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조금 특별한 산행을 했다.
진보신당 은평당협 사람들이랑, 가방에다가 'NO! 케이블카' '케이블카 안 돼~'라고 쓴 글을 달고 북한산을 오른 것. 북한산에 케이블카 세우는 것을 반대하는, 조용한 시위에 비길 법한 산행이었다.
산행만 한 건 아니었다. 산행하기 전에 서명 받는 일도 했다. 실은 그래서 토요일에 일어나기가 무척 싫었다. 회사 안 나가는 토요일이면 늘어지게 자는 게 나 같은 사람한테 진짜 크나큰 행복인데 그 행복을 포기하는 것도 속이 상했거니와, 그저 산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서명까지 받아야 하다니!
으~ 내가 못살아. 서명 받으려면 또 사람들한테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해야 하고, 그러자면 또 싫은 소리도 듣게 마련이고. 산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인데 그거까지 해야 한다니 내 마음이 어찌 편할 수 있으랴. 허나 어쩌겠나. 케이블카 반대 운동을 더는 모르는 척할 수는 없는 일, 나도 한 걸음 보태지 않으면 안 되는 일. 눈 딱 감고, 아니 눈 딱 뜨고 번쩍 일어나서 북한산으로 갔다.
처음엔 피켓만 들려고 했다.
왜? 쑥스럽다. 그리고 귀찮기도 하다. 사람들이 서명하게끔 말하는 일이. 그래서 피켓을 들고 있는데, 슬슬 발동이 걸렸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피켓과 현수막 말고 '소리'가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참 용기내서 외쳤다. "북한산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서명 부탁드립니다!"
어라? 그랬더니 이쪽 쳐다보지도 않고 걸어가던 사람들이 이쪽을 본다. 그리고 온다. 이거 괜찮네, 하면서 계속 외쳤다. 목이 아플 만큼. 기왕 이렇게 나온 거, 또 언제 나오게 될지 모르는데, 서명 잔뜩 받고 싶은 욕심도 막 생겼다.
어쨌든, 그렇게 외친 효과는 좋았던 것 같다. 정말 사람들이 서명하러 많이 와주었으니까. 기분 좋다. 역시 운동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 실천하기 전에는 두렵고 귀찮지만 실천하고 나면 참 뿌듯하고 보람차고 그렇다. 그걸 알면서도 왜 그렇게 뭘하겠다고 첫 마음 같기가 어렵기만 한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걸림돌은 있었다.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진보신당’이라는 것. 아니 ‘정당’이라는 것. 큰 문제까지는 아니었지만 역시나 몇몇 분들이 ‘진보신당’을 걸고 넘어진다. “시민단체에서 해야 할 운동이지, 정당이 하면 사람들이 불편해한다고.” “진보신당에서 하는 거니까 안 해요.” “이념을 빼고 하세요.”
다른 때 같으면 “예, 예~” 하고 말았을 거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그냥 그렇게 죽어지내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무슨 죄 졌어? 왜 진보신당 이름만 나오면 걸고 넘어지냐고!!!! 하는 마음속 외침은 컸지만 대답은 나름 조용히 했다.
“시민단체들도 이 운동 계속 하고 있어요. 저희는 은평에 사니까 아무래도 북한산에 가까우니까 이 운동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시는 거고요.” 그러니까 한 번 ‘정당’ 어쩌구 하고 딴지 건 남자분이 이어서 또 묻는다. “민주당은 뭐 하나? 이런 거 안 하고.” 그래서 얼른 대답했다. “글쎄요. 아마 관심이 없나 보죠. 은평 구청장도 반대는 하고 싶지만 케이블카 설치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겠다고 이야기도 했다던데요?”
그러니까 그 분, 더 말씀은 안 하셨다. 오히려 그 뒤론 이렇게 하면 더 사람들이 많이 참여할 거라는 둥, 나름대로는 조언을 해 주셨다. 마지막엔 명함까지 주면서.
걸림돌은 '진보신당' 이름에만 있던 건 아니다.
어느 여자분이 같이 있던 당원한테 아주 길게 항의하고 가셨다.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은 이 좋은 풍경 보고 싶지 않겠냐고. 케이블카 설치 반대에 맞닥뜨릴 때, 찬성하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들고 나오는 바로 저 문제. 항의를 들은 사람이 열심히 설명을 하지만, 그 사람은 막무가내다. 열심히 항의하는 모습, 열심히 대답하는 모습을 귀동냥 눈동냥으로 듣고 보면서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저 질문 받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이렇게 해 보면 될까나? 하고 짜 본 대답거리는 이랬다.
"케이블카는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을 위해 만드는 건 일단 아니고요, 그리고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을 배려하려면 케이블카 말고도 챙겨줘야 할 일이 아주 많거든요. 산이 아니라, 평평한 길도 맘대로 못 다니고 있는 그분들 길부터 맘대로 다니게 해 줘야 할 거고요, 노약자들도 살림을 더 보장해준다든지 할 일 참 많아요. 돈 벌려고 케이블카 설치하는 거지 거기에 장애인, 노약자 문제를 갖다 대는 건, 정말 이치에 맞지 않거든요. 그리고 혹시라도, 이 케이블카를 오로지 장애인, 노약자들만 쓸 수 있게 하려고 세우는 거라면, 그리고 그분들이 공짜로 쓸 수 있게 할 거라면, 나도 케이블카 설치 반대하는 거 다시 생각해 볼 마음 있어요."
