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좌류 망상 甲 

안드로메다급 아이큐
(430)를 가진 본좌 허경영은 중대 선거국면마다 얼굴을 들이밀고 4차원 정치의 진수를 보여준 바 있다. 그 초절정 하이코미디 정치의 압권이자 백미는2007년 대선이 끝난 후 한 온라인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폭발했다. 허본좌는 그 인터뷰에서 제 생각엔 한 천 만표 나온 것 같다고 밝히면서, 그럼에도 자신이 낙선한 것은 부정선거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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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에서 허본좌가 얻은 득표율은 0.4%. 허본좌의 주장대로라면 대통령 선거에서 약 40% 가까운 득표를 했다는 이야기고, 이것은 당시 당선자인 현 이명박 대통령이 얻은 48.7% 다음으로 높은 수치여야 한다. 참고로 당시 대선에서 2위를 한 정동영 후보는 6,174,681표 득표로 26.1%의 득표율에 그쳤다. 그렇다면 허본좌의 판단 근거는 뭐였을까?

 

허본좌가 주장한 대선 1000만표 설의 근거는, 대선 직후 디시 인사이드 ‘2007 대선갤에서 진행했던 “2007 대선 갤러리 대통령선거 출구조사 결과였다. 이 조사에서 허본좌는 33.5%라는 압도적 지지율을 보였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이회창이 28.%, 문국현이24.3%, 정동영과 이명박은 5.2%로 동률, 권영길은 3.2%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결과로만 놓고 봤을 때, 허본좌는 다른 후보들보다 월등한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문제는 이 조사가 수행된 공간이 디시 인사이드 대선 갤러리에 한정된 것이었으며, 당연히 조사의 표본이 된 대상자들은 디시 폐인들이었고, 그 표본 수는 불과 152명이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대선 출구조사라는 이름을 붙이고 디시 폐인들이 재미로 놀고 있는 상황에서 겨우 51명이 자신을 지지한 것을 근거로 허본좌는 대권 대망론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하긴 아이큐 430이 전후사정을 몰라서 그랬던 것은 아닐 터이고, 허경영은 그저 아이돌이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마의 3%, 그리고...

진보신당
. 이제 그 이름마저 뺏겨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정당. 과거형 문장이 가지는 이 서러움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겠으나, 이 서러움의 근원과 배경 기타 등등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기로 하고. 아무튼 이 정당이 이름을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2012 4 11일 총선. 정당등록취소의 기준이 되는 총선 정당득표율 2%를 넘기기 위해 진보신당의 모든 구성원들은 말 그대로 줄이 타도록 달리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내세운 총선 목표는 지역구 2(혹은 1), 정당득표율 3%가 목표였으나, 이것이 현실 가능하다고 믿는 구성원은 거의, 진짜 거의 없었다. 2004년 총선이 끝나고, 원내입성을 이루었던 민주노동당 당시, 모 의원은 민주노동당 2012년 집권을 선포했었다. 물론 이 야심찬 목표는 그저 대외용 구라일 뿐이었고, 실제 그런 걸로 결론 났다. 거의 그 수준이라고 보면 되는데, 2012년 진보신당의 총선 목표 역시 사실상 대외용 구라 수준에 머물 것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시간이 지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종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이 가능성은 상당한 현실성을 가진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주변의 반응들이 그러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릴 것 없이,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동정이었든, 아니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지지였든 간에 이 고무적인 현상은 당직자들과 당원들을 들뜨게 하기 충분했다. 혹시나 했던 사람들이 전부 다는 아니고 극히 일부분이었다 할지라도, 그 혹시나는 은근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긴,막장에 몰린 사람들이 희망이라도 먹고살지 않는다면 그건 이미 죽은 목숨이므로.

 

뚜껑을 열어본 결과 진보신당은 정당득표율 1.1%에 머물렀다. 아무리 노심조가 빠졌기로서니 진보신당이 이정도로 찌그러져야 하는 이유가 뭐였는가? 물론 결과에 대한 분석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할 수 있으나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결과론. 별 수다한 가능성을 다 제하고 진짜 고갱이만 추려서 딱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 득표율이 우리의 실력이다.” 고로 상세한 이야기는 또 패스하고. 여기서 생각해볼만한 건, 실질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물론 내 주변의 사람들이지만- 정당득표율 3%가 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일까? 라는 것.

