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뉴스

하방의 길을 찾아서 - 홍세화 대표 메시지

posted Nov 20, 2013
Extra Form
발행일 2012-04-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저녁빛 속에 길들을 보았다. 그것은 귀향의 길이었다.

―로베르트 발저Robert Walser(슈테판 헤름린의 『저녁노을』에서 재인용) 

지금은 패배를 응시해야 할 때


총선 전에 잡혀 있던 일정 때문에 지난 며칠도 지역 몇 곳을 다녀와야 했습니다. 열차에 올라 눈을 감으면 어떤 생각도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자꾸 끊겨 멍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게 되는 그런 나날이었습니다. 역방향의 고속철에서는 먼 과거 속으로 빨려 소멸되는 망상도 없지 않았지요.  

지난 일주일 동안 마치 환영幻影처럼 다가와 저를 괴롭히는 멀지 않은 기억들이 있습니다. 봄날 같지 않게 궂은 날씨가 거듭되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진보신당을 지지해 달라고 외치던 당원 동지들의 얼굴이며, 그리하여 선거 결과가 우리 앞에 드러나던 4월 11일, 몇 시간 동안 소리 내어 울었다는 어떤 이의 문자 메시지나, 또 당원이 아닌 어떤 지인의 당신들이 가련해 눈물이 났다고 하던 말들이 그것들이지요. 물론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우리’들은 속으로 눈물을 삼켜야 했을 테지요. 언젠가는 이조차도 시간 속에서 퇴색되겠지만, 아직은 뿌리칠 수 없는 이런 기억들이 다가올라치면 마음이 더없이 황망해지고 맙니다.


눈부신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꿈꿨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각오했던 것에서도 한참 벗어난 참담한 결과였습니다. 정당 등록 취소가 정치적 해산과 다르다고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1.13퍼센트라는 숫자는 운명의 조롱처럼 우리 앞에 긴 그림자가 되어 따라붙을 것입니다. 여느 정당 같으면 정치적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하는 길을 택하면 그만인 것을, 뼈아픈 좌절 앞에서 간신히 자신을 수습하려 애쓰는 당과 당원들의 현황을 생각하면 그조차도 정서적 사치가 되는, 그러므로 저나 여러분 모두는 애써 태연함을 가장할 수도, 그렇다고 마구 무너져 울 수도 없는 그런 시간들을 통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아직은 말을 아껴야할 때라고 생각하면서도 한마디 말만큼은 꼭 남기고 싶어서 이 편지를 씁니다. 그것은 절망과 체념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4월 11일의 결과에서 오는 절망을 응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미 이런 결과가 올 줄 예견했다거나, 혹은 반대로 이런 결과가 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거나 하는, 관성적인 반응들로부터 한 발짝 더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패배에 대한 치밀한 평가는 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먼저 요구되는 것은 객관적 조건이 어쨌든 우리에게는 시간이―절대적으로 부족했을망정―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생살들이 뜯겨져나간 당을 가까스로 수습하고 선거에 임하던 지난 4개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누가 기억에서 지울 수 있겠습니까? 13,000여 당원들이 떠나지 않고 남아 스스로 지붕이 되어 당을 가려주고 서까래와 대들보와 기둥이 되어 당을 떠받치고 주춧돌이 되고 바닥이 되고 온기가 되던 희망의 순간들을. 그러나 우리는 패배했습니다. 이 분명한 현실 앞에서 우리 자신을 다시 냉정히 응시하지 않고선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또한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절망에 대한 정직한 응시는 희망과 만날 수 있지만, 체념은 부질없는 자기위안을 동반할 뿐입니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총선 결과가 나온 다음날 제 속에서 제일 먼저 고개를 들던 이 속삭임을 내던지려 합니다. 이제 저는 제가 감당해야할 책임을 지려고 합니다. 지난 월요일, 저의 대표직 사퇴의사는 다른 대표-부대표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한시적으로 접게 되었지만, 우리가 총선에서 살아남지 못할 경우 ‘하방’하겠다고 한 약속을 실행에 옮기려 합니다. 


20120421114613_3460.jpg ▲ 진보신당 홍세화 대표


동지 여러분.


여러분은 언젠가 제가 ‘마비痲痹와의 싸움’에 대해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마비의 사전적 의미가 ‘신경이나 근육이 형태의 변화 없이 기능을 잃어버리는 상태’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혹시 진보신당이 당의 외형적 형태를 복원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말과 행위가 관성적인 반복을 거듭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정치조직으로서 이미 죽은 조직이나 마찬가지라고 말이지요.


