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년째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종이당원이다. 열아홉살 즈음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을 읽고 문득, 덜컥, 민주노동당에 가입했다. 재수생이었던 당시 발전노조 파업 집회에
참가했던 것도 민주노동당 종로지구당 동지들의 연락 덕분이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면서
'당' 활동이란 것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게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을 하나의 정점으로
수렴시켜, 그밖에 우리가 사람들에게 말해야할 많은
것들을 놓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회주의에 대한 이런저런 우려들도
있었다. 어쩌면 그 당시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과
더불어 가중된 스타 정치인 몰이가 그런 부정적 인식에 한 몫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진보신당
당원 모두가 총선 승리를 위해 주력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나는 아직 종이당원에 머물러있다. 당원으로서 당 활동에 주력하는 어떤
친구들은 그걸 두고 왜 당활동은 열심히 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이 겹쳐
"학교에서 열심히 활동하느라
그런다"고 대답하고, 또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해서, 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머뭇거림과 관망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지난 진보정당 운동에 대한 이런저런 우려들 때문일 것이다. 예전처럼 스타정치인을 키우고 기성 정당
같은 방식의 정당정치에 머무르지 않을까? 통합진보당처럼 완전히 변질되어버리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들 말이다.
그러나 물론,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동시에 갖고 있으며, 조만간 좀 더 확장된 형태로, 민중운동의 수세기를 일소할 수 있는 사회운동적 당운동이 도래하길 기대한다. 물론 이런 새로운 좌파정당운동은 노동, 빈민, 농민, 청년, 여성, 장애인운동 등 각 현장의 기층 운동들의 발전과 함께 도모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고립분산되어있는 여러 운동들의 허브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금 나는 영원히
대중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할지언정 꼿꼿하게 버텨야한다는 식의 지사적 자세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운동은 대중들로부터 비롯되며 또 대중들에게
'승인'받을 수 있을 때, 사회를 변혁시켜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지켜본 진보정당운동의
모습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편이었다. 몇몇 정파의 패권주의적 입장에 휘말려
'운동'이 부차시되어왔으며, 유명세를 갖게 된 몇몇에 의해 가장
기본적으로 수호해야할 '원칙'이 휘둘리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단순히 그것을 특정 정파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 역시 그것의 내부 속에서 교차하며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잘못된
경향, 엇나간 흐름과 완전히 결별할 수
있으려면, 좌파의 자신의 혁신도 필요할
것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일신을 제창하는 홍세화 대표의 발화 방식이 맘에 든다.)
어쨌든 이런저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유일하게 남은 좌파정당의 총선이 부디 '승리'(무엇이 승리일까? 당선이? 아니면 이 운동에 어떤 기억과 이데올로기를
남길 것인가가?)로 귀결되길 바란다. 그것은 단지 진보신당 자신의 곤경으로
전락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제 좌파 운동과 노동자운동에 끼칠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금 시기 진보신당이 택한 총선
전략은 확실히 차별점이 있다. 우리는 그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음을 많은
사람들, 비판적 지지자이건 관망자이건 현장의
활동가들이건 대중적 지지로 승인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보정치는 더더욱 심각한
후퇴를 거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총선을 넘어 대선이다. 이번 총선에서 진보신당이 '살아남'지 않으면 대선 시기 좌파의 공동투쟁은 매우 불확실해지고 어느 정도 힘도 빠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말로 중요한 것은 2012년이 아니라 그 이후일텐데, 전세계적 경제 위기가 점점 첨예화될 것으로 보이는 이 시기 좌파가 자기 자리를 굳건하게, 그리고 단단한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절망의 시기가 도래할지라도 정세의 전복을 도모할 수 있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런
점들을 당 밖의 제 세력들, 개인들, 자발적이며 자생적인 시민 그룹들과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일종의 거대한 허브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진보신당이
'김순자' 같은 청소노동자 운동에서 나타난 꼿꼿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례대표 후보 1번으로 결정한 것, 그리고 지난 '밥차'로 표상되고 희망버스 기획단의 정진우
실장으로 표상되는 노동자운동과의 긴밀한 연대 등을 보노라면 어떤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
이런 기준을 잃지 않고 좌파정치가 담을 수
있는 원칙과 어느 정도의 유연한 기준 사이에서 건강하게, 선거를 치룰 수 있기를
희망한다.
