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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누구를 위하여 표를 던지나

posted Nov 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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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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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독재정권 또는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수구세력의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만한 사람들한테 나 또한 투표해 왔어. 가장 중요한 것은 브레이크의 성능이었고 그 브레이크는 어쨌건 될 사람을 밀어 줘야 가동한다고 선전되었지. 하지만 나는 이제는 브레이크 말고 악셀레이터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

알다시피 나는 저번 봄을 시골에서 보냈다. 말라 죽어가는 할아버지를 도와 달라는 제보 때문이었지. 모시고 있는 자식이 거동불능의 노인을 돌볼 능력이 부족할 뿐 학대나 폭력같은 것은 없다고 해서 아이템으로서는 큰 매력이 없었지만 뭐든 가서 눈도장을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극성 작가들의 성화가 바늘이 되어 엉덩이를 콕콕 찔러대니 어쩌냐 불원천리 가야지.


제보자는 만나자마자 단호하게 말을 하더군. "지금 도와주시는 분들 아니면 할아버지는 이번 겨울에 죽었어요."


인근의 장애인 시설에서 할아버지의 참상을 발견하고 백방으로 주선해서 입원까지 시켰었는데 한 달만에 돌아와서 다시 똥오줌 속에 뭉개고 있다는 거야. 제보자에 따르면 그 장애인 시설의 관계자들이 다른 자식들한테 애타게 연락을 해 봐도 "알아서 할 테니 냅두라"거나 "당신들이 뭔데 참견이냐."고 타박할 뿐이라는 거야. 아니 모시고 있는 자식은 어떻게 된 거냐 물어보니 그럴 깜냥이 없대.


일단 현장부터 확인해야 했어. 시설 분들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함께 집에 들어갔던 나는 그만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어. 할아버지의 몸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을만큼 말라 있었던 탓이란다. 뼈에다 가죽 씌워 놨다는 표현을 많이 하지만 할아버지 몸을 함부로 만졌다간 살을 찢고 뼈가 뼈져나올까봐 걱정스러웠다면 이해가 되겠니? 그 빈약한 알몸은 똥오줌이 널려 있는 이불로 싸여 있었고 욕창까지 진행되고 있었지. 아들 며느리가 기저귀조차 제대로 갈아 주지 못했기 때문이야. 일견 멀쩡해 보이는 부부는 오래도록 정신분열증을 앓아 왔다고 해.


성정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었어. 오히려 아들은 "아버지를 제가 잘 모실 수 있도록" 기도도 드리면서 자기가 몸에 좋다고 생각하는 계란을 삶아 믹서로 갈아서 타 먹이는 등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어. (딴 음식은 거의 안 드리는 경향이 강했지만) 자신이 정신병을 앓은 이후 아버지가 정성스럽게 자신을 돌보았기 때문에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잘 모시려 한다고도 했지. 하지만 의사와 능력은 대개 별개이게 마련이지.


이를테면 "제대로 영앙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계란을 주로 드시게 하는 건 탈진 상태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영양학자의 말을 들은 뒤에 나는 기절초풍을 했어. 아들의 정성이 아버지에게는 독약일 수가 있는 거잖아. 대체 다른 식구들은 뭐하는 거냐 물었더니 식구들이 자신한테 맡겼대. 7남매 가운데 하필 이 자식에게 부양의 책임이 지워졌고, 그것이 다른 식구들의 동의로 이뤄진 상황이라면 이건 노인방임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찌보면 "죽기만 기다리는" 모양새잖아. 요양등급까지 2등급 받아 놓았다는데 형제들끼리 조금만 갹출해서 요양원에라도 모시면 최소한 말라죽어가지는 않을 거 아니냐고. 자 이제 정의의 사도가 되어 다른 형제들을 찾아가야지.


형제 많아 봐야 별 소용 없더군. 모든 일은 장남이 다 알아서 했대. 형제들 가운데에서는 그나마 제일 번듯한 직장도 가졌고 말이지. 그런데 할아버지를 돕던 시설 관계자들 말씀으로는 할아버지를 긴급 입원시킨 다음에 한 번도 와 보지도 않았고, 처음엔 뜨악하다가 "병원의 협조로 무료로 입원"을 얘기하자 "알아서 하시오" 식으로 대응을 했으며 결국 그 무성의가 병원 사회복지과의 분노를 사서 할아버지는 내쫓기다시피 (사실 치료할 병은 없으시니) 퇴원된 거라는 거야. 이런 저런 증언들과 할아버지의 참상을 담은 그림까지 챙겨 들고서 나는 장남과 대면했어. 그러나 무슨 사정이 있든 이러면 안되지 않느냐며 등등했던 나의 기세는 그만 촛농처럼 물러진 채 땅에 떨어지고 말았어.