알고 계신 분들이 있겠지만, 마비는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더블린 사람들』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식민지 아일랜드의 피폐한 경제적 상황, 정치적 열망의 좌절과 기회주의의 팽배, 거기서 오는 아일랜드인들의 체념과 무기력과 속물근성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예술적 망명을 선택하는 제임스 조이스의 자기 조국에 대한 진단이었습니다. 아일랜드에서 선거란 아무런 정치적 전망도, 진지하게 싸울만한 근거도 상실한 한갓 도박에 불과하다는 소설 속 메시지를 4월 11일 선거로 가는 길목에서, 뜯기고 빼앗긴, 22번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죽음을 추모하던 대한문 앞 분향소와 연결 짓는 것은 무리한 일일까요?


우리는 어떤 선거를 치른 것일까요?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아야 합니다. 제 언어와 정치적 행위가 지닌 지식인적인 한계와 관성을 대면하기 위해 저는 지금부터 저 자신이 가야할 하방의 길을 준비하겠습니다. 하방은 달아나는 길이 아니라 근원에 이르는 길을 찾아가는 적극적인 정치적 행위라고 믿습니다. 감히 떠올리자면, 미싱사 보조였던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쫓겨나 번민하던 시절 쓴 일기에 ‘나는 돌아가야 한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라고 썼지요. ‘어린 시다들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라고. 대표로서의 저의 존재가 혹시라도 우리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는 일을 지체시킨 ‘겉옷’의 역할을 한 바 있다면 그것을 이제 제 손으로 벗어던지겠습니다. 그리고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었던 마음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이것은 어쩌면 대표가 되는 순간부터, 무엇보다 오늘의 패배에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선택하려 했고 또 지금 선택해야만 하는  ‘귀향’의 길입니다.


하방은 시대의 모순과 근본에서 맞서는 일


말의 뜻 그대로 하방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의미하지만 무엇보다 그것은 시대의 모순과 만나기 위함입니다. 총선의 결과가 ‘국민의 뜻’이라는 말을 저는 거절하려 합니다. 우리는 전체 국민을 향해 선거를 치른 바도 없거니와 우리의 실패가 그 때문이었다고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국민의 준엄한 심판 운운하는 것은 실은 정치적 알리바이를 위한 언설일 뿐만 아니라 반성의 수행을 가로막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들을 삭제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 자신도 우리 당의 지향을 나타내기 위해 내걸었던 ‘99%를 위한 정치’라는 표제는 사회적 격차의 심각성을 환기시키는 의미를 분명 지니고 있지만 이 역시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분별되지 않았을 때 오히려 우리를 가두는 함정이 되었던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할 것입니다.   


99%는 삶의 불안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 외에 결코 동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거칠게 나눈다 하더라도 이 숫자 안에는 ‘포함된 자’들이 있고 ‘배제된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목격했듯이 ‘99%를 위한 정치’는 ‘다수를 향한 정치’에 이용된 수사였고, 가치 지향의 연대가 아니라 ‘닥치고 통합’을 강요하는 ‘국민의 명령’으로 둔갑했고, 이른바 진보정치가 자진해서 입 다물고 다수가 되기 위한 정치로 끌려들어갔던 함정이었습니다.


우리가 받아든 정당기호는 ‘16번’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번호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지선다’의 교육이 지배적인 한국사회에서 선거는 처음부터 끝까지 네 개의 숫자 안에 갇혀있었고 마이너 정당을 위한 자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또 잊지 않아야 합니다. 현실 변혁에 대한 열망을 의미하는 ‘붉은 색’을 어처구니없게 수구정당에게 빼앗겼다면, 당의 이름은 과거의 ‘동지’들이 포함된 3자 통합당에 의해 침범 당했습니다.


