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중동’이란 단어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용한다. 최근에는 ‘중동’이란 단어 대신 ‘근동’이란 단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두 표현은 지극히 서구 중심적 표현으로, 한국에서 보았을 때 중동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서쪽에 해당한다. 중동이나 근동이 아니다. 역사 기록을 보더라도 아랍지역의 상인들을 우리는 ‘서역’사람으로 묘사했었다.
하지만
영어의 ‘middle east’ 혹은 ‘near east’란 단어의 직역인 ‘중동’과 ‘근동’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는 우리가 대륙의
반대편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아랍 지역을 동쪽이라고 부르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우리가 그간 얼마나 아랍세계를 서구 중심적 관점에서 보아 왔는가를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아랍 국가들을
여행해본 사람은 기념품 가게에서 푸른색 눈이 그려진 기념품들을 많이 발견하였을 것이다. 이 눈의 형상은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면서
보호해 주는 신의 눈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 눈 모양의 영어 이름은
‘악마의 눈’이다. 어렸을 적, 한 유명 만화가가 선과 악의 싸움을
그리면서 이 눈의 형상을 악마로 묘사한 만화를 본 기억이 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양의 눈으로 아랍과
이슬람 세계를 보면서 이슬람과 아랍문화에 대한 편견을 내면화 시켜왔다. 실제로 서점에 가서 보면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이슬람과 아랍에 관한 책의 대부분은 서양의 자료를 번역한 것이다. 한국의 작가가 한국인의
관점으로, 한국 문화에 기반한 아랍과 이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제 부터라도 우리의 눈으로 아랍을 보고, 우리의 손으로 아랍을 만지고, 우리의 발로 아랍을 걷고, 우리의 언어로 아랍을 이야기 하는 노력을 기울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특히 진보 좌파
진영에서는 아랍에 관한 관심을 기울여야만 할 특별한 이유가 또 있다. 베트남 전 이후 한국군의 의미 있는 수준의
해외 군사 개입은 모두 아랍지역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20여 개가 넘는 나라에
UN의 이름으로 한국군이 파병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랍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UN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한 두명
형식적으로 파병한 수준이다. 반면 아랍지역은 2003년 이라크에 대규모로 한국군을 파병한
이후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그리고 아랍 에미리트 연방 등에
최소 수백 명 단위의 파병을 해 놓고 있다. 그 외에도 이 지역의 이스라엘 및 터키와의
무기거래와 군사 협력은, 미국을 제외하고는 그 정도가 가장 깊은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의 아랍에 대한 이해는 한심함을 넘어서 천박한 수준이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아랍 전문가로, 관련 토론회가 있을 때는 언제나 패널로 불려다니는 모 대학의 어떤 교수는 어떤 토론회 장에서 터키를 아랍 민주화의 모델 케이스로 제시하기도 하였다(터키가 아랍 민주화의 모델이 될 수 없는 이유에 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한국에서 아랍지역에 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축적하고 있는 곳이, 아랍의 거의 모든 지역에 선교사를 파견한 한국의 기독교 그룹이다. 그리고 그들은 기본적으로 아랍의 문화와 종교를 타파해야 할 악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제공하는 아랍에 대한 정보는 왜곡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유력 언론사 마저도 이런 선교사들을 현지의 통신원으로 활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랍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기대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독자들과 함께 아직은 불완전 하겠지만 우리의 눈으로 아랍을 보는 노력을 시작해보고자 한다.
나는 앞으로 ‘중동’이란 단어의 사용을 지양하고 ‘아랍’ 혹은 ‘아랍/이슬람’이란 용어를 이 지역을 일컫는데 사용할 것이다. 물론 이 단어도 이 지역을 표현하는데 완전한 단어는 아니다. 아랍이라고 했을 때는 비아랍계 이슬람 국가가 제외되고, 또한 중동의 비 이슬람 국가가제외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서아시아란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북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국가를 포함하지 못하기 때문에 적합한 표현을 아닌라고 본다. 하지만 이런 ‘중동’을 대신할 다른 표현을 꾸준히 사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지속되다 보면 언젠가는 이 지역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단어를 발견해 내거나 혹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