"아버지를 방치했다고요? 아닙니다. 미치도록 할만큼 했다고 감히 얘기합니다. 다른 형제들 형편은 알고 오셨으리라 믿구요. 요양원에 몇 번 모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폐렴이 있으셔서 조금만 기침을 하면 병원에 입원을 시켜요. 그럼 요양원 비용에 병원 입원비가 고스란히 얹어지고 간병인 비용까지 합치면 300이 나왔어요. 감당을 할 수가 없어요. 제 아내가 작년에 죽었습니다. 서울에서 그곳까지 왕복하면서 아버지 돌본 사람인데 백혈병으로 2년을 고생하다 죽었어요. 제 빚이 2억입니다. 지금.


지쳤습니다. 그래요. 이번에 병원에 또 입원하신다길래 신경질적으로 대응했던 건 사실입니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당장 병원비가 눈을 찌르는데 곱게 말이 안나가더라구요. 그리고 저도 다리를 다쳐서 한 달 동안 운신이 어려워서 못가 뵀습니다. 미안합니다. 근데 정말 지쳤습니다. 저 아버지 방치한 건 아닙니다. 그럴 뜻도 없었구요. 하지만 도저히 무슨 수가 나질 않았어요. 나도 살아야 할 거 아닙니까. 애들 장가시집 보내야 할 거 아닙니까. 내가 죄인입니까? "


그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어. 세상 살아가는 눈치라고는 발휘한 적 없이 그저 앞만 보고 평생을 살아온 정년 앞둔 직장인이었어. 딱히 벌어놓은 돈도 없고 퇴직한 뒤의 노후대책도 도드라지게 세워 놓은 것 없는, 그저 한 달 한 달 월급 쪼개서 자식 건사하고 사는 글자 그대로의 선량한 시민이었어. 물론 그가 잘못한 게 없다고는 말 못하겠어.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 질문을 할 수가 없었어. 그의 잘못을 따지기에는 나라면 달랐을까 하는 의문이 폭탄처럼 머리를 뒤흔든 까닭이고, 이 사람에게 대안이란 무엇이 있었을까 하는 답답함이 재갈이 되어 내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야.


저런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까? 치매 중증에 거동 불능의 아버지는 폐렴에 전립선염도 있어서 수시로 병원 신세를 져야 하고 한 달 월급 육박하는 치료비가 다달이 청구되는 상황이라면....... 법 없이 산다고 자부하고, 평생 나쁜 일 한 거라곤 친구 돈 50만원 떼먹은 거 밖에 없다고 자부하는 너라면, 나라면, 우리라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사흘 굶어 도둑질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했어.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은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대개는 극단적인 행동에 대한 책임은 가차가 없으나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책임은 소재가 없지. "죽일놈이 되지 않으면 내가 죽겠더라."는 절규같은 푸념 앞에서 "그래도 죽일놈은 되지 않아야지."하는 훈계는 때로 얄밉고 심지어는 야만적이야. 곳간에 쌀이 썩어나는 부자가 사흘 굶어 담을 넘은 자에게 사지멀쩡한 넘이 도둑질이라니 라고 꾸짖는다면 그 말이 법적으로 정당할지언정 그 외에 어디에 비추어 정당할까.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정당해. 아주 정정당당하고 당연하며 지당해. 그 나이 먹도록 사흘 굶을만큼 양식 하나 갈무리 못한 책임이 준엄하게 청구되고 아파서 일을 못했다면 니 팔자 소관이고, 자식이 죽을 병 걸려서 가산을 탕진했다면 ARS만이 희망이며, 먹을 것 좀 나누자고 손을 내밀면 '도덕적 해이'가 되지.


"차 한 대 있다고 수급자 혜택을 못받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진노하셨던 가카의 정부에서 차상위계층에서 의료비 혜택이 뭉텅 줄어들었고 기초생활수급자 자녀들에게 제공되던 장학금 혜택은 반토막이 났다지만 나는 이건 가카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 가카가 등극하기 이전의 정부가 지금의 정부보다는 좀 나았다지만, 그 정부도 시작부터 종말까지 삼성 경제 연구소의 시나리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걸 우린 봤잖아. 4대강 삽질에 쏟아붓는 돈이 복지에 투입되면 여름날 섭씨 4도에 맞춰진 맥주 500같이 시원하겠지.

