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http://www.mediaus.co.kr/)에서 연재 중인 찐기춘의 당협위원장 라이프를 미디어스와 협의 하에 동시게재합니다 <편집자>


[지역에서 진보? 지역에서 정치!]30세 위원장이 간다 2편


요즘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면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대체 왜 운동movement을 하게 된 거죠?” 그러게요. 어쩌다 제가 이렇게 됐을까요. 물어보는 사람도 호기심이 반이라면 연민이 반인 것도 같다. 가장 쉬운 대답은 역시 “선배를 잘못 만났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멋모르던 새내기 시절 술 사준다는 선배를 따라 나갔더니 집회 현장이더라는, 그래서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나도 운동권이 되었다는 어떤 전형적인 서사가 이 판에 있다. 하지만 실제 나는 전형적 서사와는 별로 관련이 없었기 때문에, 쉽게 대답한 후에는 항상 스스로 다시 물어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왜 이러고 있다고?’

나는 남고를 다녔다. 그리고 급식이 엉망이었다. 급식이니까 반찬 투정을 할 대상이 불분명했다. 우리는 어디서나 항상 학교 급식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이야기했다. 가장 큰 불만은 고기가 자주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돈까스가 나오는 날 왜 크림스프가 아닌 된장국이 함께 나오는지도 큰 불만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퓨전메뉴가 너무 자주 나오는 것도 불만이었고 급식소가 비위생적인 것도 불만이었다.

급식소에 들어가자 마자 반찬구성을 보고 나와 버리는 애들도 있었다. 매점이 문전성시였다. 후문 바로 앞에 있는 도시락집도 그랬다. 한 끼 2천원으로 급식을 먹느니 9백원짜리 콩나물밥에 3백원짜리 스콜을 사먹는 게 낫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7백원짜리 육개장 컵라면을 먹으면 1천원으로도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국에서 벌레가 나왔다. 밥에서 돌이 나오거나 반찬 사이에서 머리카락이 나오는 건 그럭저럭 참고 먹었는데, 국에서 벌레가 나온 일은 아무도 참지 않았다. “아 시발 국에서 벌레 나왔어”라는 말을 듣자마자 급식소에 있던 대부분이 먹던 밥을 버리고 나왔다. 소문은 빨리 퍼졌다. 우리는 분노했다.

급식신청 기간이 돌아오고 선생님이 고지서를 나눠주었다. 우리는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고지서를 찢어발겼다. 급식 신청률이 ⅓로 떨어졌다. 급식소는 비상이 걸렸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급식을 신청한다는 전제 하에 맞춰 놓은 단가인데 신청률이 이렇게 떨어져서는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는다. 위탁업체 쪽에서 먼저 대화를 하자고 나섰다. 급식에 대해서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테니 각 반 반장들을 모아달라고 학교에 요청한 것이다. 나도 반장이었다. 이제 와서 무슨 짓이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선생님이 가라고 하면 또 가는 반장이었다.

간담회 자리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우리는 아무튼 분기탱천해 있었고 무슨 말을 하든 듣지 않을 것처럼 굴었다. 영양사들은 그런 우리를 시종일관 조심스럽게 대했다. 급식 운영이 어렵다는 간략한 설명 뒤에 질의응답이 있었다. 대답은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을지라도 납득할 만한 것이었다. 위생에 있어서는 몇 번의 사고 이후 관리를 강화해서 더 이상 사고가 없도록 주의하고 있다고 했다. 반찬 구성에 대해서는 일주일에 열 끼나 먹는 것이라 반찬이 비슷하게 반복되면 금세 지겨워할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라 했다. 근본 없는 퓨전요리는 자제하고 고기의 비중을 늘리겠다는 말도 들었다.