(가령 우리가 앞으로 새로운 당명을 정하고자 할 때 우리의 정체성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녹색사회당’을 꼽을 수 있지만, 우리는 녹색당에 대한 예의 때문에도 차마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당명이 그들의 정체성에 맞는지는 둘째로 하고- 우리를 거리낌 없이 침범했습니다. 정치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세력의 사회적 약자를 보듬겠다는 주장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또한 선관위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진보당’이란 이름 붙이기로 메이저 정당들만의 선거 구도를 고착시키는 데 일조한 언론의 모습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른바 진보매체에서도 기자들은 보기 어렵고 ‘동정보고자’들만 가득 찼는데, 사회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조차 보도하지 않을 만큼 동정보고에서조차 우리는 배제되었습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더블린 사람들』을 구성하는 단편 중 「선거사무실의 아이비 기념일」이란 작품에는 심정적으로는 노동자 후보를 지지하던 한 ‘급진주의자’가 일당을 받아가며 민족주의 정당 후보의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2012년 한국 총선에 등장한 ‘노란 점퍼를 입은 진보주의자’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패배를 감추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16개의 벽을 뚫고서 진보신당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왜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우리는 ‘배제된 자들의 서사전략’을 중심전략으로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99%라는 숫자 안에 뭉뚱그려진 배제된 노동을 조직화하는 데, 그리하여 이들과 더불어 이번 선거를 싸움의 장으로 만드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패배의 가장 뼈아픈 진실이 놓여있는 자리입니다. 정당기호 ‘16번’이라는 숫자도 이 진실을 가리는 수단으로 쓰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유일한 진보정당이라 자처하고 나선 선거였고, 우리가 존재해야할 근본 이유 역시 바로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거가 끝나고 나니 다시 진보대통합에 대해 두런거리는 이야기들이 들려옵니다. 진보신당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을 동반한 그 이야기들에 빼뜨려선 안 될 진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른바 진보대통합에 반대한 바 없습니다. 어떤 통합이냐고 물었을 뿐이지요. 진보신당은 당의 혼란을 수습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진보좌파정당 건설을 위해 연석회의를 제안했고 노동계의 가능한 모든 곳을 찾아다니려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비록 보잘것없고 한계를 지닌 것이었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노동운동 주체들의 대응이 어떠했는지는 선거 이후의 논의 속에서 감추어져서도 망각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정치의 복원. 이것은 좌파정당의 존립 기반과 직결된 문제로 피해갈 수 없는, 그래서도 안 되는 과제입니다. 우리는 총선 때문에 잠시 중단했던 새로운 진보좌파정당 건설의 전진을 위해, 노동정치의 복원을 위해 우리의 무릎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 복원되어야 할 노동정치는 어떤 것인가요? 조합원들의 자율적인 정치적 선택을 가로막는 ‘배타적 지지방침’을 여전히 고수하고, 노동자의 절반을 훌쩍 넘어선 비정규 노동자의 진입이 차단된 거대 조직노동의 지위와 영향력으로 진보정당의 미래를 좌우하려는 노동운동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정치는 분명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용서받을 수 없는 과오는 좌파 정치조직으로서 지금까지의 관성적인 노동정치에 변화를 가져올 새로운 노동주체를 형성하는 데 실패했고, 실제에 있어 이들에게 제대로 다가가지도 않았으며 이들의 동의를 구하는 데 있어서도 무능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이야기하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전면적 위기의 시대에 ‘자본주의 이후’의 전망을 포기하고 자유주의적 기획 속으로 포섭된 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모순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극복해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 그들과 마찬가지로 무능했던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은 이제 더 이상 지체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했고, 이것을 한국사회에서 추동하는 보수-자유주의 정치동맹을 비판했고, 낡은 사민주의적 복지를 붙들다가 자유주의와 연합한 진보주의자들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이 ‘반反’ 속에 머묾으로써 정작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지에 대해 무기력함을 되풀이해온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총선 과정에서 물었어야 마땅했으나 지나쳤던 이 물음의 보따리를 이제 하나하나 풀어놓을 때가 된 것입니다.


동지 여러분.


‘1 대 99’는 자본주의적 모순이 밀어붙일 수 있는 마지막 임계지점일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왜 최후의 경계에 와서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적 성장이 한계에 도달하고 99%가 빈곤의 위협 앞에서 불안하고 노동으로부터도 배제된 이들이 갈수록 고통에 시달리는데도 말이지요.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좌파정당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사회적 동의는 진보신당의 소생을 가져오는 데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야권 단일후보’가 역사적 반동을 막는 부적이 못 되었듯이, 지금까지의 관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진보좌파정당건설’이라는 구호 역시 오늘 좌파의 궤멸적인 위기를 넘어서는 요술방망이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노동의 수직적 분업체계와 이에 기초한 자본-상층정규노동의 암묵적 연대를 분업구조의 가장 밑바닥으로부터,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노동주체 형성을 통해 흔들지 않는 한 노동정치의 다른 전망은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옳지도 않고,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다’는 인식에 기초할 때 열리는 새로운 사회적 연대의 폭에 주목할 때 지금까지 상층 정치연대에 골몰해온 진보좌파 정치운동의 변화가 시작되리라는 것, 저는 이것이 우리시대의 근원적 모순과 만나는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한국의 한 대표적인 정치학자가 자유주의자와 진보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의 3당 통합을 중산층과 노동부문의 연대의 가능성을 여는 정치적 행위라고 규정했습니다. 저는 그 연대에서 비정규직을 비롯하여 불안정노동에 처한 사회적 약자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시혜의 대상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그리하여, 성장주의와 생산력주의와 소비주의에 기초한 자본주의에 대한 전면적 비판을 기반으로 한 생태주의와, 자본주의의 가장 날카로운 대립자이자 희생자인 배제된 노동정치의 연대가 그 대척점에 있다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한 게 아닐까요?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과 만남의 양식을 재구성하고, 삶의 가치와 존엄을 보장하는 사회적 관계의 힘으로 자본주의적 소유양식을 해체하는 것, 이를 위해 아래로부터의 연대의 길을 삶의 공간과 노동 현장에서 찾아내는 것, 하방을 앞둔 저의 고민이 머무는 지점입니다.