하지만 난 결국 마시면 다시 목말라지는 맥주보다는 시원한 냉수를 바라고, 냉수 한 바가지에 그치지 않고 원할 때 빼먹을 수 있는 시스템을 원해. 이를테면 터무니없이 작은 세금으로 터무니가 기절할만큼 큰 덩어리를 상속받았던 삼성의 황태자에게 그거 좀 토해 내라고 소금물을 먹이는 거지. 물론 그런 시스템을 위해서라면 내 지갑도 열어야겠지만


술 먹을 때마다 나는 걱정을 들어. 그렇게 험하고 더럽고 가슴 아픈 일만 보면 어떡하냐고. 맞아. 나도 걱정돼. 그런데 그럴수록 하나 굳어지는 건, 우리 사회가 좀 더 왼쪽으로 가지 못하면, 아 그래....... 왼쪽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 일으키는 분들을 위하여 말을 수정하여 좀 더 완연한 복지와 재분배 정책을 펴는 정책을 끌어내지 못하면 험한 게 아니라 아예 절벽이 될 것 같고, 더럽다 못해 치명적이 될 것 같고, 남 일에 가슴 아픈 게 아니라 내 일에 복장이 터질 수도 있다는 불길함이야. 근데 나는 알다시피 보수잖아. 내가 왜 이런 걱정을 해야 되는 거냐고.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MB정부에 제동을 걸어야 하지 않겠냐고? 범민주 단일후보를 당선시켜야 하지 않겠냐고. 그래 일리 있어. 지금까지 독재정권 또는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수구세력의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만한 사람들한테 나 또한 투표해 왔어. 가장 중요한 것은 브레이크의 성능이었고 그 브레이크는 어쨌건 될 사람을 밀어 줘야 가동한다고 선전되었지. 하지만 나는 이제는 브레이크 말고 악셀레이터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


난폭운전을 하는 운전사의 머리통을 갈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운전사를 앉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거지. 물론 베테랑 운전사도 좋겠지. 하지만 이게 방향의 차이가 아니라 운전 방식이 '난폭하냐' '부드럽냐'의 차이밖에 없다면 (물론 이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 난 차라리 초보지만 내 생각이랑 비슷하게 방향을 잡고 있는 운전자에게 핸들을 맡겨 보자고 할 것 같아. 이 중차대한 시기에 초보를 어떻게 믿냐고? 운전은 어떤 길에서든 다 중차대해. 마누라 초보라고 운전대 안맡겨 봐. 평생 운전은 자기 혼자 해야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당투표만큼은 진보신당을 찍을 거야. 민주당? 뭐 그렇고 통진당? 개인적인 책임에 대해서야 논란이 있지만, 조직적으로 성폭력 피해자 요구 짓밟았던 정파가 내민 비례대표에 목숨거는 정당? 노회찬 심상정과 그 당에 함께 있는 많은 분들께는 미안하지만 내 한 표 그리 안가. 솔직히 유시민부터 이정희에서 심상정까지 굽어보면 그 스펙트럼이 찬란하다 못해 과거 민자당 시절의 ‘한 지붕 세 가족’이 떠오를 지경이야.

그래서 나는 어디 장짜리 경력 없고, 선거 포스터에 붙일 이력조차 미미하지만 미화노동자를 비례대표 1번으로 내미는 정당이 차라리 낫다고 보는 거야. 일반인은 못올라가는 국회 중앙 계단으로 현직 ‘청소부’가 성큼성큼 들어가는 모습, 좀 보고 싶네.


그래봐야 2퍼센트? 뭐 좋아. 그 정책에는 동의하지만 그 세가 미약해서 표를 주지 않는다는 핑계라면 앞으로 5세기 동안 진보정당은 3퍼센트를 넘을 일은 없을 테니까. 민주당마저 ‘무상의료’를 외치게 된 세월은 바로 지난 20여 년, 1프로 3프로 놀림받으면서도 그 구호를 처음 외쳤던 사람들이 결국은 견인해 온 거라는 거..... 모르지는 않겠지? 아 그래. 너는 네 생각대로 해. 단지 ‘사표’라고 하지는 말란 말이야. 뭐 분열의 원흉이네, 너 땜에 졌네 중공군들처럼 쏼라거리지는 말란 말이야.


민주주의 좋고 표현의 자유 멋지고 일반 민주주의의 위기 열받아. 하지만 나는 그것이 5년 전으로 회복되는 것이 우리의 승리이며 만병통치약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세상에 반대하는 힘, 삶이 바닥으로부터 와해될 때 그를 떠받치는 세력이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 세력이 지금은 미약하든 말든 , 아니 미약할수록 더 큰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바닥을 보고 다니거든. 벼랑에서 떨어진 사람들을 보고 다니거든. 그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남인 거 같지? 우리 팔자엔 절대 그런 일 없을 거 같지? 자 앞으로 돌아가 보자. 너 나이가 쉰 넷 정년 간당간당한데 마누라는 병치레로 가산 말아먹고 천당에 갔고 애들은 대졸 취업 재수생이고 아버지는 중증 치매에다가 거동이 안되시는 돈 먹는 하마셔. 돈 나올 구석은 없고 누가 찾아와서 노인 방임했다고 뭐라고 해. 네 아들은 잘해봐야 비정규직이야., 아마 네 손자대에는 어떤 삶이 네 손자를 기다리게 될까? 그걸 어떻게 막을까? 아 미리미리 열심히 돈 벌 거라구? 가랭이가 찢어져도 학원은 보낼 거고? 음 그건 뭐...

[ 산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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