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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노동자정치대회를 통한 정치세력화를

posted Nov 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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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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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이 글은 9월 14일 열리는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창립 10주년 맞이 정치대회를 알리는 글로 정치대회 조직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김선아 부대표를 비롯한 조직위원들이 작성한 연속 기고글이다. 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진보신당과 구분되는 조직이긴 하나, 당 부대표가 쓴 글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서 제2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방식 등에 대한 문제의식 등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전문을 게재한다.



(1) 9월 14~15일, 불안정노동자 정치대회를 제안하며 (엄진령)

치열한 투쟁을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노동자들

20120806145731_0031.jpg ▲ 건설운송노조의 투쟁 ⓒ오마이뉴스
99년 최초의 비정규직 투쟁이라 불리는 한라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 대교 재능교육 등의 학습지 노동자들, 레미콘 운송 노동자들의 투쟁,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들의 투쟁. 2000년대 초반 벌어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발전시켰다. 비정규직 문제를 자기 과제로 하기 위한 노동조합 운동 차원에서의 노력도 있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에 대한 인식은 그만큼 확대되었다.

또 최근에는 조직된 노동자들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비정규직 운동의 전전을 보고 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고, 이들의 활동은 2010년 동희오토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을 거치면서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사회적 연대를 광범위하게 형성하는 기틀이 되었다. 특히 지난 해 희망버스 운동을 통해 대중의 자발적인 연대가 형성되는 가능성을 발견했고, 그로부터 비정규운동의 사회적 확장을 위해 광범위한 권리 주체의 형성으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2012년, 지금도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는 권리의 주체로 인식되기보다 처절한 투쟁을 통해서만이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상황에 있다. 비정규직 노동의 열악함과 고용의 불안정성은 알려졌으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주체로서 사회적, 정치적 발언력을 부여받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산별노조 또는 정규직 노조로 흡수되어 온 비정규직 노조의 경우 독자적인 자기 발언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파견법 폐기, 비정규악법 폐기라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여전히도 국회에서의 논의 가능성, 입법 가능성을 이유로 늘 흔들리고 있다. 악법폐기라는 투쟁의 과제를 견고히 지켜내고 있는 것 역시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과물이지만 그는 비정규직 주체의 미약함으로 인해 여전히 누군가에 의해 대리되는 것이 되고 있기도 하다. 

투쟁의 주체로서, 정치의 주체로서 불안정 노동자가 나서야 한다

지금까지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활동은 제도정치 내에 노동자 국회의원을 진출시키는 것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문제,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되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노동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정치권의 손으로 넘겨버리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었다. 2012년 선거정세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의 주요 핵심이슈로 등장하고 있지만, 제도 정치권의 공약과 정책은 여전히도 신자유주의의 지향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이러한 정치권의 태도에 대한 근본적 질문과 신자유주의 지향 가운데 제출되는 비정규직 정책의 허구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야권의 연대를 통한 여소야대 및 정권교체 등을 통해 노동계가 유리한 지형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다.

20120806150212_5797.jpg ▲ 4월 총선 당시 야권연대를 통해 민주통합당과 연설 중인 통합진보당 후보

그러나 불안정 노동자 주체가 서지 못했을 때, 즉 누군가가 대신해서 교섭해주거나 대리하여 협상테이블에 앉아 타협안을 주고받는 모양새가 되었을 때 비정규직 문제가 결코 제대로 해결될 수 없다. 제대로 해결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시키는 것으로도 이어지지 못한다. 비정규악법 제정 당시에도 노동자 국회의원이 있었으나, 그 손에 의해 우리의 요구는 왜곡되어졌다는 사실이 그를 증명한다.

제도 정치의 영역에서 불안정 노동의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 우리에게도 있다. 우리 운동 내에서도 불안정 노동자가 세력화되어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당사자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증언’되지만 고려해야 할 현장의 의견일 뿐, 제도적 요구를 정선하고 제출하는 몫은 어느 새 전문가의 몫이 되어 버리고 주체의 목소리는 치열한 투쟁으로만 겨우 알려질 수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지금 다시, 불안정 노동자의 주체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불안정 노동자는 노동운동 전체가 불안정 노동 철폐의 문제를 자기 과제화하도록 추동하는 주체이다. 그 주체를 많이 조직할수록 운동 내에서의 불안정 노동자의 세력화가 앞당겨 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조직화를 위해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보다 많이, 보다 광범위하게 주체를 형성해 내야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 노동조합은 정치권이 아니라 노동자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하는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불안정 노동자들 스스로 정치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노동권의 문제에 있어서의 권리의 주체로 서는 것만이 아니라 정치의 주체로 스스로를 선언해야 한다. 지난 시기 노동자 정당을 세우고, 국회로 노동자 국회의원을 보내는 것, 그리고 그를 우리의 입으로 삼아 제도정치 내에서 발언하는 것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부였다. 또 정치적 의제나 노동계 내의 노선 논쟁 등에 대해 비정규직 사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외면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신자유주의 정당이라 하더라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정책을 낸다면 그 내에서 개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불안정 노동 문제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문제임을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이의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정부의 시혜적 태도에서 찾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불안정 노동 주체 스스로를 대상화시킨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정치권으로의 수렴은 결국 노동자를 끊임없이 참고인으로 만들 뿐이다. 스스로 정치의 한가운데에 서서 주체임을 선언하고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불안정 노동자 정치세력화, 투쟁의 확장에서 시작하자

