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지방선거가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노동당 매체 홈페이지 <사랑과 혁명의 정치신문 R>에서 2014 지방선거 출마예정자들을 집중조명합니다.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지방의정에 대한 밑그림, 그리고 이제까지 지역에서 쌓아온 활약상을 소개해주세요. 노동당 출마예정자들의 기고를 기다립니다.

'Red City 2014' 여섯 번째 이야기, 황혜원 용산당협 위원장이 종점수다방을 소개합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분기점이 있기 마련이다. 새로운 직장을 얻었을 때, 멋진 남자가 다가왔을 때, 아기를 낳았거나 프로젝트가 성공했을 때, 부모님께서 큰 병에 걸렸을 때처럼 불현듯 찾아와 그 사람의 삶을 뒤집어 놓을 때가 있다.

내게도 그런 일이 찾아왔다. 나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의원 출마였다. 반평생을 노동운동 실무활동을 해온 내가 구의원 출마라니 어이가 없었다. 나같이 내성적이고 나서기 싫어하는 사람이 남 앞에 나서 “내가 적임자”라고 해야 하다니 숨어버리고 싶었다.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루 이틀 시간은 흐르고 결정해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같은 동네 민주노동당은 후보가 세 명이니 네 명이니 하는 판에 진보신당 후보가 한 명도 없다는 게 말이 안 되긴 했다. 당협 위원장이 되고 당 활동을 제대로 하려면 지방선거를 피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여성 구의원 후보

해방촌과 후암동, 이태원2동 엄마들을 만났다. 무상급식을 주요 의제로 동네에 필요한 공약을 내걸었는데 엄마들은 ‘국공립어린이집 확대’에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병설유치원 설립’ 공약에 박수를 보냈다. 삼광초등학교 바로 옆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들은 생각보다 젊었다. 돌이 막 지난 아기를 업고 나온 엄마, 네 살, 다섯 살 아이와 손을 잡고 나온 엄마까지 여성 구의원 후보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는데, 오래된 이 동네에서 아이 키우고 산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용산구의 재정자립도는 25개 서울시내 자치구 중에서 6.7위인데 교육예산은 거의 꼴찌였다. 재개발 부담금으로 꽤 많은 예산을 보유한 용산구청이 교육예산이 부족해 국공립 어린이집을 보내려면 400명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정말 한심했다.

이미 초등학교 학급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딸이 초등학교 다닐 땐 6반까지 있었는데, 4반으로 줄었고 이태원초등학교나 용암초등학교는 두 세반에 불과했다. ‘요꼬’라는 스웨터 공장이 사양 산업이 되면서 젊은 사람들이 동네를 떠난 데다, 재개발바람에 전문 투기꾼들이 해방촌으로 몰려와 부동산 값을 올려놓은 상태였다.

녹지축이니 뭐니 재개발 바람을 잠재우고 아이들의 웃음꽃이 피어나는 동네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주민들이 오래 거주하며 아이를 키우고 싶게 만드는 좋은 공동체가 필요했다.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

선거운동을 하면서 당선되지 못하더라도 동네에 꼭 필요한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생각했다. 선거용 주장이 아니라 엄마와 아이가 행복한 동네, 오래도록 정붙이고 살 수 있는 동네를 만들겠다고 주민들한테 약속드렸다. 아쉬운 선거결과를 뒤로 하고 낙선 인사를 드렸더니 당선 된 것으로 알고 계신 분도 계셨다.
 
50.jpg ▲ 지역 밀착형 여성 후보 황혜원
 
 
위치 하나는 딱 좋네요

종점수다방을 방문한 사람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다. ‘위치가 딱 이네요.’ 후암동과 해방촌으로 올라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종점수다방이 있는 후암동 종점인데 선거사무실을 두기에 딱 좋은 동네 요충지다. 좋은 위치가 없을까 잠깐 한 눈 파는 사이 다른 후보 차지가 돼버렸던 아픈 기억이 있는 곳이다.

51.jpg ▲ 동네 요충지에 있는 종점 수다방
 

선거를 마치자마자 그 사무실을 얻었는데 다시는 준비 없이 지방선거를 치르고 싶지 않았고, 선거운동하면서 약속한 지역 활동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었다. 중앙에서 써주는 공약이나 급조된 동네 공약이 아니라 동네에 필요한, 제대로 된 진보정당 활동을 하고 싶었다.

