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형벌’을 받겠다 선언하고 정계를 잠시(?) 떠난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표와, 혼돈의 막장 한가운데서 치열하게 내부 패싸움에 여념 없는 통합진보당을 오버랩 해보면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가장 깊은 감정은 이정희에 대한 절망적 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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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어느 날, ‘우유 빛깔 이정희’를 연호하는 모 집회에서 받은 충격이 새롭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기쁨에 넘쳐 외치는 연호에 답례하며 환한 웃음으로 단상에 오른 앳된 여성에게 나는 큰 감동을 느꼈다. 예쁘기도 하고 똑똑하기도 하고 젊기도 하고, 말도 잘하고 헌신적인 열정이 느껴지기도 하는 등등, 그 때 본 이정희는 빛났다.
그후 민주노동당에서 통합진보당으로, 숨가쁘고 혼란스런 통합 일정을 진두지휘하며 총선을 이끌어가는 모습은 가히 정치 지도자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정치인 이정희는, 여성성을 무기로 남성적 지위를 획득하는 묘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걸출한 결과물들을 내놓았다.
허나 이정희의 결과물들은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녀는 경선 부정 파문에 주역이다가, 내부 투표 부정에 방어벽이다가, 소신에 차서 당 부정 부실의 변호사를 자처하더니, 급기야 정파의 하수인임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침묵의 형벌’이라며 침잠했다.
이정희는 ‘여성’이 아니었다. 권력을 지탱하는 가부장적 패권의 장에서 꽃놀이패 역할을 자임하며 남성성으로 무장한 ‘명예 남성’이었다고 비판하면 지나칠까? 가부장들은 종종 이미지와 이권을 위해 여성들을 활용한다. 자신들의 아바타를 선정해 빛나는 무대를 제공하고는 그 뒤에서 권한과 권력, 담론을 행사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때로 이정희는 변호사의 자질을 십분 발휘해 사용자를 위해 봉사했고, 당선을 위해 부정에 눈 감기도 했으며, 지위를 보장 받으려 정파에 복종하는 맹목성을 온 국민 앞에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러고도 염치를 모른다. 이렇게, 빛나던 이정희가 문득 초라하게 사라졌다.
패권적 조직을 등에 업고 그들의 맹목성에 헌신한 대가로, 성공과 기대, 명예와 권력을 획득해오는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하지 못한 이정희는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나는 다시 (대리인)이정희가 (독립인)이정희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여성성에 근거한 성인지 감수성으로 충만하여, 진정한 자유인이며, 낮은 자, 빼앗긴 자, 우는 자, 절망하고 배제된 자들을 위하여, 그 똑똑함과 치열함과 젊음을 아낌없이 주는 진정한 ‘여성 정치인’으로 새 출발 했으면 좋겠다.
침묵의 형벌을 형벌답게 치르고, 전혀 달라진 맑고 당당한
진보의 여성성을 키워 새로운 진보 정치인으로 거듭나는 이정희를 만나고 싶다. 진정 이정희를
위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