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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이나 기타 기업주들의 모임에서 즐겨 나오는 소리가 ‘반 기업정서’다. 성실히 일하여 이윤 내는 기업인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고, 기업하면 죄 돈에 눈이 벌건 흡전귀들로 보는 시각이 너무나 팽배하여 대한민국에서 기업해 먹기 참 힘들다는 한탄이 되겠다. 하지만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으며 때지 않은 굴뚝에 매연이 시커멀 리 있는가. 반기업 정서라는 ...것의 원흉은 대개 기업인들 자신임을 인정하고서야 반기업정서는 잦아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1971년 3월 11일 오늘 세상과 이별한 아주 특별한 경영주 유일한의 죽음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유일한의 생을 더듬어 올라가면 유일한도 유일한이지만 그 아버지 유가연의 행보에 일단 경악하게 된다. 평양 사람으로 기독교인이었던 아버지 유기연은 청일전쟁을 만나 강계로 피난가는 와중에 장남 일한 (초명은 일형)을 얻는다. 수완 좋은 사업가로서 세계적 미싱사의 평양 지점을 운영하기도 했던 아버지 유기연은 빨리 개화된 문물을 습득해야 나라고 사람이고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고, 장남 유일형이 아홉 살이었을 때 미국으로 보내 버린다. 무슨 연고지나 연고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외교관의 순방 행렬에 딸려 만리타향으로 보내 버린 것이다.

중학교 시절 학비를 위해 신문 배달을 하던 일형은 보급소장이 ‘형’자가 발음하기 어려웠던지 자기 맘대로 ‘일한’으로 표기한 것을 보게 된다. 소년은 그 이름에서 한(韓)자를 떠올렸고 한 자가 들어간 이름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아버지와 상의했다. 아버지의 답장이 왔다. “바꿔라. 네 동생들도 돌림자를 한으로 하겠다.”

그렇게 새로운 이름을 얻은 유일한은 미시건 대학 상과를 졸업하고 제너럴 일렉트릭 등에서 진귀한 동양인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디트로이트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가 손댄 것은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숙주 나물 통조림이었는데 아직 보관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잘 변하고 쉬어버린다고 배신자 신숙주 나물이라고 불리웠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인 숙주나물의 신선한 유통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유일한은 연구 끝에 숙주나물 통조림을 고안해 냈고 친구와 함께 라초이라는 식품 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이제는 홍보가 문제였다. 그러자 유일한은 일종의 파격적인 노이즈 마케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숙주나물을 가득 실은 트럭을 몰고 시내 가게의 쇼윈도로 돌진한 것이다. 일대 소란이 빚어지고 기사가 크게 떴다. “숙주나물 가득 실은 라초이 회사 트럭 쇼윈도로 뛰어들다.”

거래선 확보를 위해 중국으로 갔다가 20년만에 귀국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조선인들의 참상이었다. 동포들을 위해 뭔가를 하겠다고 결심한 그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린다. 미국 사업을 정리하고 고국에 들어오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전단계로 그는 미국에서 조선 진출을 염두에 두고 유한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지금까지 유한양행의 상징이 되고 있는 버드나무 상표는 재미교포들의 지도자격이었던 서재필이 제안했던 것이다. 이후 조선으로 돌아온 유일한은 ‘유한양행’을 설립, 동포들을 상대로 한 기업을 세운다.

그의 경영 방침을 말해 주는 일화 하나. 한 직원이 시장 조사를 하고 와서 “사장님. 마약중독자들이 증가하고 있어서 모르핀, 헤로인 제제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걸 만들어 팔면.....”이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유일한은 노발대발 그를 내쫓아 버린다. “내가 자네 머리 속에 넣어 준 게 고작 그런 것이나 생각하라는 거였나? 이런 고얀.”

마약성 진통 성분을 강화한 약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올 때에도 유한양행은 그를 거부했다. 되레 이윤은 남지 않지만 꼭 필요한 분야에 투자를 했고 ‘버들표’에 대한 신뢰는 그만큼 굳어 갔다. 30년대 유한양행은 보관료가 비싸서 다른 회사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던 긴급약품들, 맹장염 혈청과 뇌척수막염 혈청 보관 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각처의 병원들에게 제공할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미국으로 간 뒤 전쟁이 터져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는 또 하나의 엉뚱한(?)일에 개입한다. OSS가 조직한 조선 국내 진공 특공 작전 ‘냅코’에 참여했던 것이다. 이 사실은 그가 죽은 지 40여년만에 밝혀진다.

유일한은 기업가로보다 교육자로 불리기를 원했다. 6.25 이후 국가 재건을 위해서는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이 급선무라고 판단했고 재단법인 유한학원을 세워 한국고등기술학교 (유한공고)의 첫 신입생을 받는다. 돈을 버는 대로 교육 사업에 쏟아붓는 그를 만류하는 이들에게 유일한은 이렇게 답했다. “교육이란 건 제 때 투자해야 되거든. 아무리 어렵더라도 이 나라의 청소년들에게 (교육에서 소외되는) 희생을 강요해선 안돼.”

정치자금을 바치지 않아 이승만 (이승만과는 미국에서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과 박정희 정권 내내 뻔질나게 세무사찰을 받았지만 세무서 관리들까지 감탄할 정도로 깨끗하게 기업을 운영했으며, 회사에서 사택을 지어 주자 자신의 주식 배당금으로 그 대금을 지불했고, 유한양행에서 나온 약조차 자비로 사 먹었고, 일단 자식을 불러들여 기업 운영을 맡겨도 봤지만 그 철학이 자신과 맞지 않자 주저없이 전문 경영인에게 자신의 회사를 넘겨 버린 경영자. 그가 유일한이었다. 그는 딸에게 유한공고 내의 토지를 상속하되 그를 유한동산으로 꾸며 줄 것을 유언한 후 조건을 달았다. “울타리를 치지 마라. 유한 학생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여 어린 학생들의 맑은 정신에 깃든 젊은 의지를 지하에서나마 보고 느끼게 해 달라.”

이 유언장을 남기고 1971년 3월 11일 유일한은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 기업인의 사회적 양심의 평균적 촉수가 이 사람의 반만큼만 발달했더라면, 아마 우리 나라 기업인들이 개탄해 마지않는 ‘반기업정서’는 반 아니 1/10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무책임한 선물 거래로 수백 수천억을 날리고, 자기 자식에게 헐값에 재산을 물려 주려고 별 짓을 다하고, 온 나라를 ‘관리’라는 이름의 부패의 늪에 빠뜨리고, 노동쟁의가 일어나면 가처분 소송을 걸어 그 목을 죄어 버리는 기업인들이 내가 유일한보다 못한 게 뭐 있느냐고 왜 나를 존경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대단한 이율배반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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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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