공간이 생기니 정말 좋았다. 돈을 버는 것도 아니면서 집에서 바쁜 척하는 며느리를 의아해 하는 시어머니 눈치를 보며 시당 녹색위원회 일하랴 용산당협 일 하랴 회의 간다고 뛰어나갔다 다시 들어와 일하던 도깨비 같은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다.

기왕 하는 것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후원주점을 준비했다. 티켓을 판매하거나 홀 서빙은 해봤지만 후원주점을 열어보는 건 처음이었다. 부랴부랴 티켓을 찍고. 호프집 계약하고 트럭을 빌려 이른 아침부터 용사의집으로 달려갔다.

한번이라도 경험이 있다면 이렇게 많이 사들이진 않았을 텐데. 비를 주룩주룩 맞으며 소주 80병, 맥주 600병을 몇 번이나 실어 날랐다. 술을 내려놓고 다시 차를 돌리려는 순간 뒤에서 웬 여자의 날카로운 음성이 들렸다. 돌아보니 뒤따라오는 검은색 기아K9에서 나는 소리였다. 정말 잘해보려고 부지런을 떨었는데 새 차를 긁어버리고 말았다.

어디 그것뿐이랴 그날 못 팔고 남은 맥주는 당원들과 지인들이 대신 팔아줬다. 그러고도 남은 맥주는 뒤풀이 할 때 마다 마셨다. 후원주점 한 번에 매일 술파티를 벌일 뻔 했다.

종점수다방 개소식을 하기로 한 9월이 다가왔다. 현수막을 달고 떡을 돌리고 아는 가게에 홍보 전단을 붙여 달라고 부탁했다. 종점수다방까지 걸어서 찾아올만한 주택가를 돌았다. 빌라 현관문을 열고 우편함에 넣거나 붙였다. 지나가는 젊은 엄마를 붙들고 종점수다방이 얼마나 괜찮은 곳인지 수다를 떨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수다 떨며

엄마들과 아이들이 편하게 놀고 자주 다녀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도 빽빽하게 꽂아놓고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아이들 돌보느라 자신은 돌아볼 틈 없는 엄마들의 시간을 만드는 공간이자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다. 책도 보고, 만들기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곳이다. 엄마와 아이들은 학교와 세상이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을 종점수다방에서 서로 알려주고 배우고 나눴으면 했다.

종점수다방 앞을 지나는 동네 주민들은 “여기 다방이여. 수다방?”이라고 말을 건다. ‘수’다방이라니 재미있다. 뭐 ‘수’다방도 좋고, ‘수다’방도 좋다. 사람들 마음처럼 동네 다방이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 한번은 할아버지 한 분이 지팡이를 꼭 짚고 힘겹게 올라 오셨다 실망하는 표정으로 황급히 내려가셨다. 쌍화차라도 한잔 드렸어야 하는데 그냥 내려가시게 하다니 역시 난 순발력이 부족한 것 같다.

늘 오시는 엄마들도 어쩌다 ‘종점수다방’ 이라고 지었는지 궁금해 하셨다. 70년대 종점다방 같기도 한 촌스러운 이름이지만 정감 있는 동네 사랑방이라는 뜻을 담았다고 말씀드렸다.

종점수다방 앞에 백팔계단이 있고 백팔계단 위에는 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신사를 참배하는 일본인을 바라보는 조선 사람들 마음은 어땠을까. 선천 미용실도 있는데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백팔계단 위에 모여 살면서 생겼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가난하고 연세 많은 분들이 모여 사는, 우리 집이 있는 해방촌이다.

아이 손잡고 놀러오세요

아늑한 사랑방 분위기에 커피 생두를 볶아 에스프레소 추출기로 내려 진한 향 가득한 커피를 한 잔씩 드리면 엄마들은 간식으로 보답했다.
첫 강좌는 냄비장갑 만들기. 공방을 운영하는 당원이 강좌를 맡아주었다. 나를 포함해 다들 재봉 솜씨가 시원치 않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일자 재봉틀, 오버로크가 되면서 커팅이 되는 재봉틀, 앞면을 세 줄로 박고 뒷면은 오버로크 되는 재봉틀. 그새 몇 번이나 밟았다고 벌써 박음질한 옷을 보는 내 눈이 달라졌다.

