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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3월 9일 한 집에서 불길이 솟았다. 불길은 지하방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소방관들이 기를 쓰고 불을 끄고 화재 현장을 돌아보았을 때 그들 모두는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방문은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현관도 밖으로 잠겨 있었다. 아이들은 그 작은 손톱으로 열리지 않는 문을 긁어대다가 화마에 휩싸였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새벽부터 일을 나가 있었고, 어머니는 반나절 파출부로 남의 집 마루를 닦고 있었다.

1990년 3월 9일 한 집에서 불길이 솟았다. 불길은 지하방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소방관들이 기를 쓰고 불을 끄고 화재 현장을 돌아보았을 때 그들 모두는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방문은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현관도 밖으로 잠겨 있었다. 아이들은 그 작은 손톱으로 열리지 않는 문을 긁어대다가 화마에 휩싸였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새벽부터 일을 나가 있었고, 어머니는 반나절 파출부로 남의 집 마루를 닦고 있었다.

부엌에만 나가도 연탄불이나 식칼 등 다칠 구석이 많고 밖에라도 나가면 길이라도 잃을까 두려웠던 부모는 다섯 살 세 살 아이들을 방 안에서 놀게 하고 문을 잠갔다. 조금만 있으면 엄마가 올게 약속을 남기고. 그러나 아이들은 살아서 엄마를 보지 못했다. 다섯 살 혜영이는 방바닥에 엎드린 채, 세 살 영철이는 옷더미 속에 코를 박은 채 숨져 있었다.

나는 꽤 감정이 무딘 사람이다. 대학 시절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밤을 새며 울었다는 동료들이나 감성적인 노래를 부르며 펑펑 눈물 흘리는 주위 동료들을 보면서 나는 어떻게 생겨먹어서 이럴까 장탄식을 한 적이 여러 번이었지만, 1990년 3월 9일 허무하고 애처롭게 죽어간 남매의 사연을 노래로 만든 정태춘의 “우리들의 죽음”에게만큼은 대책이 없었다. 그 시작 멜로디만 들어도 눈물이 찔끔거렸고 노래의 말미에는 노상 애꿎은 소매로 눈가를 벅벅 문질러야 했다. 지금도 기나긴 절창의 전부를 적어내리다가는 주책없이 또 눈물보가 터질 것 같아 그 마지막 나레이션만 적어 보면 이렇다.

“엄마 아빠 슬퍼하지 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니야.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뚱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린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내게는 이 노래에 얽힌 유쾌하지 않은 추억이 있다. 저 슬픈 사건이 있은지 얼마 후의 어느날, 술 한 잔 걸치고 버스 차창에 머리 기대고 잠을 청하는데 뒤에 앉았던 중년의 부부가 남매의 일을 화제삼는 것이 들렸다. 건성건성 넘기고 있는데 둘의 대화가 갑자기 화전(火箭)이 되어 내 귓전을 뚫고는 머리 속에서 폭발했다.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리바이벌이 가능한 그 대화는 이런 것이었다.
“몇 푼이나 번다고...... 여편네가 문 잠그고 나가서 그 지랄을 하게 했는지. 남편이나 여편네나 똑같다.”
“맞아요 무조건하고 애들은 엄마가 있어야 돼.”

솔직히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시내버스 타고 다니는 처지로 미루어 “싸장님”과 “싸모님”도 아니었다. 나름 그 슬픈 사건에 가슴 아파하는 빛이었고, 딴에는 안타까움을 표한다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성을 잃었다. 그리고 부부는 내게 봉변을 당했다. 다음 정거장에서 우연히 올라탄 동문 선배가 필사적으로 말리고 혼이 빠진 부부가 황급히 내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경찰서 신세를 졌을 것이다. 마치 내가 죽은 아이들의 아비라도 되는 양 악을 썼고 엄마라도 되는 양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퍼부어댔으니까.

