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고, 학생인권 보장이 학교폭력을 양산한다는 주장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네이버 메인이 ‘10대’들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뉴스들로 뒤덮이고, 학교폭력, 노스페이스, 일진, 무서운 아이들, 가출한 15세女가 찜질방에서 뭘 했다는 둥의 기사가 톱 뉴스에 올랐다. 한편으로 ‘십대가 아프다’며, 십대들이 얼마나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이 세상이 낯설지, 그래서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보살펴줘야 한다는 보호주의적 주장들이 한 축을 이뤘다. 담배 피우다 적발된 청소년은 학생 간 폭력의 가해자이고 무서운 십대이지만, 상처받고 불안한 사춘기에 적절한 보호만 받는다면 개과천선하여 (담배도 더 이상 안 피우고)모범생이 될 것만 같은 ‘우리 아이’이기도 한 게다. 늘 그렇듯, 막상 그 속에 청소년의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학생인권조례를 통과시키고 정착화 시키기 위해 애쓰는 이들은 학생인권보장은 학교폭력을
방지한다는 담론으로 대세를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 때 교과부와 경찰은 학생 간 폭력의 가해자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고, 대중들의 의견도 ‘그 파렴치한 놈들을 솜방망이 처벌할 수는 없다’는 것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14세 미만으로 규정된
형사미성년자의 기준도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학생인권이 보장받아야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것이 학생 간
폭력을 줄일 수 없다며, 처벌 강화를 주장하는 (대부분 학생인권 보장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비판했다.
학생인권조례를 지켜내려는 사람들은 이미 폭력적인 학교 현장에서 학생 간 폭력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며, 학생 간 폭력을 근절하려면 학교의 폭력적인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아주 정확한 이야기를 했다. 개인이 일으키는 범죄는
청소년이던 아니던 간에 그 개인이 살아가는 사회와 무관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으로썬 성폭력 가해자가 처벌을 받아야 하고 용산참사의
책임자가 구속되어야 하듯 죄에 대하여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처벌 수위만을 강화한다고 보다 인권적인 사회가
만들어지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지만, 누군가를 때리는 것이든 힘을 사용해 무엇인가를 빼앗는 것이든 인권침해가 일어났을 때 무조건 처벌 수위를
낮추라고 이야기하기에도 찜찜한 구석이 남고, 청소년들이 ‘어리기’ 때문에 미성숙하고 판단 능력이 부족하므로 처벌을 강하게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주장에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누가 청소년을 처벌할 수 있는가? 위와는 다른 맥락에서, 청소년이 처벌받을 수
있는 대상이기는 한가? 그것이 형사처벌이던 교칙 불복종으로 인한 처벌이던 간에, 청소년은 그 규칙들에 합의한 적이 없다. 다시 말해 청소년은 이
사회의 일원조차 아니다. 사회는 청소년을 일원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사회의 규칙으로 청소년을 처벌하는 것이 마땅한가?
물론 비청소년들이 가지는 투표권이 진정 사회의 일원으로써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말할 수
없고, 대다수 비청소년들은 사회의 규칙 재/개정에도 참여할 만한 힘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처벌이 포함된) 규칙을 제정하는 것의
의의가 모두의 합의점을, 내가 잘못하면 처벌을 감수하겠다는 합의까지를 이끌어내어 질서와 평화를 이룩하겠다는 것을 포괄하는 의의라면, 특히
청소년의 폭력에 대한 처벌을 운운하는 것이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사립학원에서 청소년들에게 서명하라고 요구하는 ‘체벌동의서’가 민주주의적이라고 할 수
없듯, ‘동의’는 균등한 힘의 분배가 있을 때 의미가 있고, 다수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양보할 수 없는 가치와 인권이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또한 청소년을 포함한 이 사회에 살아가는 모두가 사회의 규칙에 대해서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의 당위성은 자명하며, 경제, 정치, 성,
나이, 언어, 직업, 출신, 신체적 조건 등 모든 면면에서 평등함을 구축할수록 민주주의가 실현될 가능성도 커진다. 처음 본 얼굴들 중 하나를
찍는 투표로는 너무나 부족하고, 형식적인 간담회와 공청회로도 부족하지만, 최소한 한국 사회에서 민주시민의 대표적 권리로 이야기되는 선거와
투표라는 것에서도 배제당한, 다시 말해 시민이 아니라고 명명된 청소년 계층에게 ‘시민의 법’을 따르라고 강요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초중등교육법을 개악하여 학교 규칙에 대해 학교장이 자체적으로 제, 개정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이는 학생의 의견이 교칙에 반영될 가능성을 차단하게 만든 셈이다. 학생인권 속에는 개인의 의견이 공동체의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서 동등하게 적용될 권리 또한 포함되어 있다는 강한 움직임이 나와야 할 때이다. 학생인권조례의 통과를 기뻐하는 것을 넘어서 학생들 스스로
학교의 교칙 등 학생과 관련된 규칙 제,개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