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http://www.mediaus.co.kr/)에서 연재 중인 찐기춘의 당협위원장 라이프를 미디어스와 협의 하에 동시게재합니다 <편집자>


[지역에서 정치? 지역에서 진보!] '순수한 추모' 강요하는 세태의 부조리


“어휴, 왜 저러고 있는지 이해가 안 돼.” 한 여성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을지로1가 교차로였다. 노동절을 맞아 서울에 온 민주노총 강원본부 사람들이 행진을 하고 있었다. 행렬 끝에는 방송차가 따라 가면서 동양시멘트의 부당노동행위를 폭로하고 있었다. 불법하청으로 기업을 운영하다 법원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맞다고 인정하자마자 노동자들을 해고했노라고. 이 얘기에 공감이 되거나 관심이 가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걸까. 몰이해를 선언한 그 여성 뿐 아니라 교차로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등을 돌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아마 도로를 행진하며 교통에 불편을 주고 시끄럽게 떠드는 그 행동 자체가 너무너무 싫어서 말하는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이리라. 저 사람들은 자신이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노동절대회가 막 시작된 서울광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백하자면 나도 그날 전에는 동양시멘트를 몰랐다. 이제는 조금 안다. 나중에 기사를 검색해서 읽어 보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정보들이 있다. 너무 많은 광고와 너무 많은 뉴스 사이에 둘어싸여 사실 주위에서 어떤 사람들이 부당한 대우에 맞서 싸우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법이라는 법은 다 어기면서 모르쇠를 잡고 앉아서 배때지나 내미는 사장을 상대로 싸우는 노동자들이 시민의 불편을 염려해서 거리로 나오지 않는다면, 내가 무슨 수로 그 싸움을 알고 지지를 한단 말인가. 그러니까 헌법에서도 시민이 서로 불편을 끼칠 권리,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아니겠는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안다. 사람들은 시위의 자유에 별로 관심이 없다. 자신은 거리로 나가서 싸울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민권 또한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많을수록 시위의 자유 따위는 불필요한 자유가 된다. 불필요한 자유를 요구하면서 주변에 불편을 주는 사람들은 그래서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존재가 돼 버린다. 조금만 들어 보면 정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걸 알 텐데, 왜 그렇게 외면하는 걸까. 내 앞가림 하기에도 벅차서? 아직은 내가 당한 일이 아니니까? 엮이기 싫어서? 아니면 세상이 그대로 있는 편이 나중에 내가 돈 있는 사람이 됐을 때 유리할 테니까? 각자 이유야 다르겠지만 노동절에까지 몰이해를 선언하는 건 너무하다 싶다. 그래도 명색이 '일하는 사람들의 설날' 노동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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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세계노동절대회 참가자 등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다 서울 안국역 인근에서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연합뉴스)


단지 노조에 대한 배척 뿐 아니라 정치적인 어떤 것도 거부하고 혐오하는 사회 분위기가 도처에서 확인된다. 최근 1주기를 맞이한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집회에서도 다르지 않다. 지난 4월 16일 참사 1주기 집회 때의 일이다. 서울광장에서 추모행사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거리를 행진했다. 행진 도중에는 여기저기서 8박자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시행령을 폐기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같은 구호를 외치다 나중에는 “박근혜는 퇴진하라”까지 나왔다. 한 학생이 여기서 거부감을 느꼈다. 그리고 집회 후에 같은 학교 사람들과 모여서 각자 평가하는 자리에서 이 거부감을 토로했다. “순수한 추모집회라고 생각하고 나왔는데 너무 정치적이어서 싫었어요.” 학교 후배가 ‘요즘 분위기는 이렇다’며 전해준 이야기다.


