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여성의 참정권은
터무니없는 소리에 불과했다. 여성의 생리가 정치적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는 멍청한 이유를 들었지만 사실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게 그저 ‘당연’했기 때문이다. 진보는 이 사회의 ‘당연함’을 의심하는 데에서부터
비롯된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청소년을 둘러싼 당연한
담론들이 굉장히 많다. 그 당연한 것들을 하나하나 의심하고
따져보도록 하자.
성인과 미성년자,
그 기준은 나이?
‘매년 그 전까지는 미성숙했던 청소년이 1월 1일이 되면 갑자기 성숙해지고 술을 마셔도 정신력이 흩뜨려지지 않으며, 담배를 펴도 덜 해롭다. 매일 pc방에서 밤을 새가며 게임을 해도 중독되지 않고 애를 가져도 책임질 수 있다.’ 위의 문장, 많이 이상하지 않은가? 허나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매년 1월 1일만 지나면 미성년이 갑자기 성년이 되고 청소년에게 성숙함이 생긴다고 믿는다. ‘어린 것들’에 대한 왜곡된 시선은 성년 초기에도 있긴 하지만 왜 12월 31일에는 없던 성숙함이 그 바로 다음날인 1월 1일이면 갑자기 생긴다는 걸까?
인간은 모두 미성숙한
존재이다. 사람은 누구나 술을 많이 마시면 취하고
담배도 많이 피면 건강에 좋지 않다. 게임에만 몰두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나이가 많아도 애를 갖고도 책임지지 못할
수도 있고 나이가 적어도 온 정성으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 절대적인 시간을 기준으로 미성숙과 성숙을
구분하는 건 이렇듯 허구적이다.
청소년에게는 유예된
삶
대한민국은 전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한다. 80%이상의 청소년이 대학을 가야한다는 내외적 압박에 자신의 삶이 유예된 시간들을 보낸다. 나만 해도 7시에 기상해서 등교 후 수업을 듣는다. 7교시가 끝난 후에는 밤 12시까지 야자를 한다. 강제되는 야자는 아니다. 하지만 12시까지 야자실을 운영하고 곁에선 책 넘기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학교에서는 대학진학을 위한 성적만이 지상최대의 가치로 인정된다. 집에서는 부모님이 내가 책을 읽으면 불안해하고 당장 영어 한 단어를 더 외웠으면 하신다. 학벌이 필요이상으로 비대하게 사회에서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반증한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한 개인에게 ‘싫으면 하지 마’ 혹은 ‘하고 싶은 건 좋은 대학가서 해’ 이라고 하는 건 너무나 무책임한 이야기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이처럼 ‘삶’이 유예된 시간들을 보낸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들은 대학진학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면 쓸모없게 취급된다. 또한 그 대부분의 가치를 비청소년이 미리 규제하여 싹을 잘라버린다. 난 대학을 가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화도 음악도 게임도 할 수 없다. 내겐 자유도 권리도 없다. 오직 내게는 대학교를 가기 위한 공부만이 허락된다. 정말 ‘이게 사는 건가?’ 싶다.
탈학교 청소년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무슨 선택을 했든 사회에선 대학가길
강요한다. 때론 학교에 있을 시간에 왜 학교에 있지
않느냐며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왜 청소년이 대학가는 게 당연한
걸까?
청소년은 존엄한
인간
청소년은
미래지향적이며 부차적인 존재로 규정되어왔다. 흔히 청소년은 부모의 소유물 혹은 국가의
인적자원으로 인식된다. 아직도 가정에서는 훈육을 위한 체벌이
당연시되며 상대적 약자인 청소년의 정당방위는 인정되지 않는다. 또한 가정폭력을 당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제대로 된 해결책이 없으며 가정을 떠나 경제적인 독립을 추구하는 것조차 법률상으로는 금지되어있다.
부모는 청소년에게 ‘투자’하고 청소년은 상품으로서
경쟁한다. 국가는 청소년들이 미래의 주체로서 기능하길
요구한다. 따라서 현재 청소년이 판단하거나 선택하는
건 인정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자아를 실현하는 인간이 아니라 좀
더 숙련되고 전문화된 노동자로서 기능하길 강요한다. 청소년은 현재를 살아가며 선택을 하는
주체이다. 소유하는 물건이
아니다. 청소년은 존엄한
인간이다.
청소년은 규제의 대상이 아닌 선택의
주체
정부에서는 요새 숨 돌릴 틈 없이 청소년을 보호한답시고 정책들을 생산해낸다. 하지만 그 정책들은 하나같이 제대로 된 보호가 아닌 규제를 하고 있다. 셧다운제, 쿨링오프제, 멀티방 출입금지, 음란물 차단, 문화 예술 작품 등급제 등등을 통해 청소년의 감각을 모두 막아버리는데 일조한다. 심지어 노래 가사에도 술, 담배, 혹은 약에 대해서만 나와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듣지도 못 하게한다. 정말 입시 공부 말고는 아무것도 못하게 할 요량인가보다. 이는 청소년을 선택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리면 스스로 통제가 잘 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비청소년이 대신 통제하는
것이란다. 하지만 인간을 통제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그
시각 자체가 오류이다. 인간은 통제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주체이다. 청소년도 마찬가지이다.
진정한
보호란?
청소년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맞다. 청소년은 사회적 약자가 맞다. 또한 현재 청소년을 둘러싼 억압적 기제들에서 벗어나기 위한 보호가 시행되어야 한다.
-청소년은 폭력에서 보호받아야한다. 최근 학교폭력이 문제되고 있다. 청소년에게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심각한 언어폭력을 행사한다. 문제제기는 말대꾸라며 용납되지 않고 어쩔 때는 호되게 맞기도 한다. 가정에서도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다수의 청소년은 비청소년의 폭력적 대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청소년은 비청소년에 비해 사회적 약자이며 이러한 일상적인 폭력에서 보호받아야한다.
-청소년은 노동시장에서 보호받아야한다. 청소년의 경제적인 독립성이 보장되어야하며(주거계약권등)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보호받아야한다. 청소년은 상대적으로 미숙련 노동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전문 노동이 기회비용으로 치러지는 시기이다. 청소년의 최저임금을 비청소년보다 높이 책정하여 경제적인 보호를 받아야한다.
-청소년의 학습권은 보호받아야한다. 가정에게 청소년의 학습권의 보장을 전가시킬 것이 아니라 배우고 싶은 청소년에게는 교육 커리큘럼을 이수할 의지만 있으면 학습할 수 있어야 한다. 돈이 없어서 학교를 못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무상교육을 보편화해야한다.
청소년은 보호받아야할 권리가 있음에도 정부는 그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 오히려 억압과 강제를 보호랍시고 들이댄다. 진정한 보호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 생각된다.
사회에서는 아직 나이가 곧 권위로 직결되며 이에 따라 청소년은 많은 부분에서 배제, 강제되고 있다. 우리 앞으로 이 당연한 것들을 보다 의심하고 이후의 것을 함께 상상하고 실현시켜나가는 진짜 진보가 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