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당협 토론회 후기, 결국은 '너와 나의 패권'
편하게 적겠다.
1.
좀처럼 새진보정당 관련 토론회엔 안 나가려고 한다. 무심코 한 발언이 널리 퍼지기도 하고 발언 내용으로 험담을 듣거나 이런저런 친구들로부터 무슨무슨 제안을 받는 것도 귀찮기 때문이다. 그제 내가 남구당협 토론회에 간 것은 인근에 일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남구 장광수 위원장님이 지난 번 우리 부평계양당협 당원대회에 축하 차 오신 것에 대한 답례차원이었다. 주고받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토론 분위기는 무척 괜찮았다. 윤성환, 이근선 님의 거칠고도 소신 있는 발제가 듣기 좋았고 일정 경향을 가지고 있는 장광수 님도 사회자로서 엄정 중립을 지키는 게 눈에 띄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당원들의 진지한 모습도 존경스러울만 했다. 항상 부족한 건 시간, 사실 2박3일 동안 이야기해도 결론을 내지 못할 내용이지만 이 날은 특히 시당차원의 캠페인 시간에 맞추느라 서둘러 마쳐야 했던 것은 못내 아쉬운 일이었다.
진보세력 통합의 당위성에 무게중심을 둔 윤성환 님과 민주노동당의 태도문제를 중점 제기한 이근선 님의 발제는 '새 진보정당 건설'을 보는 관점에 있어 당내 두 흐름을 대변한다고 하겠다. 어떤 토론회를 열더라도 이처럼 극명하고 체계적인 입장 차이를 가까이서 접할 수 없기에 이 날이 굉장히 소중했던 자리였음을 아마도 우린 나중에야 알아차릴 것이다. 두 분 다 수고하셨다. 발제 가운데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을 골라 아래와 같이 얘기해도 혜량하시리라 믿는다.
2.
윤성환 님은 '자본주의 극복' 문구가 연석회의 합의문에서 빠진 것, 종북, 패권, 향후 선거입장 문제가 아직 합의되지 못했지만 이견의 90%가 해소되었다고 했다. 이는 무조건 통합만 되면 '집권 가능성'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거나 아니면 '상당한 의석을 확보해 의회 내 의미 있는 세력'이 될 것이라는 낭만주의에서 기인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다 보면 응당 '종북이나 패권주의 문제에서의 이견'이란 통합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진보운동은, 대중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일반 부르조아를 대변하는 당의 운동과 근본으로 달라서, 그 이데올로기 공세를 뚫으려는 대중 침투, 즉 사회운동 기반이 없다면 우파 386 정치인들처럼 쉽게 기회주의로 흐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진보 운동과 대중투쟁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대중투쟁이야말로 "진보의 학교"이기 때문이다. 또한, 진보정당 운동과 사회운동을 굳이 구분하려는 윤성환 님의 주장은 그동안 지역과 부문에서 곤고한 투쟁을 겪어 온 이들에 대한 폄훼, 또는 의도적 무시로 비춰질 수 있기에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는 통합에 있어 상층 통합만 중시하고 특정 세력은 배제하고 가겠다는 일부의 경향과도 일치한다. 즉 "당과 당원을 팔아넘긴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당 한쪽에서 제기하는 '종북이나 패권 문제'란 자연히 그들에게 아주 사소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는 "변형된 도로민주당"노선이다.
한편, 이근선 님은 '종북과 패권' 문제가 분리된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민주노동당 당원의 상당수가 종북노선에 물들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의 패권주의가 '주사파 수령론'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고는 보지 않는다. 만약 주사파에 동의하지 않는 우리가 당내 패권을 가지고 있다면 '종북' 입장을 저들과 마찬가지로 깔아뭉갤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 내에서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 정파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근선 님의 대부분 주장은, 만약 합당 과정에서 "패권주의" 문제가 일정 정도 해소가 되면 그 비판 수위가 낮아질 수 있을 개연성을 내포한다. 본인은 의식하지 않을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 그 주장 속에 도사리고 있는 건, "패권"인 것이다. 이근선 님 주장을 폄하하는 게 절대 아니다. 패권, 그 문제의식은 옳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다. 아무리 옳은 견해라도 수에서 밀리면 관철되지 못하며 당내 예비선거에서도 불리한 법이잖은가. 이는 많은 당원들을 통합에 주저하게 만들고 있는, 실질적으로 가장 큰 문제다.
아울러 윤성환 님이야 그 주장 흐름에 근거해 '자체역량 강화'에는 소홀한다고 해도, 이근선 님처럼 당 역량강화를 많이 이야기하는 분이 시당과 당협 차원에서 그 구체적인 구현형태를 제시하지 않은 건 아쉽다. 이는 토론에 참여한 송형선 님의 '독자파'에 대한 지적처럼 "전망 없이 독자노선을 이야기하는 것도 문제"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변형된 도로진보신당"노선과 다르지 않다.
내가 주목하는 건, 이렇듯 두 발제자에겐 구체적인 헤게모니 전략이 없다는 것이다. 윤성환 님은 합당 뒤에 어떤 가치로 헤게모니를 관철할 것인가 하는 안이 없고, 이근선 님은 불가피하게 독자노선을 취할 경우의 합리적인 중장기 헤게모니 관철 전략을 제시하지 않았다. 윤성환 님은 굳이 헤게모니가 무슨 상관이냐는 입장이어서 그렇고, 이근선 님은 지금 관성대로 당원 배가하고 당비 올리고 하다보면 장차 무슨 그림이 그려지지 않겠냐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그게 개인적인 헤게모니 전술일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당직자가 취할 책임 있는 태도는 아니다).
