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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6일은 여성장애인으로서 기초생활 수급권의 문제를 제기하며 돌아가신 최옥란 열사의 10주기입니다. 10주기를 맞아 그녀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산하의 오역] 2002.3.26 어느 여성장애인의 죽음


그녀는 기지촌에서 자랐습니다. 그 사연 많은 곳에서 형성된 그녀의 가족들 역시 사연이 많아요. 2녀 1남의 3남매는 한배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모두 달라요. 거기다가 오빠는 백인 혼혈이었지요. '양공주'에 대한 시선은 본인에게만 머물지 않지요. 그녀도, 오빠도, 여동생도 말못할 모욕들을 어려서부터 당하면서 컸어요. 언젠가 만났던 기지촌 출신의 여성은 그런 말을 합디다. "동물원 스컹크 알아요?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보다가도 이내 어휴 냄새 하며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가잖아요. 그때 그 스컹크가 되는 기분이라면 이해가 되겠나요."


아마 그녀도 그랬을 겁니다. 어린 나이, 그리고 그 뒤 예민한 나이가 됐을 때 그 시선들이 얼마나 예리한 면도칼이 되어 그 여린 가슴을 쑤시고 도려냈겠어요. 오래 참았죠 열 여섯 살까지면. 열 여섯에 그녀는 가출을 합니다. 그리고 사회복지시설에 들어가죠. 그녀는 뇌성마비 5급 장애인이었거든요. 사실 5급이면 그다지 일상 생활엔 지장이 없는 정도입니다. 다리를 절고 언어장애가 좀 있는 정도죠. 그렇다고 의사소통이 안되는 건 아니고. 시설이고 복지관이고 성년이 되면 거기 머물러 있기 어려운 건 아시죠. 그나마 사회의 보호는 거기까지니까.


그녀도 살기 위해 악착같이 일했어요. 녹녹찮은 몸으로 좌판을 벌이고 어눌한 말로 손님을 부르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하죠. 그런데 그를 위해 야학에 적을 두면서 그녀가 일찍이 몰랐던 또 다른 세상을 접하게 돼요. 올림픽한다고 온 동네를 쓸어버리는 바람에 집도 절도 잃어버린 철거민들을 만난 거죠.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축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던 그녀가 또 다른 불행아들을 만나고 함께 울고 웃었던 순간은 그녀 삶에서 많지 않았던 행복 가운데 하나였을 겁니다. 집을 잃어버리고 농성장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공부가 사치에 가까웠고 검정고시 준비하던 그녀는 되레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습니다. 그 가운데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었는데,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어요. 그때 그 아이가 남긴 한 마디는 그녀의 가슴을 찢어 놓습니다. "선생님처럼 편안하게 다니고 싶어요." 그 어린 영혼의 이루지 못한 소망을 위하여, 자신과 같은, 또는 그 이상의 고통을 지고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바람을 위하여, 그녀는 장애인 운동가가 됩니다.


2001년이었나 저는 지하철 시청역 선로를 점거한 장애인들을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부르짖으며 장애인들이 선로를 점거하고 쇠사슬로 몸들을 묶어 버린 거지요. 그때 전경들은 진압보다는 진압 뒤의 연행 과정에서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그냥 휠체어 경우는 네 명이, 전동 휠체어 경우는 예닐곱명의 장정이 달라붙고 낑낑대면서 지하 몇 층에서 지상으로 끌어올려야 했으니까요. 그녀 또래의 한 장애인이 제게 했던 말은 선명해요. "우리가 시민들 발을 한 시간 묶었다지만 우리는 평생 발을 묶여 살았어요." 아마 그녀도 어디에선가 그렇게 외치고 있었을 겁니다.