불안정 노동자가 정치의 주체로 선다는 것은 삶과 노동의 불안정성을 어떻게 깨부수고 권리를 쟁취할 것인가의 문제와 떨어져 있지 않다. 정치는 곧 삶의 문제이고, 우리의 삶을 어떻게 구성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즉, 자본주의를 넘어 이후 우리의 삶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상을 제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상이라는 것은 뭔가 새로운 것이라거나, 지금 전개하고 있는 개별적 투쟁과 분리되는 문제는 아니다. 각각의 투쟁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확장시킬 것인가의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임금 인상 투쟁이 과거 자본과의 관계에서 계급의식을 자각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매개였다면, 현재에 있어서 개별 사업장 단위의 임금인상 투쟁이 가지는 의미는 훨씬 축소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본의 위계화로 인해 대공장의 임금투쟁의 성과는 하위의 노동자에게로 자본의 부담을 전가시키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기에 지금에 있어 임금인상 투쟁은 곧바로 노동자의 계급적 의식을 확대하는 것은 되지 못한다. 생활권에 대한 투쟁, 생활임금 및 최저생계비 확보에 대한 투쟁, 임금제도 유연화에 맞선 투쟁, 실업부조 도입을 위한 투쟁 등이 더욱 노동자 계급의 단결과 권리 확장을 위해 중요한 투쟁이다.

이는 개별 자본에 맞서는 투쟁에서 전체 자본을 타격할 수 있는 투쟁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자본의 위계서열화로 인해 원청 대자본을 타격할 수 있는 투쟁은 대공장 노동자들만으로 형성되기는 어렵다. 노동의 불안정화의 심화는 그만큼 노동을 세분화하였고, 그 가운데 일부 노동자들의 투쟁만으로는 더 이상 자본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투쟁을 형성하기 어렵다. 그래서 말단에 있는 공단지역 노동자의 조직화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불안정 노동자를 조직하고 주체로 세우는 것, 그리고 삶의 양식을 재구성하기 위한 권리 확보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 것, 그 투쟁의 결과물로서 자본이 가진 것을 사회로 되돌리게 하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20120806150406_6503.jpg ▲ 투쟁하는 노동자들 ⓒ참세상
그에 불안정 노동자의 정치 주체화는 반드시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불안정한 노동은 곧바로 삶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진다. 잠깐 일하고 또 사업장을 이동해 일하는 정착할 수 없는 노동자, 언제든 일자리를 구할 수 있으나 비정규직 파견 노동자에 최저임금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노동자. 비정규직, 최저임금이 당연한 공식이 되면서 노동자들은 삶의 안정을 잃었고, 내일의 꿈도 빼앗기고 있다. 이렇게 불안정한 노동은 삶의 기반을 흔드는 것을 넘어, 불안정한 노동이 일반화되면서 삶의 양식 자체를 변화시키고, 삶 전반의 권리를 박탈한다.

하기에 그 빼앗긴 권리에서부터, 불안정 노동자가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설 수 있어야 한다. 노동과 삶의 불안정화에 맞서 우리가 요구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제시하고 그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이는 때로는 제도 개선의 요구로 수렴될 수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노동법 등의 개정으로 드러날 수도 있을 테지만, 더 중요하게는 삶의 양식을 직접적으로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 그를 위해 노동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와 연동되어 있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삶의 양식을 재설계하는 것, 그로부터 노동을 다시금 재구성하는 것. 그것이 바로 노동자의 정치이다. 그런 투쟁이 필요하고 우리의 투쟁은 충분히 그렇게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조직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아래로 조직을 확대하고 끊임없이 조직하는 것을 자기 과제로 삼아야 한다. 자기 조직 내에 안주할 때 이는 정규직 노동자 운동에 대해 비판해 온 모습과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사업장 내에서 잘 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래로 조직을 확대하면서, 투쟁의 과제를 사업장을 넘어 사회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9월 14-15일, 불안정 노동자 정치대회로 모이자

불안정 노동자 정치대회는 불안정 노동자가 권리의 주체임을 선언하고, 권리는 누군가가 대리해서 찾아주는 것이 아님을, 주체의 투쟁으로 쟁취해야 하는 것임을 선언하는 자리이다. 지난 시기 불안정노동 철폐운동을 함께 해 왔던 동지들과 함께 그간의 운동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정치대회는 크게 활동가대회와 문화제의 두 축으로 구성될 것이다. 활동가 대회는 불안정 노동자를 조직하고 주체로 세워내기 위한 방안과 그로부터 어떤 투쟁을 만들어 나갈 것인지 투쟁 전략에 대한 의제, 불안정 노동으로 인해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광범위한 주체들을 투쟁의 주체로, 권리의 주체로 세워내기 위한 방안, 그리고 불안정 노동자들의 투쟁을 정치적 투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 이 세 가지를 주제로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지난 투쟁을 돌아보고 이후 투쟁의 방향과 전략을 세우기 위해 불안정 노동철폐에 동의하고 실천하는 모든 동지들의 힘과 혜안을 모아주기를 바란다.