바로 그 며칠 전 정태춘 공연에 가서 그 노래를 들으며 엉엉 울었던 기억이 가시지도 않은 나의 뒤통수에 대고 악담을 쏟아 냈던 중년의 부부는 참으로 불운하였다. 행여 다시 만난다면 무례를 사과하고 싶다. 기실 나를 정말로 화나게 했던 것은 “애들은 엄마가 길러야지.” 하는 당연하지만 지극히 폭력적인, 속 편하지만 그보다 더 잔인할 수 없는 명제 때문이었다.

요즘에사 맞벌이가 당연시되고 오히려 집안에 있으면 남편 눈치가 보인다지만 당시만 해도 “접시와 여자는 내돌리면 깨진다”는 비열한 신화의 뿌리가 깊었고, 아이들을 위한 보육 시설같은 것은 부족하다 소리 드높은 지금에 비해도 형편이 무인지경이었던 때였다. 그리고 탁아나 보육 시설의 확대를 논하면 “애들은 엄마가 길러야지.” 하는 논리가 정면으로 박치기를 하고 나서는 분위기였다. 보육은 부모 책임이지 사회가 뭘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암담함 속에서 파출부 나가는 엄마는 자물쇠를 잠가야 했고 아이들은 뜨거워지는 벽과 문을 긁어대다가 숨이 막혀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명제는 어쩌면 가장 옳은 명제인지도 모른다. 법대로 하면 되고, 가정은 지켜져야 하며,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그러나 그 옳고 지당한 책임을 사회가 전담 내지는 분담하지 않고 개인에게 떠밀 때, 옳아서 더욱 단단하고 마땅하여 배로 갑갑한 명제의 동앗줄들은 사람들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목을 잡아 죈다.

<긴급출동 SOS 24>가 한창 방송되던 시절, 꽃샘 추위 지독하던 3월 초입의 어느 날, 어느 PD는 주변의 도움도, 기관의 개입도 혹여 자식에게 누가 될세라 결사적으로 거절하고 열악한 골방에 드러누워 연명하던 할머니를 만났다. 노인들은 아동과는 달리 본인의 의사에 반한 주거 이동이나 분리가 어렵다. 오히려 그것이 노인들에게 더 큰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만나고 왔던 PD는 무슨 수를 쓰든 거기 계시게 하면 안될 것 같다며 며칠 동안 고심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퀴퀴한 냄새 그득하여 기관 사람들도 코를 싸매야 들어가던, 햇볕도 들지 않고 온기도 전혀 없는 골방에서 색색거리며 힘겹게 호흡하면서도 자식 흉이라도 보면 성을 내면서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할머니. 식민지 시대의 고달픈 딸로 태어나 전쟁을 치루고 그보다 더 참혹할 수도 있었을 일상의 전투를 겪느라 만신창이가 되었던 할머니가 마침내 반가울 수도 있는 죽음을 맞았을 때 할머니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아마 나지막히 이렇게 읊조리지는 않았을까. “우리들의 죽음”의 아이들처럼.

" 아들아 내 딸들아. 죄스러워하지 마라. 이건 너희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둘째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도저히 안되겠다고 포기하라 할 처지만 아니었더라면,
셋째가 죽어갈 때 팔 집이라도 있어 치료비를 댔더라면,
너희들 하고 싶은 거 하나라도 똑똑히 해 준 부모였다면
너희들을 원망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아니지 않았니.
진작에 끊겨야 했을 목숨 질기고 질겨 이제야 너희 어깨를 떠난다만
하늘나라에는 내 가서 먼저 간 셋째와 함께 터를 잡고 있으마.
거기서는 너희에게 한을 물려주지 않으마.”

1990년 3월 9일 연기에 질식하고 불길에 휩싸여 죽어간 남매의 명복을 빈다. 다시는 이렇게 떠올리는 것만으로 눈가를 찌르고 코끝을 맵게 잡아당기고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란다. 비록 부질없는 소망이라지만.

그 노래를 다시 듣는다.

http://www.youtube.com/watch?v=RCXYXYdL3-w

[ 김형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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