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는 여러 사람의 기억속에 남아 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끔찍한 참상에 많은 사람들이 치를 떨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명확하게 인식되어진 어떤 것이 있었습니다. 국가권력은 우리
편이 아니라는 사실과 언젠간 저들이 이 땅의 모든 생명과 영혼을 자신들의 시스템에 가둬놓으리라는 공포.
추모는 이어졌고 저항은 1년
넘게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공포에 짓눌린, 그래서 마음 속 한구석에 남은 자그마한 안위 때문이었을까요. 그 참상의 진상은 사회적으로 규명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쫓겨 올라갔던 이웃들은 죄인으로 낙인찍힌 채 세월은 흘러갔습니다.
참상의 주범인 김석기는 우리들을 대의하겠다며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는 뻔뻔함을 보였습니다. 웃겨도 웃지 못하는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습니다. 작품 속 어떤 인터뷰이의 말처럼 몹쓸 교훈과 몹쓸
사회적 유산만 남았습니다.
분노를 곰삭여 '공감'을
만들다
여기 용감한 영상 활동가이자 치열한 작가의식으로 무장한 독립 다큐멘터리스트들이 만들어 낸 영화가
있습니다. 연분홍 치마의 <두 개의 문>. 살아 있는 사람과 공동체의 가치를 옹호하며 배제와 차별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이들에게도
용산참사는 씻을 수 없는 아픔이었나 봅니다. 이 활동가들은 1년 넘게 참사 현장 주변을 지키며 상처받은 유가족과 저항의 주체들과 함께 남일당
옥상의 '두 개의 문'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곳에서 이들은 차곡차곡 분노를 쌓아 그 날의 남일당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다시금
알려내는 전략을 고민했습니다. 공평함을 가장하며 동정의 시선 따위로 진실을 입에 담는 주류미디어의 가느다란 작업방식이 아니라 긴 시간 함께하며
삭힐 데로 삭힌 분노가 현명함과 공감의 키워드와 만나는 순간 가장 독립 다큐멘터리 다운 발화의 지점을 거쳐, 이 '두 개의 문'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많은 분들과 함께 보고 싶습니다. 이 작품이 나오기 까지 활동가이자
감독이었던 연분홍치마의 고난(?)을 함께 나누는 일. 격려하고 지지하는 일. 이는 이 몹쓸 블랙코미디 같은 세상을 조금은 바꿀 시작 중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시장, 사회적 실천을 논의하는
광장으로
또한 '두 개의 문'을 함께 보는 것은 꿈틀대는 사적인 욕망의 해우소같은 이 곳의 영화시장에 다른
흐름을 만들어 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소비의 영역에서 사회적 실천을 논의하는 광장으로 시장의 역할이 조금은 바뀌어야 한다는데 동의하신다면 '두
개의 문'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와 동력을 제공하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욕망의 판타지가 아니라 가슴 벅찬 변화의 판타지를 그리고
싶으시다면 '두 개의 문'을 함께 봅시다. 그 옛날 러시아 혁명 때부터 제국주의에 맞서는 남아메리카 민중들에게 많은 영감과 에너지를 주었던
제대로 된 영화의 재미와 역할을 느끼고 싶으신지요. '두 개의 문'을 함께 보는 것이 시작입니다.
그래서 '두 개의 문'을 함께
보는 것은 참사의 진상을 우리의 것으로 가져오는 영감을 얻는 것이며 잔인한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의 에너지를 얻어가는 것이고, 그래서 죄인으로
낙인찍힌 이웃들을 우리들의 품으로 안아 오는 일이기도 합니다.
함께 한다면, 수사 따윈 필요
없습니다
저는 관객의 힘! 도가니 열풍 이어지나? 진상규명 앞당겨 지나? 이런 언론의 호들갑스러운 수사를
믿지 않습니다. 온전히 '두 개의 문'이라는 작품만을 믿습니다. 함께 하시면 수사 따윈 필요 없습니다.
더불어 저는 용산참사에
반응했던 독립 다큐멘터리스트의 그간의 노력도 함께 봐주시길 기대합니다. 현장을 지키며 ‘두 개의 문’에 토대가 되었던 칼라TV의 활약은 물론,
서울영상집단 김청승 감독의 ‘마이 스윗 홈 – 국가는 폭력이다’와 푸른영상 문정현 감독의 ‘용산’ 그리고 장호경 감독의 ‘떠나지 못한 사람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두 개의 문’이 열어젖힌 망각의 문을 열고 이 영상 활동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같이 응원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