영양사들의 태도는 훌륭했다. 우리의 말이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간담회가 끝날 때쯤엔 다들 마음이 누그러져 있었다. 반장들은 교실에 돌아가 간담회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달했다. 급식소가 이 정도로 얘기하면 한 번은 믿어볼 만하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신청률이 다시 올랐다. 그 후로 졸업할 때까지 급식으로 큰 문제가 생기거나 다시 불매운동을 전개하는 일은 없었다.

돌아보면 이것이 내가 경험한 첫 번째 승리였다. 우발적으로 시작됐고 소비자주의 운동이었다는 한계는 있지만, 학생들이 모여서 항의하는 것을 통해 우리의 의견을 인정받고 어른이자 기업인 위탁업체의 반성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험을 한  것이다. 경험으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불만이 있으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부당한 대우에 화가 나면 싸워야 한다는 것, 모여서 함께 싸우면 이긴다는 것, 세상은 조금씩이라도 바뀐다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하면 정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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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떼킹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회기동단편선' (사진=진기훈)

지난 25일 수요일, 투쟁 중인 라떼킹 강남역점에서 공연이 있었다.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진행하는 공연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감성랩퍼 4층총각과 신스팝 요정 코스모스슈퍼스타, 그리고 한국대중음악상 수상에 빛나는 록황상제 회기동단편선까지 공연을 마치고, 남은 사람들은 농성에 연대하면서 밤을 새웠다. 그리고 컨테이너를 내리자고 모의했다.
연휴 전에 강탈당한 컨테이너를 되찾아왔는데 용역들의 방해로 다시 가게 앞에 내리지를 못 하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일주일 넘게 이어지고 있었다. 바로 전날에도 한 국회의원이 찾아와 사정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내려보자고 했는데, 역시나 크레인에 시동을 걸자마자 용역들이 쫓아와 욕설을 퍼붓고 드잡이를 하는 통에 결국 포기한 일이 있었다. 시도를 한다면 사람이 많이 모여 있을 때가 좋다. 대치 상황이 길어지면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크레인 사용료도 부담이었다. 우리는 날이 밝기 전에 하차를 결행하기로 했다.
맘상모 회원들과 연대하러 온 당원들, 비당원들, 마침 한국에 있었던 일본인 활동가들까지 서른 명이 넘는 인원이 모였다. 우리는 아침 여섯 시를 기점으로 동시에 뛰어나가 크레인차량 주위를 둘러싸고 가게 입구를 막아섰다. 용역들이 방심하는 틈을 타 단시간에 작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었다. 대성공이었다. 컨테이너 하차는 순식간에 완료되었고 뒤늦게 눈치를 챈 용역 둘이 쫓아와서 시비를 걸었지만 다수를 상대로는 큰 위력을 보여주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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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떼킹' 컨테이너 (사진=진기훈)

우리는 정리집회를 통해 서로 격려하고 축하하고 투쟁 결의를 다진 뒤 헤어졌다. 나의 친구 김규백은 언젠가 말했다. “정치적 주체들은 투쟁이 패배한다 할지라도 많은 것을 얻지만 그것은 승리를 위한 교훈을 얻는 것 이상이 아니다. 따라서 주체에게 그 어느 것보다 강렬한 정치적 경험은 주체의 정치성을 인정받는 것, 즉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라떼킹 투쟁 또한 끝내 승리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구호 한 번 외쳐 보겠습니다. “투쟁으로 연대하고 승리로 보답하자!”


진기훈 / 노동당 강남서초당협 위원장

일명 '찐기춘'. 2011년 명동 마리 등 철거투쟁을 시작으로 진보정당 운동에 적극적 관심을 갖게 됐다. 통합진보당 창당으로 당시 진보신당이 둘로 쪼개지자 중앙당에서 상근을 했다. 2012년 총선 때는 진보신당 팟캐스트 '찐기춘의 개그펀치'라는 코너에 출연해 집회에서 부적절한 개그를 했다가 폭행당한 사연 등을 소개하며 남다른 감각을 과시했다. 이후 진보정당에 재정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당협위원장으로 진보정당운동 일선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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