그녀에게 뜻밖의 인연이 찾아와요. 장애인 운동 와중에 만난 사법고시 준비생과 사랑에 빠진 거죠. 남자 또한 한쪽팔에 장애가 있었어요. 장애 있는 사람들끼리 오손도손 살아보고픈 소망에 부풀었고 아이도 생겼지만 둘은 거대한 장벽에 부딪치게 됩니다. 시댁의 완강한 반대였지요. 한쪽팔은 시들었지만 똑똑한 내 아들의 상대로 향용 쓰는 말로 근본도 모를 뇌성마비 장애인은 어림도 없단 뜻이었겠죠. 그 잔인하기까지 한 반대 끝에 그녀는 임신중절수술을 받습니다. 뇌성마비 환자에게 치명적이라는 전신마취를 하고서요.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남자와 꿈에 그리던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습니다. 하지만 시집살이는 맵다못해 독했습니다. 사람들은 참 묘해요. 자신에게 어떤 마뜩잖은 부분이 있을 때 비슷한 사람에게서 위안을 삼기보다는 되레 그에게 화풀이를 해 버리는 걸 참 많이 봤으니까.


시집살이도 시집살이지만 그녀에게는 더 무서운 일이 닥칩니다. 출산 과정에서 또 해야 했던 마취의 후유증이 나타난 거예요. 좀 부자연스러워도 보행에는 지장이 없던 그녀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픽픽 쓰러졌습니다. 그녀의 장애등급은 수직 상승합니다. 1급으로요. 시어머니는 허덕이는 몸으로 걸레질을 하던 그녀에게 칼을 던집니다. 그걸로 목숨 끊으라고. 이 일로 그녀는 실어증까지 걸리죠.


남편은 곧 이혼을 요구합니다 몸도 몸이고 그에 따라 일어나는 가정불화를 핑계삼은 것이었지만 사실 남편에게는 다른 여자가 있었죠. 이혼 소송 끝에 위자료와 아이를 볼 권리를 확보하지만 그 권리를 제대로 향유하지는 못해요. 위자료는 차일피일이었고 아이는 아예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이에 분노한 그녀는 아이를 찾아오기 위해 소송을 비롯하여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어느 정도의 재산이 있어야 양육권 소송에 유리하다는 조언을 듣고는 작심을 하고 돈도 모으죠. 동시에 예전 동지들과 함께 장애인 운동에도 다시 나섭니다. 2001년 장애인 이동권 연대 투쟁에도 그녀가 함께 했다니까 어쩌면 저와 그녀는 한 장소에서 같은 공기를 호흡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때문에 그랬을까요. 공무원들이 좋지 않은 소식으로 그녀를 연이어 방문합니다. 통장에 잔고가 있으면 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다든가 수급자가 아니면 임대아파트를 비워야 한다든가 하는 정중한 통고는 그녀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생활수급자 신분을 지키기 위해 돈벌이의 수단이었던 노점을 포기하지만 그녀에게 지급된 돈은 한 달에 26만원. 아파트관리비와 약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이었죠 하물며 아이를 찾아오기 위한 양육권 소송에 필요한 경제적 자립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어요. 일을 하려면 터전이 무너지고 터전을 지키자니 무기력의 늪 이상은 아니고 보고픈 아이를 찾을 길은 가없이 멀어져만 가고. 결국 그녀, 최옥란은 서른 여섯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2002년 3월 26일이었습니다.


그녀의 삶을 짧게나마 돌아보면서 세상에 태어나 모진 꿈만 꾸다 간 그녀의 삶에 슬퍼하기보다, 그 와중에도 세상과 싸우고 명동성당 차디찬 바닥, 지하철 선로에 몸 묶은 투지를 기리기보다 버르장머리없게도 저는 제 삶이 얼마나 행복한가에 먼저 감사했습니다. 이 나라에 장애인으로, 그리고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그 가냘픈 기쁨의 온기가 다한 후 대한민국의 장삼이사 그 누구도 당장 장애인이 되고 중환자가 된다면 그와 그 자식들의 운명이란 그녀와 크게 다를 것이 없으리라는 불길한 직감에 오들오들 떨게 되지만 말입니다.


최옥란은 자신도 장애인이었지만 "선생님처럼 편하게 다니고 싶어요"라고 자신을 부러워하는 아이의 말에 통곡했고 그들보다는 편안한 자신의 몸을 움직여 여러가지 일을 했고 세상의 벽을 향해 뇌성마비의 몸을 부딪쳐 갔었지요. 문득 성한 두 다리가 오무라듭니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리던 해의 오늘 한 여성 장애인이 사위어 갔습니다

[ 산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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