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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보기엔 팔리지도 않을 것 같은 판을 만드는 짓거리가 상당히 멍청하고 바보같아보이는 짓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을 했던 때가 가장 즐거웠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좋아해 마다않는 한 노감독도 이런 말을 했더군요. '난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난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며칠 전 R 편집부에서 원고를 부탁하는 연락이 왔습니다. 사실 저는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하는 일도 글쓰기와 관련이 없는 사진 찍는 일이고 학교 다닐 적 논술같은 것도 해본 일이 없어 긴 글을 써본 적도 전혀 없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쓰는 글이 칼럼에 실린다고 하는데 “칼럼“ 같이 많은 분들이 보는 글을 써본 경험은 당연히 없겠죠. 여하간 읽으시다가 ”에이 이게 무슨 칼럼이야 그냥 신변잡기지“ 라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신변잡기가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보기엔 뭔가 혁명같이 대단한 일을 이야기하는 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편집부가 일종의 문화칼럼을 이야기해서 ”그래도 내가 했던 일이 문화와는 관련된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나름의 작은 용기를 가지고 글을 써봅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고등학교를 다녔을 시절에 잠깐 했었던, 빛도 제대로 못 본 작디 작은 인디레이블인 ”비싼트로피 레코드“에 대한 글입니다.    


비싼트로피 레코드의 시작은 2005년 경, 현재 대표인 저와 그의 주변 친구들이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로부터 시작합니다. 당시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중학생부터 시작하여 20대 초,중반까지 주로 청년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처음엔 방구석에서 기타를 연주한 것을 녹음하거나 미디작곡프로그램으로 음원을 만들거나, 특정 밴드를 패러디하는 노래를 만들거나 마이크로 자신의 육성을 집에서 녹음하고 또 더 나아가선 서로 인터넷상에서 그런 자신들의 창작물을 이용해 인터넷 상의 밴드를 결성해서 연주한 음악에 목소리를 입히는 등의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 때 당시에 밀림닷컴이라는 음원 업로드 사이트가 있었기 때문에 비싼트로피는 온라인 앨범 형식으로 위와 같은 식으로 만들어진 음원들을 링크시켰습니다. 또한 오프라인 공연장에서도 서서히 레이블의 존재를 알리는 활동을 했었고, 비싼트로피 레코드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약 10여개의 밴드 혹은 뮤지션이 비싼트로피 레코드에 참여를 했고 그중엔 실제 클럽에서 공연을 하던 밴드들도 있었습니다.


비싼트로피는 분명 레이블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운영되었던 곳이기 때문에 2005년도 쯤에 앨범발매를 기획합니다. 지금까지 인터넷에 공개되었던 음원들을 비롯하여 인도네시아의 고어-그라인드 코어 뮤지션도 참여하고 지금 밤섬해적단에서 베이스와 보컬을 담당하고 있는 장성건의 트랜스 프로젝트도 앨범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앨범의 러닝타임은 700MB 공씨디가 기록할 수 있는 양을 꽉 채워서 만들어졌고 앨범의 이름은 "Earstrike of Bissantrophy" 였습니다. 물론 구입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였으나 분명 레이블로써는 의미있는 짓이었습니다.


처음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을 포함하여 이후 비싼트로피는 총 3개의 “판매가 가능한” 타이틀을 더 발매합니다. 포르투갈에서 활동하는 펑크밴드의 데모음반, 밤섬해적단과 부산의 그라인드코어밴드가 함께 작업한 스플릿음반, 홍대에서 이미 활동전력이 있는 스트릿 펑크밴드의 EP음반등이 있습니다. 또한 해외 레이블과 연계하여 서로 음반을 교환해서 파는 일도 했었고 그 수익은 다시 음반을 기획하는 비용으로 써왔습니다. 비싼트로피는 이런 식으로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음악 생태계의 쥐며느리 같은 일을 짜잘하게 해왔습니다. 그리고 2006년 7월 경에는 마침내 레이블의 이름을 단 공연을 기획합니다. 당시 활동했던 시끄러운 음악을 하는 밴드들 중 아홉밴드가 공연에 참여하였고. 지금도 활동 중인 밤섬해적단은 마지막 순서에서 총 100곡을 연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2005~2006년도까지 활동한 비싼트로피 레코드의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이었습니다. 대표로 있었던 제가 질병의 이유로 레이블을 운영할 수 없었거든요.