‘우리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여행을 다시 시작하고자


저의 하방의 최종 목적지는 당원 동지 여러분에 가닿는 것입니다. 이미 익숙한 얼굴도 있을 것이고, 같은 꿈을 꾼다면 새로운 얼굴도 만나겠지요. 여러분은 오늘의 패배가 주는 아픔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희망의 흔적들-파편들 또한 간직하고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가는 길을 다시 묻고 찾겠습니다. 그래서 총선 때문에 미루어두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시작하고 절망 속에서 건져낸 희망의 조각들을 동지 여러분과 함께 다시 모아가고자 합니다. 


“나는 내가 헌신하였던 운동보다 더 훌륭하지도 더 졸속하지도 않았으며 운동의 성숙함과 미숙함을, 그 위대함과 비참함을 함께 나누어 가졌다.” 사회주의 동독의 붕괴와 독일 통일의 혼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현실사회의 흔적을 지우려할 때 자본주의의 모순은 자본주의로 극복할 수 없다고 믿으며 미래의 사회주의를 위해 82세의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복무하려 했던 독일 작가 슈테판 헤름린의 자전적 에세이 『저녁노을』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는 그것이 1931년 베를린의 어느 거리를 지나다 16세에 ‘공산주의 청년동맹’에 가입원서를 쓰며 스스로 다짐했던 마음의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이었다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비판적 지식인이라 불러주기도 하지만 한낱 서생으로 자족하던 제가 척탄병을 꿈꾸다 진보신당의 대표가 된 지 반 년이 채 지나지 않는군요. 이 편지를 쓰기 전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오르며>를 시작으로 제가 쓴 글들을 뒤져보았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참 많은 말을 했더군요. 이제 이 말들을 실천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 이제 길을 열어주십시오. 머지않아 대표직을 내려놓더라도 여러분들과 멀어지는 길이 아니라 더 가까워지는 길을 찾겠습니다. 길을 열어주신다면 여러분과의 만남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우리들의 절망과 희망, 그리고 남은 열정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 준비를 시작하려는 것은 말言語의 진지를 구축하는 매체의 발간과 정치-철학교실입니다. ‘전태일의 집’ 또는 ‘민중의 집’ 건설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입니다. 무엇보다 정치부문에서도 배제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조직화, 정치화할 것인가의 물음이 우리가 가는 길의 과정이며 행선지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름이 어떻게 달라지든 우리 당이 자본의 탐욕과 싸우는 정당으로 변모하는 일에 함께 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래서 우리의 만남은 여러분이 발 딛고 선 지역에서, 생존의 최전선에서 계속 이어져갈 것이라 믿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13,000개의 바위를 밀어 올리는 우리 시대의 시지프스들이라 명명한 적이 있지요. 그때 한 가지 이야기를 빠뜨린 것이 있습니다. 『광장』의 작가 최인훈 선생이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납니다. 서양 사람들은 근대인으로서 자신을 정상을 향해 각자의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라 생각했던 것에 반해, 우리는 자신의 바위가 아니라 남의 엉덩이를 열심히 밀어 올리려 했던 것이 아니냐고 말이지요. 누군가들이 달려와 우리의 당을 허물려하더라도 우리에겐 결코 빼앗길 수 없는 고귀한 정신과 노동의 향연이 있음을 기억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컨대 장엄한 음악을 닮은 우리 당의 강령이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선거의 현장을 뛰어다니는 동안 우리 당의 두 지식인이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와 『좌파하라』는 두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티코노프라는 이름으로 우리 당의 비례대표후보로 참여한 박노자 교수의 ‘좌파하라’라는 책을 저는 ‘좌파 좀 제대로 하라!’는 애정 어린 충고로 읽었습니다. 이 쓸쓸한 패배의 시간에도 저는 두 분의 노고를 잊을 수 없습니다. 끝으로 사랑과 우정의 여러분께 함석헌 선생의 말씀 하나를 남깁니다. 다시 만나는 날까지 모두 건강하시길. 


낚시질은 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때를 낚는 것이다.

때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는 것은 때를 낚기 위해서이다.

때에서야말로 잃어버림이 얻음이다.

고기를 낚는 사람은 조그만 것을 미끼로 큰 것을 얻자는 것이지만,

때를 낚는 사람은 많은 때를 버려 한 때를 잡자는 것이다.

-함석헌,「영원의 낚시질」에서 


[ 홍세화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labork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