어놓았습니다. 편서풍 지역에서 자국의 피해는 줄여보겠다는 의도이고, 이웃나라에 피해를 전가할 준비를 해놓은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묘지 후보에 삼척과 영덕을 포함시킨 것입니다. 가뜩이나 위험하다고 아우성치는 지구의 생명들에게 더 큰 아우성소리를 더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서류가방을 들고 중동에 다녀와서 원전을 수출한다고 자랑까지 합니다. 재생에너지가 아니라 재앙에너지를 키우고 있습니다.

 

핵의 안전과 효과는 분명치 않습니다. 아니, 그 위험과 영향이야말로 분명합니다.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삐딱한 표정으로 대안이 있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원자력문화재단이 어린이까지 동원하는 나라로부터는 다양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선진국들은 다른 길에 들어섰습니다. 유럽의 스위스 등은 핵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독일 사회는 2022년까지 핵발전소의 완전 폐기 선언을 이끌어냈습니다. 게다가 독일은 엄청난 핵산업국가였습니다. 또한 풍력발전과 태양광 산업의 효율성과 경쟁력은 높아졌습니다.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만들겠다며 갯벌을 황폐화하고 효율성도 낮은 조력발전 계획이 세워지고, 풍력발전이 관광용이 된 한국의 현실은 FIT(발전차액지원제도)를 폐기하고 표리부동한 결과를 가져올 RPS(신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를 시행하는 등의 잘못된 정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진실을 외면하고 핵발전정책을 옹호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가치관? 정의? 아닙니다. 돈 때문입니다. 핵문제의 근본은 돈을 연료 삼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유지하는 이 체제와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일상에선 신화에서 나온 단어들이 꽤 쓰입니다. 멘토는 그리스 신화의 멘토르와 관계가 있고, 아바타는 인도 신화의 아바타르와 관련 있습니다. 풀루토늄이 플루톤에서 나온 건 오싹하고 묘합니다. 지금도 기묘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세계적인 이벤트인 중심가 빌딩의 소등행사에 동참하는 한편, 빛의 축제라는 걸 벌입니다. 전기가 부족하니 핵발전소를 더 짓겠다는 나라에 한강물을 전기로 끌어올렸다가 다시 흘려보내는 인공하천이 만들어졌습니다. 청계천을 거닐고 집에 돌아와 전기를 아끼자는 거나, 핵발전소를 더 짓자는 뉴스에 끄덕이는 거나 모두 코미디, 그것도 끔찍한 블랙코미디입니다. 더 길게 말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좋은 가수와 매력 있는 배우가 잘못 이용당하는 상황을 바로잡는 일만 지체시킬 뿐입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함부로 꽃을 꺾어선 안 됩니다. 여신이 변한 줄도 모르고 귀중한 짐(아기)’을 안은 채 꽃을 꺾었다가 나무로 굳어버리는 저주를 받은 드뤼오페를 기억해야 합니다.



나도원 | 음악평론가, 진보신당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 나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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