1주기 집회에는 강남서초당협도 깃발을 띄웠다. 우리 당협만이 아니라 중앙당, 서울시당, 서대문당협, 고양파주당협, 은평당협 등 여러 노동당 깃발도 함께였다. 중간에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다른 사람에게 깃발을 맡기고 국가인권위 건물까지 갔다 오는데, 나오는 길에 앞에 서 있던 한 집회참가자의 얘기를 엿듣고 말았다. “노조 깃발들 꼴보기 싫다”는 것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날 뜬 깃발 중에 노조는 없었다. 진보정당 몇과 시민사회단체 따위가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 그런 구분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보수언론이 자꾸 세월호 집회에 씌우려 하는 어떤 프레임이 있다. 사람들은 순수하게 추모를 하려고 하는데 계속 불온세력들이 그 자리에 끼어서 정치색을 드러내고 집회의 의미를 변질시킨다는 것이다. 노동당원으로서 이런 소리를 들으면 기가 찰 따름이지만, 막상 현장에 나가면 이런 프레임 씌우기가 잘 들어먹힌다는 걸 몸으로 느끼게 된다. 어느새 우리는 불순한 정치세력쯤이 되어 버리고 책잡힐 거리나 만들어주는 천덕꾸러기처럼 되었다.


무엇이 순수한가. 경찰이 도로를 점거하면 더 나아가지 않고, 집회장소를 완전히 봉쇄해서 무엇을 하는지 밖에서는 전혀 알 수 없게 해도 항의하지 않는 것? 누구에게도 불편을 주지 않고 우리끼리 조용하게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립되고 잊혀지는 것? 아예 광장으로 나오지도 말고 각자 집에서 슬퍼하는 건 어떤가?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는 말들을 받아들이면서 그대로 가만히 있기만 하면 아무도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꼭 그렇게까지 해서 순수해야 하는 건가. 그 전에, 순수라는 말이 원래부터 이런 뜻이었던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라’는 것과 똑같은 참사의 ‘재발을 방지하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효율성을 위해 안전을 뒷전에 두어 온 우리 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미 정치적이다. 나는 처음부터 이 요구에 동의하고 지지하기 위해 거리에 나갔으므로 두말할 것 없이 정치적이다. 같은 것을 요구하는 또 다른 집회 참가자들 또한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이다. 그래서 우리가 불순한가. 아니면 사태를 방관하면서 책임과 변화를 거부하고 어서 이 문제가 잊혀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불순한가. 지금 누가 누구에게 순수를 말하고 있다고?


집회와 시위는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행동 수단이다. 대표자로서 자격이 검증되고 투표로 선출된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다소는 혼란스러운 자리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사실 민주주의의 모습 그대로다. 우리는 돈 받고 나와서 지시대로 움직이는 사람도 아니고 전체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대의체계가 시민에게 봉사하지 않고 오히려 시민을 위협한다면 언제든지 한 구호를 외치며 모일 수 있다.


순수의 의미를 왜곡하고 그 대척점에 정치를 놓으면서 시민권과 민주제의 본질을 외면하다 보면 어떤 시위라 하더라도 금세 고립되어 힘을 잃을 것이다. 만 명이 모여도 2만 명이 모여도 사회의 호응 없이는 변화를 만들 수가 없다. 번번이 시위를 방해하는 경찰보다, 언제나 앞을 가로막는 차벽보다, 훨씬 더 간절히 넘고 싶은 것은 정치혐오의 벽이다. 더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벽을 넘어주었으면 좋겠다.



진기훈 / 노동당 강남서초당협 위원장

일명 '찐기춘'. 2011년 명동 마리 등 철거투쟁을 시작으로 진보정당 운동에 적극적 관심을 갖게 됐다. 통합진보당 창당으로 당시 진보신당이 둘로 쪼개지자 중앙당에서 상근을 했다. 2012년 총선 때는 진보신당 팟캐스트 '찐기춘의 개그펀치'라는 코너에 출연해 집회에서 부적절한 개그를 했다가 폭행당한 사연 등을 소개하며 남다른 감각을 과시했다. 이후 진보정당에 재정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당협위원장으로 진보정당운동 일선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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