3.
나는 토론 말미에 돌아가며 소감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지역과 부문 역량 강화'를 말씀드렸다. 이 자리를 빌어 두 발제에서 소홀하게 취급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 더 서술하겠다. 특히 '독자파'에 대한 비판이 되겠다.
첫 번째로 부문운동, 즉 노동 강화. 새노추나 독자파들 상당수가 그리고 있는 미래 모습이 소부르조아들까지 잡다하게 모아놓을 '새로운 진보정당'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새노추 경우, <민주노총 비판, 비정규직 등 사회 약자 중심과 그를 통한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 창출>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알고 보면 3년 전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에서 뛰쳐나올 때 가졌던 문제의식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 노선은 실패했다. <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자계급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 않았고 실천에서 노동자계급 헤게모니를 관철하기는커녕, 노동자 운동을 '낡은 팔뚝질'로 취급하는 당내 경향에 맞서 조직적인 투쟁을 벌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나 심지어 민주당과 비교해도 차별성이 없는 개량적 정책, 구호의 남발과 헌신적 연대를 했더라도 자족적으로 그쳤던 게 대중에게 진보신당의 존재감을 각인시키지 못한 원인이다. " 두 당이 뭐가 다른데? 무조건 합쳐." 노동자, 시민대중들로부터 흔히 듣는 소리로, 차별성 없는 개량의 결과는 이처럼 처참한 것이다.
두 번째로, 지역. 진보신당의 고질적인 문제는 역량도 없는 주제에 때마다 찾아오는 선거에 몰입함으로써 시당과 당협 역량을 스스로 고갈시켰다는 점이다. 재정은 취약해졌고 당원 수는 줄었으며 많은 활동 당원들이 당을 떠나 생업전선으로 돌아갔다. 그러다보니 지역 거점을 만들 시간도 없었다. 기존 지역 거점으로 돌아간 당원들도 당에 대해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당의 조직적 지원이나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생각 있는 당협들은 늦게나마 지역에서 약진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그런데 모두 각개약진이고 기존 거점에 있는 당원들과의 소통을 통한 커넥션에는 능력이 없어서인지 그다지 관심이 없다. 시당 차원의 조직적 대응은 기대를 접은 지 오래라 그렇고, "독자노선"을 주창하는 이들 스스로 이들 신 거점과 기존 거점을 광범위하게 묶는 주체적인 기획안을 내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른바 '새 진보정당'과 경합해 헤게모니를 쥔다는 건 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정리하자면, 합당하든 독자로 남든, 노동자계급 중심 노선(새 진보정당과 차별성 부분. 사회주의라기보다도 사민주의 좌파) 하에 지역거점과 부문에서의 중장기(단기적으론 어려우니까) 헤게모니 전략을 정립하고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우린 평생 의미 있는 진보로 자리매김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진보신당의 헤게모니 장악 실패 원인은, 근본적으로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의 우경화와 끊임없는 방해책동에서도 비롯되었지만, 이런 전략 없이 선거에 몰입하기만 바빴던 데서 기인했다고도 생각한다(기존 성원들의 패거리주의도 당 발전을 방해했던 큰 요소인데 그건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서술하겠다. 우리 안의 패권주의, 남 탓 할 필요 없다).
4.
나처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의 향후 거취는 어떤 모습일까? 간단하게 말하면 두 모습일 것이다.
하나는, 독자노선을 주창하는 이들이 '지역과 부문'에서 크게 고민을 하지 않고 기존 관성과 패거리주의로 '새 당 밖에서 헤쳐모여'하는 것이라면, 나같은 이들은 차라리 "새 통합진보정당" 속에서 근거지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뜻이 맞는 이들끼리 블록을 형성할 수도 있겠지. 어차피 이 당에서도 소수파였으니 소수파일 수밖에 없는 그 블록에 몸을 담아도 새삼스럽다거나 그리 곤란할 것도 없다. 고만고만한 물이라면 아예 큰 물에서 노는 게 좋다. 며칠 전 중앙당게에다가도 밝혔듯이 '도로진보신당'도 내겐 끔찍한 일이다. 나는 연석회의 합의에 분개하는 몇 당원들의 문제의식이 아직 '도로진보신당' 차원에 머물고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종내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잠시 쉬는 것, 어쨌거나 당은 대략 3분할, 아니 그 이상으로 쪼개질 듯하다. 물론 그 날이 오기까지 당원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쓰다보니 쓸데없이 길어져서 줄였다. 예상되는 반론을 위해 아껴두련다. 아무튼 앞으로 갈 길이 머니 지속적인 토론이 필요하겠다.
(참고로 그제 참석자의 발언을 들으며 그 경향성을 기록해 보았는데 두 발제자와 장광수 위원장님을 빼고, 통합 적극찬성 2명, 회의적 5명, 입장유보 4명이었다. 적극찬성이 드문 건 '저들의 패권주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마도 다른 당협 분포도 거의 비슷할 것. 이는 새진추가 연석회의에서 당원들에게 좀더 설득력 있는 합의를 해야할 당위성이 있음을 뜻한다. 당위성이 그대로 현실성으로 전화되는 건 아니지만.
새노동자정당건설추진위, 복지정치연대, 진보의합창, 뭐 뭐 뭐.... 요즘 어지럽다. 문제는 세 파트 모두 당론을 위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서로 잘못했다고 상대방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데 참 우스꽝스럽다. 당 대회까지 모두 자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어떤 당 대회 결정이 나더라도 불복하는 세력에 의해 당은 폭력적으로 해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건 민주노동당이 바라는 바다. 참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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