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고민도 많이 하고 당원들과 의견도 나누었습니다. 전국위원회가 곧 열리기에 이제 저의 생각을 공식적으로 밝힐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의견에 대해 찬반이 있을 겁니다. 앞으로 더 의논하고 토론할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각자의 생각이 어떻든지 우리는 같은 길을 걸어왔고 같은 길을 걸을 사람들입니다. 이점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시당위원장으로서 전국위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저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당의 진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저의 생각을 밝힙니다.
최종합의문은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분당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비판을 들을 만하다. 합의문의 문구 하나하나를 떠나 진보정당운동 전체가 여전히 혁신의 계기를 살리지 못하고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음을 합의문은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합의문 자체만을 보고, 이에 대한 호불호를 기준으로만 찬반 표결을 하거나 우리 전체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정치적 입장을 정해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종합의문은 지금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진보신당의 힘을 반영하는 것이다. 민노당 우호세력에서부터 우리 당의 우호세력까지 모두 합의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고립을 자초할 수 없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우리의 힘이 여기까지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남은 것은 진보정당운동의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문제다.
지금 우리 앞엔 공식적으로 두가지 길이 있다. 합의안이 가결되어 노조와 진보정당에 우호적인 사회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민노당 등과 한 배를 타는 것이 하나이고, 합의안이 부결되어 사회당과 한 배를 타는 것이 또 하나의 선택이다.
전자의 길은 진보정당 지지층의 다수가 원하는 길이며 보수정당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력한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은 대표진보정당 내 소수파의 길을 걷는 것이다. 진보신당 당원의 반은 이미 그 경험을 한 바 있다. 다수파와의 갈등 속에서 분당의 아픔도 겪었다. 합의문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뭔가 새로운 변화를 담보할 만한 것은 분명치 않다. 이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치와 노선, 우리의 지도자를 키워내야 한다. 우리는 진보신당 3년간 완성하지 못했던 반성과 혁신의 대안을 만들어내고 이를 당 내외에서 실현해야 한다. 믿을 곳은 대중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당원들은 진보신당에서 해 온 활동이상의 모범을 창출해 내야 한다. 참으로 어려운 과정이다. 그러나 그 길 외에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후자의 길을 선택했을 때 우리는 생존할 수 있는가? 굉장히 어렵다. 현실에서 정당으로서의 존재감이 상실될 가능성이 많다. 조직도 정책도 재정도 언론의 도움도 없는 작은 정당이 더구나 색깔이 비슷한 큰 정당이 있는 상태에서 대중의 주목을 받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만일 우리가 고유의 노선 때문에 혹은 불량합의문 때문에 후자의 길을 갔을 때, 진보정당의 지지층이 "명분 있다"고 생각해 준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과연 현실이 그러한가?
옛날 민노당시절 우리는 보안법 철폐투쟁에 올인한 지도부를 비판했다. 민생회복에 대한 대중의 열망과 관심사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쟁점인 3대세습문제를 보자. 이 논쟁이 끝장으로 격화되면 결국 긍정하든 부정하든 모두 이 문제에 올인하는 꼴이 된다. 우리에겐 이 문제가 운동의 가치로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대중은 일자리, 아이들 공부, 집값, 먹거리, 이런 게 절실한 가치다. 이 문제 때문에 새 정당 건설이 부결되었을 때 대중이 손을 들어줄까? 그렇지 않다. 3대세습만을 떼어놓으면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내 대중은 냉정하게 자신의 관심사로 돌아간다. 분당과 창당과정에서 우리는 그것을 이미 학습했다.
물론 현실 정치의 인정 여부를 떠나 우리의 소중한 가치를 버리지 않고 작은 활동을 해나가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활동을 해 온 사회당의 모델도 있고 각종 정치단체의 경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중정당의 영역과는 거리가 있다. 진보정당 하겠다고 나섰을 때 우리가 가고자하는 길은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목표는 보수정당일색의 정치구조를 바꾸어서 진보적인 사회제도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우리는 의원도 내고 단체장도 배출하고 대선에서 대중의 힘을 결집시켜 그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 다른 선택이 없으면 모르겠지만 차차선이라도 있다면 그 내용에 맞는 형식을 선택해야 한다. 불량투성이 자동차라도 고쳐가며 가야 한다.
지금까지의 논의과정, 그리고 6월 당대회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많은 당원들이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 백인백색, 이견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논쟁과 이견표출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논쟁 자체가 조직을 활성화시키기도 하고 이 분위기가 실천으로 연결될 때 희망은 배가된다. 개인의 견해를 떠나 함께 하고자 하는 노력을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연재 (대구시당 위원장, 전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