그 후 6년이 지난 지금 2006년도부터 활동이 멈춰버린
비싼트로피 레코드를 이 자리에서 다시 움직이게 하려고 합니다.
간단히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당시 비싼트로피에서 놀던 사람들 중 대표적으로 밤섬해적단과 김간지는 현재 이른바 한국의 음악 생태계에서 꽤 어느정도 이름이 알려진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6년간 그들의 노력과 일련의 활동이 있어왔기 때문에 얻은 결과이겠지만 이들의 뒷바탕엔 비싼트로피 레코드에서의 활동들이 어느정도 영향은 있었지 않았겠냐는 다소 건방진 확신이 저에겐 있습니다. 이런 결과를 단순히 과거의 재미있던 일들로 기억하고 싶진 않습니다. 코딱지 만한 규모와 얼마 내지도 않은 발매물들이 타인들에게 보이는 전부일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비싼트로피는 분명 무언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6년여의 기간 동안 이런저런 활동들을 해오며 굳이 예를 들자면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라던가, 한예종 클럽 대공분실이라던가, 명동 투쟁현장이라던가, 희망광장, 홍대 두리반과 같은 여러 공간에서 일어났던 음악적 움직임들을 지켜본 저는 비싼트로피가 지금 다시 움직이기에 적합한 시기라고 여깁니다. 물론 2006년에 보았던 매체들보다 2012년 지금 보고있는 매체들이 음지에 있던 음악가들이나 알려지기 힘든 공연과 음반들에 전보다는 더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허나 이런 움직임들은 비싼트로피에게는 사실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비싼트로피는 “누구도 관심 안가질 것 같은, 구석에서 기타나 가끔 두들기고 공연은 커녕 녹음을 할 생각도 없는” 사람들과 함께 움직여왔습니다. 그리고 그 활동의 기저에는 언더그라운드 펑크, 하드코어 레이블들이 추구하는 일종의 이념들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2006년도까지의 비싼트로피 레코드가 주로 취급하던 음악들은 그라인드코어나 언더그라운드 하드코어 음악들이 중점을 이룬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감히 느끼건대 분명히 요즘엔 언더그라운드 음악들이 전보단 더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주목과는 별개로 2006년도의 그 멍청해 보이고 조악하기 짝이 없는 레이블이었던 비싼트로피같은 언더그라운드 레이블은 추가적으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청주가 있으면 막걸리도 있어야 하는 법인데 막걸리는 없고 청주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싼트로피는 다시 음악생태계의 쥐며느리로써의 활동을 다시 재개하려 합니다. 비싼트로피는 전에 추구했던 것과 같이 홍대나 신촌, 서울을 활동 근간으로 하는 밴드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공연은 꿈도 못꿨던 지역 음악가들의 음반을 내고 물건들을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도저히 음반의 형태로 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음반들을 기꺼이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구석에 틀어박혀 있던 사람들을 끄집어낼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단순히 그 무슨 선의나 이른바 전위를 자처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싼트로피는 이런 행동들에 대한 결과물들을 이미 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거창하게 말하자면 화학비료같은 문화들만 가득 차고 척박하기 짝이 없는 한국의 문화생태계에 어떤 거름같은 것이 되길 바란다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부터 시작 자체가 그런 거창함이 아니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비싼트로피의 의도를 묻는다면 비싼트로피는 그냥 하던 짓을 다시 한다 정도로만 답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6년만에 다시 시작하는 일이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밴드,레이블등의 연락처도 대부분 없어졌고 한국의 경제상황이나 정치적, 문화적 상황이 6년 전보다 나쁘면 나빴지 나아지진 않은 것 같다는 점을 들면 전보다 더 힘든 움직임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만들 수 있는 것들은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원래 이런 현실일수록 튀어나오기 쉬운 것이 음악적 움직임이었고 비싼트로피는 그 어떤 형식이던지 좋으면 된다는 입장을 가졌던 멍청한 레이블이었습니다.


남들 보기엔 팔리지도 않을 것 같은 판을 만드는 짓거리가 상당히 멍청하고 바보같아보이는 짓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을 했던 때가 가장 즐거웠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좋아해 마다않는 한 노감독도 이런 말을 했더군요.


“난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스즈키 세이준 (영화감독)

[ 박정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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