두 번째 강좌로 유기농 면내의 만들기에 도전했다. 100% 수입 면화는 기를 때 농약을 치고, 면제품을 만들 땐 화학약품 처리를 한다. 같은 수입이라도 농약을 뿌리지 않고 화학약품 처리를 최소화한 면 원단을 구입해 겨울 내복을 만들었다. 직장인 반을 운영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으나 역시나 부족한 재봉 솜씨 덕분에 선생님이 거의 다 만들어주셨다.

엄마와 함께 온 어린이들은 창작미술 강좌에 참여했다. 종이, 실, 크레파스, 밀가루, 물감, 옥수수 찰흙 등의 다양한 재료로 저마다의 생각을 표현했다. 틀에 박힌 미술시간이 아니라 같은 재료로 다양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시간이라 아이들이 더 즐거워했다.

화학약품으로 처리하지 않은 재료를 쓰거나 재활용품을 활용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강좌에 참여하며,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끝없는 구매와 소비에 찌들어 있는지 새삼 느꼈다. 엄마들과 아이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드는 과정이 재미나고 내 손으로 만드는 것이 신기해했다.

52.jpg ▲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종점 수다방
 

마을방송을 꿈꿔요~

종점수다방에도 새해가 왔고 새로운 분들이 오셨다. 해방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결혼 후 타지서 생활하다 친정어머니 곁으로 돌아온 딸들이 그 주인공이다. 결혼하고 해방촌에서 살기 시작해 올해 18년째 살고 있는 나도 이 분들 앞에선 주름을 잡을 수가 없다.

이분들이 참여하면서 종점수다방이 달라졌다. 어머니들 스스로 재활용 생활창작 강좌를 진행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가르쳐 주고 배웠다. 주민장터를 준비하고 동네의자를 만들었다. 올해는 노들텃밭 농사도 함께 짓는다. 어머니 모임을 만들어 서울시 부모커뮤니티 사업을 진행했고 지금은 두 번째 마을미디어 라디오방송 강좌 중이다.

올해 초부터 종점수다방 [용산FM-라디오 수다방]에서 제작한 방송 중에 ‘엄마와 딸의 동상이몽’이라고 있는데 어머니 한 분과 중 3, 그리고 나와 고 1 딸이 시험기간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한 시간씩 제작한다. 주제는 다양하다. 일상에서 부딪치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눈다. 엄마와 딸, 가장 가까운 사이인데 사사건건 생각이 다르다. 금방이라도 방송 사고가 날듯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어느새 평정심을 되찾을 줄 안다. 방송할 땐 불안하고 제대로 하고 있는지 걱정이지만 끝나고 청취자의 입장에서 들어보면 들을만하다.

53.jpg ▲ 용산 FM_라디오 수다방

저녁 8시 엄마들과 가벼운 맥주 한잔씩 나눌 때가 종종 있다. 각자 음식 한 가지씩 준비해오는 걸로 안주 삼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11시를 넘기기 일쑤다. 편안하게, 때론 농담처럼 내년 지방선거 이야기도 나누는 사이가 됐다. 엄마들은 언제부턴가 종점수다방 운영을 걱정하고 후원회원도 해주신다.

해방촌에는 빈집 회원이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해방촌 빈카페’가 있고, 얼마 전 다시 이사 온 슈유너머R이 있다. 수유너머R 박정수 선생, 젊은 모임 만행팀과 노들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만행팀 한 분이 종점수다방에서 천연비누와 생리대 강좌도 해주었다. 그러다 종점수다방 총각과 만행팀 처녀가 눈이 맞았다. 종종 좋은 일도 있다.

새로운 설계가 필요하다

문을 연 지 벌써 2년이 돼간다. 작은 공간에서 열심히 한 거라고 스스로 위안하고 때로는 칭찬받고 싶기도 하다. 물론 공간의 크기에 연연하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지만 종점수다방의 활동을 넓히기 위한 새로운 설계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조금 더 활발하게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위해 새로운 용기를 내야 한다.

또 하나의 고민은 내년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시당 예비후보자 모임에서 다들 9월부터 선거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지방선거를 제대로 하려면 늦어도 9월부터 지방선거를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인데, 그렇게 되면 종점수다방은 어떻게 할 것인가.
구의원 후보와 종점수다방이 각각의 주체로 만나 지방선거에 개입하는 방식은 어떠할까. 그런 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종점수다방과 당의 공동후보로 말이다. 종점수다방의 관심사를 지방선거의 주요 과제로 내걸고 출마하는 것 말이다. 종점수다방이라는 한 뼘 공간에 생활 정치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한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 황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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