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http://www.mediaus.co.kr/)에서 연재 중인 찐기춘의 당협위원장 라이프를 미디어스와 협의 하에 동시게재합니다 <편집자>


봄은 왔는데 봄 같지가 않다. 기온은 영상인데 바람이 칼바람이다. 3월도 중순인데 아직 봄옷은 꺼내 보지도 못하고, 외출할 때면 목도리까지 꼭 챙기게 된다. 모두가 한파에 목을 움츠리는 중에 강남구청만큼은 봄을 온전히 누리고 있는 것 같다.


한전부지에 들어설 현대차 본사 사옥과 GTX 노선 유치 등 개발 계획이 잇따라 나오면서 건설 경기가 호재를 맞았다. 이런 바람을 타는 것인지 신연희 구청장은 신속하게 구룡, 재건, 수정, 달터마을 등의 판자촌을 정비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도시 강남구의 어두운 그늘을 걷어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강남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구청장은 작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면서 자신이 붙은 듯하다. 지난 임기 동안 판자촌 2백 여 가구를 안전하고 깨끗한 임대주택으로 이주시켰다며 남아 있는 주민들도 어서 고집을 꺾고 개발에 협조하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구청이 하라는 대로 하면 안전하고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을까.


그 사이 나는 재건마을에 다녀왔다. 흔히 포이동 재건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의 현재 주소는 개포동 1266번지다. 재건마을은 최근 노골적으로 철거의지를 드러내는 강남구청에 맞서 마을의 상황을 알리고 연대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나는 노동당의 지역 위원장으로 주민총회에 참관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갔다. 마을회관에 들어갔을 때 낯익은 얼굴이 몇 보였다. 재건마을은 우리 당의 이름이 바뀌기 한참 전부터 많은 당원들이 연대해 온 현장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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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이동 재건마을 입구. (사진=진기훈)


주민총회의 주된 주제는 역시 철거 대책이었다. 작년 말까지 서울시와 강남구청이 마을 측과 함께 십 수 차례 협의하면서 나온 이주대책의 일정한 윤곽이 있었고 타결이 가까운 듯 보였다. 그런데 해가 바뀌자 구청은 ‘도시선진화담당관’이라는 직책과 예하 부서들을 신설하면서 주민들과의 대화를 단절했다. 그리고 마을 입구의 주차공간부터 변상금을 부과하고 신고조치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선진화라는 미명 하에 어떤 대화도 없이 마을을 밀어버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에게는 이런 상황에 대한 실망과 분노, 불안이 있었다.


4년 전 화재로 마을의 70%가 불타 없어졌을 때, 신연희 구청장은 이주대책도 없는 상황에서 주거 복구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수 차례 용역을 보내 재건 중인 마을을 때려부수고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불이 난 곳을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스스로 복구하는 노력마저 폭력으로 꺾는 건 이참에 죄 사지로 내몰겠다는 계획에서였을까. 월세를 감당할 수 없는 주민들에게 대책 없이 구청이 지정한 임대주택으로 이주하라고 강요하는 한편, 항의하는 주민들에 대해서는 안전한 집을 제공하는데도 말을 듣지 않는다며 언론전을 펼쳤다. 투쟁과 연대로 끝내 주거를 복구하고 연말에 입주식을 할 수 있었지만, 구청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언제 또 다시 철거 위기에 처할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져 왔다.


수정마을의 사례는 구청의 이주대책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줬다. 작년에 두 가구가 구청이 제시한 임대주택으로 이주를 결정했는데, 월 50~60의 임대료를 금세 밀리기 시작해서 몇 달 사이 모두 쫓겨나고 말았다. 마을에 있던 집은 이주 즉시 구청이 철거해 버렸다. 돌아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은 원래 살던 집보다 훨씬 작더라도 빈 집이 생기면 다시 들어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폐품수집과 건설일용직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저소득층에게 생계수단이나 주거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고 일단 이주부터 시키고 보는 것은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결국 주민들을 모두 내쫓는 행위다. 도시를 정비하고 판자촌 주민들에게는 더 나은 생활 환경을 제공한다는 말이 거짓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재건마을은 박정희 정권 말기에 넝마주이, 전쟁고아, 도시빈민 등을 모아 자활근로대를 조직해서 서초동 정보사 뒷산에 수용했던 것을 전두환 정권에서 포이동 쓰레기하치장 자리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여기는 시유지니까 평생 마음 놓고 살아라’는 관계자들의 말을 믿고,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임에도 어떻게든 정착해서 삶을 꾸렸다. 수시로 검문을 당하고 88올림픽 때는 마을 밖으로 나가는 것도 통제당하는 등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다. 그러던 것을 90년대에 들어가면서 자활근로대를 해산시키고 주민들에게 토지변상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국가가 강제로 이주시켜 살고 있던 것을 이제는 불법무단점유라고 규정한 것이다. 이 변상금 문제는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아 주민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몇 천만원의 변상금 때문에 새로운 곳에 정착해서 살고 싶어도 입주하는 즉시 보증금부터 차압을 당한다. 이런 상황을 구청도 모르지 않는다. 알면서도 주민들의 고집 때문에 개발이 늦춰진다고 호도한다.


애당초 선진국가 건설, 깨끗한 도시 환경 같은 구호에 쫓겨 도시의 가장 변두리까지 밀려나온 사람들에게 국가는 또 한 번 도시에서 떠날 것을 종용한다. 양재천을 사이에 두고 재건마을을 내려다 보는 타워팰리스는 칼날이 턱 밑까지 다가온 것을 상징하는 듯하다. 어디까지 개발하고 어디까지 쫓겨나야 하는 걸까. 나라가 아무리 부유해지고 선진화되어도 이런 면에서는 몇 십 년째 발전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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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이동 재건마을 주민들과 함께한 저녁식사 (사진=진기훈)


총회가 끝나고 회관에 남아 저녁까지 먹고 나서야 귀가를 했다. 함께 밥을 먹던 당원들이나 공부방 선생님들은 이미 주민들과 한 가족인 것처럼 보였다. 지난 수 년 간 모두가 함께 지켜온 마을이었다. 신연희 구청장이 꿈꾸는 대한민국 대표도시 강남의 모습이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의 모습과 다르다면, 역시 싸워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건마을 함록용 공동대표가 했던 말이 아직까지 마음에 남는다.


“싸우는 건 우리가 앞에서 열심히 싸워 볼게요. 옆에서, 뒤에서, 많이들 도와주세요.”



진기훈 / 노동당 강남서초당협 위원장

일명 '찐기춘'. 2011년 명동 마리 등 철거투쟁을 시작으로 진보정당 운동에 적극적 관심을 갖게 됐다. 통합진보당 창당으로 당시 진보신당이 둘로 쪼개지자 중앙당에서 상근을 했다. 2012년 총선 때는 진보신당 팟캐스트 '찐기춘의 개그펀치'라는 코너에 출연해 집회에서 부적절한 개그를 했다가 폭행당한 사연 등을 소개하며 남다른 감각을 과시했다. 이후 진보정당에 재정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당협위원장으로 진보정당운동 일선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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