어쩌면 지금 시기
진보신당이 이렇게 까지 버티고 있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10년 전 읽은 어느 스테디셀러의 책 속
홍세화와 지금의 당대표 홍세화도 많이 변화했고, 또 사람들도 많이
변했다. 어떤 사람들은 운동을
떠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강을 건너
사라졌다. 운동의 전반적인 문화와 질서는 완전히
변화되었고, 사회적인 풍조는 점점 암울해지고
있다.
이런 정치적 혼돈 속에서 좌파의 기준이자
허브, 그리고 각자의 발전 속에서 공동의 발전을
모색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좌파정당'이 건설되길 희망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새로운 좌파정당의 그릇이 다른 여러
운동들과 각 지역들의 특성들을 담아낼 수 있는 넓은 그릇이 될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물론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넓은 그릇'이라는 게 좀 더 우경화된 모습이라고
착각해 먼 길을 떠나버렸다.)
지난해 한동안
진보신당을 탈당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었고, 실제로 탈퇴 버튼을 누르기 위해 로그인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머뭇거림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민중의 집(전태일의 집)' 운동에 대한 기대로 그리하지
않았다. 얼마전 한 친구가 자기가 알고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들 중에서 당원이 아닌 친구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한 걸 들은 적
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
했던가. 생각이 맞지 않고 말이 통하지 않는
이런저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매우 괴로운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로 대중운동의 후퇴를 야기할
것이다. 당원 각자, 활동가 개개인이 각자의 삶의 터전에
돌아갔을때 자신의 정치를 펼칠 수 있는 '친구'가 많은 각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의정부의 목영대 후보가 큰 기대를 갖고
총선에 나설 수 있는 것도, 거제의 김한주 후보가 야권단일후보로 선출된
것도 그들이 지역사회에서의 여러 활동으로 어떤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대중적 지지와 기반이 없다면 좌파
정치의 앞날도 어두울 뿐이다.
또 일당백 운동을 한다고 할 때, 우리는 그 리스트에 채워 넣고 투표를 약속할 친구 100명이 있는가? 이 점을 더 긴밀하고 자기반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지역에서 각자가 이런 미조직화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모으기 위해서라도, 지역운동으로서의 '민중의 집', 노동자운동 복원 같은 대중운동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오늘날 무너진 좌파의 대중운동을
복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궁극적으로 좌파정당이 대중적 지지 속에서
의회에도 진출하고 대중들의 관심과 열의 속에서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더불어 사회운동적 정당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노선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대학과 일터, 지역에서, 노동자 당원들은 각자의
일터에서, 혹은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다양하고 일상적인 밑거름 전략으로 기층의
대중들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지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뱀발)
조금 전
거제에서 김한주 후보가 야권단일후보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기쁜 일이다. (부디 당선되길!) 거제야말로 노동자계급정치가 활발했던 도시
중 한 곳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것이 '의회 진출'이라는 과제 하나로 수렴되어선 안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계기를 통해 거제와 남한
사회의 좌파 정치가 어떻게 더 많이 알려지고, 대중들과 마주칠 수
있느냐지, 당선 그 자체는
아니다. (우리는 당선된 진보 국회의원들의 변절을
이미 여럿 지켜보았다.)
그래서 더욱, 희망광장에 홀로 깃발을 세우고 그곳의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매일매일 투쟁하고 있는 진보신당의 운동에 아직 신뢰를 갖고 있다. 본래 이건 좌파의 '기본'이 아니었던가. 제 좌파 진영과 현장의
노동자들, 청년 활동가들과 함께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밑거름'을 만드는 싸움을 개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