 

내 페이스북의 등록친구는 225. 수 천 명, 수 만 명에 이르는 페친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할 때, 협소한 인간관계를 드러내주는 수치이다 보니, 살짝 쪽팔림이 밀려오지만, 어쩔 수 없이 이 수치가 가지고 있는 어떤 의미라는 것을 좀 살필 필요가 있겠다. 금쪽같은 시간을 들여 일일이 확인해 본 결과 이 사람들 중 35% 정도가 진보신당 당원이었다. 15%는 진보신당의 지지자들이었고, 2사람의 새누리당 쪽 관계자,  2%의 민통당 관계자, 25%에 달하는 통진당 당원 및 지지자, 그리고 성향을 알 수 없는 나머지 사람들로 페친의 정당구성이 이루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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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안 개구리

그러다보니 당연히
, 지난 선거운동기간 동안 나의 페이스북 안에서 당연히 여당은 진보신당일 수밖에 없었다. 진보신당과 관련된 글들이 죽죽 올라왔고, 서로 독려, 지지, 응원하느라 여념이 없었으며, 당원이나 지지자가 아닌 페친들 역시 좋아요에 한 클릭씩 더해주시고,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인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열심히 하라는 덧글을 보태기도 했다. 이미 페이스북 안에서는 진보신당의 집권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게 나 혼자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네트워크 혹은 관계망이라는 것이 전 세계에 걸치지 않는 한, 상황의 실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은 굳이 하이에크의 논리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자신이 속한 공간을 세계의 전부로 착각하는 순간, “우물 안 개구리가 내 머리로 빙의한다. 결과가 말해주고 있듯이, 객관적 상황과 현실적 지표에 따를 때 진보신당의 의회진출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주관적 망상이 관념적 승리를 가능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이 온통 장밋빛으로 물들어있었기 때문. 냉정한 이성과 객관적 추론이 전제될 때, 이 망상의 공허함을 포착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터. 그러나 희망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었고, 그것이 한정된 틀 안에서 일어난 착시와 더해지면서 개구리의 우물은 우주 전체와 등치되어 버렸다.

 

물론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진보신당 관계자들이 아름다운 선거결과를 낙관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까지 순박하고 천진한 사람들은 전혀 아니다. 그러나 계산기가 머리 속에서 돌고 있는 것과 가슴 한 복판에 용암이 솟구치는 것과의 상관관계에는 만유인력의 법칙 같은 것이 작동하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은, 진보신당이 추구하는 비전과 가치의 정치는 너무 늦게 시작되었고, 너무 일찍 종말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근본적인 취약성 앞에서 SNS의 힘이라는 것은 그저 기술적 장치 이외에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바로 이 부분에서, 착시를 치유하여 안구의 능력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보다 우선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다. 페이스북 안에서 이미 집권여당으로 자리 잡았던 진보신당의 모습은 추억 저 뒤편으로 갈무리해두고, 진보신당이 못다 했던 정치를 페이스북 밖에서 드러내야 하는 것. 이것이 남은 과제이자 시작 지점이다. 그나마 페이스북 안에서만큼은 행복했다고 자위하는 것이라면, Q의 정신승리를 시전하는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다시 정치로

공간에 가로막힌 텍스트들을 링크로 해방시킨 엥겔바트의 능력에 대한 찬사는
, 기실 그 능력 앞에 텍스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마찬가지. 앞으로 나타나게 될 어떤 정당이 새로운 진보의 가치와 비전을 제시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네트워크의 역할은 재조명 될 터이다. 그 역일 때, 즉 네트워크에 대한 고민은 산재해 있음에도 그 망을 돌아다닐 내용이 없다면, 우물 안 개구리들의 즐거운 합창 외엔 남는 것이 없다.

 

SNS가 연결지점의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강화하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착각을 유발하기가 더 쉬우리라. 이번 총선 과정에서 내 페이스북 안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현상들, 그리고 그 현상에 고무될 뻔한 나의 착각 역시 마찬가지다. 반면 SNS가 가지고 있는 명확한 가능성, 즉 일상의 영역을 정치적 의제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사적 일상의 한 소재가 정치적 의제로 해석되고 재구성되며, 그렇게 질적 변환을 거친 어떤 주제가 다시 소통을 통해 오프라인의 실존으로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 그것이 SNS가 가진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을 살리기 위해서, 역시 거듭, 정치는 복원되어야 한다. 화합과 타협의 장치라는 허울에 감춰진 수동적 정치가 아니라, 발설할 수 없었던 것을 발설하는 공간, 배제되었던 자들에게 말하기가 허용되는 순간으로서 정치, 그리하여 도전과 응전, 투쟁과 전복이 당연한 것으로 승인되는 정치의 복원. 어쩌면 SNS는 이러한 정치를 위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근친교배로 종말을 맞이할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선, SNS를 우물이 아니라 수로(水路)가 되게 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인터넷 매체인 ‘슬로우 뉴스(slownews.kr)’에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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