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 1
출구가 안 보인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지 답답함은 여전하다. 때로는 아침 다르고 저녁이 다르다. 참으로 혼돈스럽다. 황희 정승처럼 이 말도 옳고, 저 말도 옳은 것을.... 논쟁(소통)은 여전히 필요하고, 양단(兩斷)간에 결단은 8월에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돌아보면, 진보신당 창당초기 진보정당운동 10년을 평가하며, 당내 민주주의를 무엇보다 강조했다.(‘당내 민주주의’와 ‘패권주의’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소통하는 당, 토론하는 당, 참여하는 당을 만들겠다고 했었다. 그만큼 당의 주체는 당원이 아니라 소수의 의해서 ‘좌지우지’ 하였음을 스스로 평가한 부분이다.
그런데 오늘 장석준 동지가 레디앙에 기고한 글을 보면 “논쟁도 해 볼 만큼 했다는 것이고,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은 ‘꼼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양단간에 결단 (決斷)을 통하여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라고 밝히고 있다.
결단은, 내 아픔을 감내하며 살을 도려내고, 배를 가르는 일이다. 하지만, 나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결단이 주는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어쩌면 결단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지난 20년 동안 한 길을 걸어왔던 사람으로서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근본적 회의감’을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낮술을 부으며 이런 넋두리를 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사회당(당시 청년진보당)과 민노당에 양다리를 걸치고 후원을 했던 것처럼 또 양다리 걸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결단 2
어제 서구당원 전체모임이 있었다. 그 자리엔 이상구 전 위원장이 오셨는데 예전에 만났던 모습보다 야윈 흔적이 보였지만 얼굴엔 여유와 편안함이 뚜렷했다. 그런데 조금은 생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근자에 원창동 모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20여 년 만에 현장노동자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16여 여 만에 현장노동자로 돌아간 사실을 상기했을 때, 그 기분 십분 이해하고 남는다. 처음엔 어눌한 손놀림에 치사한 야단도 듣고, 다음 날 몸을 일으키기가 그렇게 무거우 수 없었다. 그렇게 세월을 버티고 이겨내니 다음 달이면 벌써 1년을 채우고, 또 다시 2년을 시작한다.
내가 현장으로 돌아간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적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초심’(初審)으로 돌아가려는 내 자신을 ‘성찰’(省察)하고자 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자기부정’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선(異線)으로 물러나 평당원의 모습에 현장 노동자로 살고 있는 이상구 전 위원장님은 무엇 때문에 현장으로 돌아간 것일까?
아무튼 이렇게 현장으로 돌아갔던 나는 또 다시 분에 넘치는 직책과 책임을 맡고 말았다. 그리고 이 중차대한 결단의 시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별로 없다는 무력감으로 가득하다. 아무리 고뇌하고 곱씹어 생각해도 ‘초심’이 아니라 사심(私心)없이 현재의 자리를 떠날 때가 되었음 자각(自覺)하는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