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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깔있는 정치① 욕망되는 몸, 욕망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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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대한 욕망은 정당하다. 그러나 성에 대한 욕망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불평등하게 구현된다. 가장 개인적인 행위가 언어와 규범의 잣대에 묶여 권력지도의 의도대로 표출되는 것이다.



한 이십 년 된 영화 중에 <마이키 이야기>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초반에 아주 인상적인 부분은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진 정자들의 여행인데 브루스윌리스가 목소리 연기를 하는 주인공 마이키가 정자단계부터 자의식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많은 남성들이 정자에 감정이입을 시도한다. 콘돔을 빼면서 불쌍한 놈들이라고 중얼거린다던가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영화는 그런 행위를 극화시킨 것이다.

내 두번째 남친은 자기 성기를 똘똘이라고 불렀다. 그 때 당시의 나는 민망하지만 그게 재밌게 느껴졌다. 내 또래의 남성들이 어린 시절 흔하게 당한 성추행은 할머니 할아버지, 심지어 불특정다수의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고추 한 번 따먹자는 것이다. 

남성이 자기 몸, 특히 성기에 집착하는 것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오줌멀리누기를 하거나, 성기크기에 대한 '불편한 진실'까지 남성들은 자기 성기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고 동화하고 감정이입하고 쓸데없이 우쭐하거나 주눅들거나 하는 모습을 본다. 기능과 상관없는 성기확장술은 물론이고, 멋대로 구슬을 넣거나하는 경우도 있다.

남성의 성기와 관련된 언어들은 주로 경쟁과 욕구, 자기 확장의 선에 존재한다. 과도하게 감정이입을 시도하거나 자존감을 상실한 학대가 발생하고, 성기는 몸의 일부일 뿐이지만, 성기에 자기 존재감을 투영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력제와 비아그라에 대한 근거없는 소비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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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궁 속을 헤엄쳐가면서 익살스런 대사를 읊조리는 정자들이 나오는 첫 장면이 화제가 되었던 영화 <마이키 이야기>.


그런데 아직 한번도 여성이 자기 성기가 어떻다고 하는 이야기는 들어보질 못했다. 물론 이것은 시각적인 차이에서 오는 걸 수도 있다. 남성의 성기는 눈에 잘 뜨이게 디자인되어 있고, 여성의 성기는 눈에 띄기 어렵게 디자인되어 있다. 여성이 자기 성기를 살피기 위해선 거울이 필요하다.

여성에게 성기는 출산과 매달 치르는 월경과의 관련된 언어들에 더 익숙하다. 욕구나 자기확장이 아니라 질병과 이상, 변화에 대한 언어들이다. 더구나 여성에게 성은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진다. 성행위는 여성에게 수치심과 동반해 작용하지만, 임신과 출산은 그 반대이다. 연속선상에 있는 성행위와 임신과 출산이 극단적으로 다른 기준을 가진 평가라면 거기에 모순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의 어느 드라마에서 비혼여성의 임신이 나오는데 그가 출산이냐 낙태냐를 고민하는 순간, 다른 이야기는 사라진다. 당사자의 맥락도 감정도 고통도 사라지고, 그가 출산을 선택하느냐 낙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것인데, 그가 임신하지 않았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그의 성행위에 대한 평가마저도 달라진다. 동일한 성행위조차 출산이냐 낙태냐를 선택하는 순간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성에 대한 욕망은 정당하다. 그러나 성에 대한 욕망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불평등하게 구현된다. 가장 개인적인 행위가 언어와 규범의 잣대에 묶여 권력지도의 의도대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정교하게 진행된다. 몸짱이니 얼짱이니, S-라인이니 44사이즈라는 말들은 이전세기에 몸보다 정신을 우위에 두었던 규범들을 수정하는 의미가 있지만, 여전히 억압의 언어로 작용한다.

지금은 정녕 몸의 시대이다. 걸그룹 절대 강자 소녀시대의 꿀벅지에 침을 흘리는 삼촌팬, 짐승돌의 초콜릿복근이나 쇄골미남에 한숨짓는 이모팬들의 현실은 그 괴리만큼이나 자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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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녕 '몸의 시대'? 초콜릿 복근으로 유명한 비, 그리고 꿀벅지 대표 연예인으로 꼽히는 소녀시대 티파니. (출처: 이데일리)


몸의 시대에도 현실은 여전히 우리를 억압한다. 몸의 시대에도 몸을 해석하는 언어(규범)는 필요하고 이전세기에 사용되던 언어(규범)는 변하지 않고 해석하는 대상만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 속 깊이 숨어버린 근육을 개발하면서 동시에 그 근육의 이름을 불러줄 새로운 이름을 개발해야한다.

몸짱이 되고 브이라인이 되고 앞트임으로 눈이 얼굴의 반이 되어도 그 아름다움이 억압으로 작용한다면 즐길 수 있는 현실은 도래하지 않는다. 물론 욕망이란 당위따위(!)로 상쇄되지 않는다. 당장 남들이 부러워하는 외모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지루한 설교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차라리 성형외과의사가 더 많은 걸 해결해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욕망을 이루기위해 노력하면서 살고 어떤 사람은 욕망을 컨트롤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산다. 둘 다 쉬운 일은 아니다. 허나 욕망 그 자체가 성별이나 장애, 인종, 민족, 빈부에 따라 다른 평가와 다른 언어로 이루어지는 사회는 결코 옳지 않다.

유행하는 말 중에 가장 처참했던 것은 "눈빛임신" 이라는 말이었다. 아니, 단성생식도 아니고 눈빛으로 무슨 임신을? 그 단어가 의도하는 바를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쾌락조차 임신이라는 단어로 대리하여 표현하는 억압적 현실을 생각하고 처참했다는 말이다. 

대체 임신과 쾌락이 어떻게 동의어가 될 수 있는가? 여성에게 쾌락은 수치이고 감추어야 할 것이고 오로지 그것이 임신으로 이어질때만 정당화되는 억압적인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런 언어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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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한 남성의 밤은 건강한 여성의 밤과는 다르다는 걸 알고 있겠죠?" ....건강한 여성은 성에 대한 태도가 건강한 남성과 다르다? (출처: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


최근 유행하는 또 다른 드라마에서는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이런 말을 한다. "건강한 남성의 밤은 건강한 여성의 밤과는 다르다는 걸 알고 있겠죠?" 이것은 건강한 남성과 건강한 여성의 성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는 오해에서 비롯되며, 건강한 남성과 건강한 여성의 성에 대한 태도는 달라야한다고 강요하는, 말하자면 남성판타지의 일종이다. 나는 이 대사를 드라마의 흐름에 맞추어 이렇게 바꾸겠다.

"성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의 밤과 성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밤은 다르다는 걸 알고 있겠죠?"

 

[ 토끼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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