사람들이 항의하고 뭐라 하면 기분 나쁘고 마음도 힘이 들지만, 이렇게 내 마음을 다시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힘도 된다. 그러니까, 상처받기보단, 잘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 운동이 더 단단해지게 도와주는 분들이라 여기고. “난 찬성이야!” 하고 짧게 따지는 분 정도는 가볍게 웃으며 보내드리고. 더 대꾸할 거 없이. 딴지 걸 땐 외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니까.
큰 현수막을 펼쳐들고 있으니 사람들이 참 많이 쳐다본다. 그리고 이게 무슨 장면이냐고 많이 묻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현수막에다 글도 남겨 주신다. 좋은 홍보물은, 좋은 운동을 하는 데 소중하고 든든한 동무가 되어준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현수막 만들어주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를!!
그렇게 서명받는 일을 아침 아홉시부터 두 시간쯤 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나로선 주말 아침에 큰일 치른 것인데, 이제 더 큰 일이 남아있으니 바로 산을 오르는 것. 그것도 아직 가보지 않은 ‘백운대’! 백운대로 가는 완만한 길을 골라서 당원들이랑 가방에 'NO! 케이블카'라고 쓴 종이 또는 천을 달고 산길을 걷는다. 걸으면서 몸 운동도 되지만, 케이블카 반대 운동도 같이 된다고 생각하니 힘들어도 기분이 좋다. 지나가는 분들이 응원하는 말씀 툭툭 건네주실 땐 더 그렇고.
실은, 어제 산행 결심하게 된 건 북한산 단풍이 어제가 거의 마지막 절정이라는 꼬드김에 넘어간 것이 컸다. 가는 곳곳에 정말 단풍이 가득하다. 산 공기 좋고, 단풍 이쁘고. 산에 오르는 기쁨이 몸과 마음에 가득 채워진다. 물론 힘들지만. 체력이 바닥으로 내려 간 나로선 참……. 그래도 좋다. 힘들어도. 난 본디 산 좋아하는 사람이다. 산도 잘 타던 사람이고……. ^^
| ▲ 맨 왼쪽에 계신 분이 산상 시위 하고 있는 김대장님이다. © 조혜원 | |
점심도 먹고, 쉬고 하다 보니 세 시간도 넘게 걸려서 백운대에 다다랐다. 산상 시위를 하고 있는 김 대장님도 만났다. 아직 점심을 못드셨다기에, 비상식량으로 남겨 둔 김밥을 드렸다. 김밥 많이 사길 잘했다. 거기다 막걸리도 드렸는데, 무거워서 몇 개 안 산 걸 참 후회했다.
왜냐하면 산에서 먹는 막걸리는 정말 맛이 짱이다. 한 잔 먹고는, 김 대장님 조금이라도 더 드시라고 참았다. 참기 힘들었지만. (나중에 산에서 내려와 막걸리를 마셨는데, 정말이지 산에서 먹은 그 맛이 아니었다. 그 맛을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산엘 다시 가야겠다. 좀 무거워도 막걸리 좀 몇 병 사 들고.)
김대장님 밥 드시는 동안 당원들끼리 돌아가면서 피켓도 들고 서명도 받고 사람들한테 케이블카 설치에 대한 설명도 하고 그랬다. 산 아래에서 서명받을 때랑은 또 느낌이 달랐다. 땀 한가득 흘리고, 숨 헉헉대면서 서명하는 사람들을 봐도 그렇고, 저 멀리 여러 봉들을 바라봐도 그렇고. 정말로 북한산에 케이블카가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케이블카를 놓는 순간, 북한산이 더는 북한산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말이다.
앞으로 이 일을 천 일 동안 할 거라 한다. 김 대장님도, 시민단체들도, 우리들도. 북한산은 물론이고 설악산, 지리산에도 케이블카 설치를 막기 위해서.
그런데, 어제 서명운동도 열심히 하고, 또 정말 오랜만에 힘든 산행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 치이면서 저 아름다운 산을 바라보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르는 게 맞을까? 케이블카고 뭐고, 이렇게 많은 발들로 산을 밟아대도 괜찮은 걸까?
문득 북한산에 묻고 싶어졌다.
“북한산아, 우리들이 어떻게 해서든 케이블카 세우는 건, 네 몸에 대못을 박는 짓은 막아볼게. 그런데, 그것 말고, 우리 사람들이 계속 산에 와도 괜찮긴 하겠니? 우리들이 산과 어울려 지낼만한 자격이 있는 거 맞겠니? 난 왠지 자신이 없다. 우리가 그럴 자격 없는 것만 같아서.”
‘국립공원은 마지막 남은 자연입니다. 그곳 주인은 아름다운 동식물들이며, 사람은 다만 방문객일 뿐입니다.’라고 국립공원관리공단 누리집에 나와 있다.
나는, 우리는 방문객 자격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라도, 케이블카 설치 반대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 할 것만 같다. 알아야 더 많이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산을 많이 알게 되면, 아마도 내 안에서 저절로 피어난 저 물음에 내 안에서 저절로 답이 피어날지도 모를 테니. 그래서 당분간은 좀 더 산에 오르련다. 케이블카 설치를 막으려는 그 의지가, 실천이 방문객 자격을 조금이라도 줄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