문화제는 정치대회 조직위원회와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가 함께 준비하며,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우리의 권리를 드러내는 공간으로 열고자 한다. 지금까지 불안정 노동에 대한 요구는 노동조건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그만큼 우리의 삶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고, 그 노동의 열악함으로 인해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에 요구의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권리는 노동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 전반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권리를 가진다. 지금까지는 그러한 권리는 미처 권리로 주장할 여지조차 없었거나, 권리로 인식하지도 못했었다. 

이제는 우리의 모든 권리를 다양하게 드러내고, 삶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삶을 누리기 위해 노동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금 제기할 수 있다. 문화생활을 누리기 위한 권리,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일터에서만이 아닌 사회에서 다양한 관계를 형성할 권리는 곧 적정한 임금을 받을 권리와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을 권리, 주말노동을 하지 않을 권리 등과 함께 한다. 이처럼 우리가 지금까지 말하지 못했던 권리, 말하지 않았던 권리. 그 모든 곳에 우리가 있고, 우리의 권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문화제라는 형식을 빌어 말하고자 한다.

불안정노동자 정치대회는 철폐연대가 제기하고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준비하지만, 이에 동의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하는 자리로 열려있다. 다양한 정치적 발언과 투쟁 발언, 춤, 노래, 이야기 등 노동자의 모든 삶과 노동을 담아내고 싶다. 욕심이라 할지라도,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다. 그것이 행복의 나라로 가는 더욱 넓은 길을 여는 또 하나의 투쟁이라 생각하며.

(2) 불안정 노동자 주체화의 의미와 과제 (김철식)

왜 불안정 노동자 주체화인가


2000년대 들어 한국사회에서는 소위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s)가 줄어들고,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 생활 및 노동의 불안정성, 낮은 조직율과 노동권 박탈 등을 특징으로 하는 ‘불안정 노동자’가 노동자 계급의 다수로 등장하고 있다. 비정규직 비율이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을 넘어선지 오래고 비정규직 중에서도 직접고용보다는 간접고용의 비중이 증가하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또한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반면 대기업 노동자의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고용안정으로 상징되는 대기업으로부터 상대적 저임금과 고용불안으로 상징되는 중소영세기업으로 고용의 하향이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 정부의 통계조사에 따르면, 30인 미만 영세사업장 종사자가 2010년 현재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노동부, <사업체노동실태현황>).

불안정 노동자가 노동자 계급의 다수로 등장하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조직화가 노동운동 활성화의 중요 사안으로 제기되어 왔다. 실제로 2000년대 들어 불안정노동자들의 권리획득을 위한 무수한 투쟁과 조직화 시도가 있었고, 불안정노동자 문제를 자기과제로 하기 위한 기존 조직노동의 노력이 있었으며, 정규직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에 대한 인식 또한 많이 확대되었다.

그런데 불안정노동자를 조직화하려는 시도들 중에서 많은 경우는 불안정 노동자들을 투쟁과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기보다는 이들을 사회의 약자로서 배려와 돌봄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그러한 가운데 불안정노동자 조직화는 노동조합 조직률 향상을 위한 필요, 혹은 노동운동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라는 소위 ‘시혜적 실천’의 당위로 그 의미를 부여받기도 한다.

그러나 불안정 노동자를 조직화하고 주체화하는 것의 의의는 가장 열악한 집단에 대한 조직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불안정 노동자의 조직화와 주체화는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의 일방적 공격을 무력화하고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핵심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불안정노동자 주체화는 계급투쟁 전선 복원을 위한 핵심 지점

불안정 노동자를 주체로 조직화하는 것은 오늘날 노동현장의 모순이 자본간 모순(대자본-중소자본), 노동간 모순(대기업 노동자-중소기업 노동자,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왜곡되어 나타나는 현실에 대해 그것의 기저에 존재하는 자본주의 노자관계의 모순을 드러내고, 계급투쟁의 전선을 복원하기 위한 핵심 지점이다. 

오늘날 대자본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형성하고 불안정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확대하며, 그에 따른 노동자 분할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것을 통해 대자본은 축적과정에서 발생하는 내부의 노자간 모순을 하위자본과 불안정 노동자에게로 전가하고, 이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함으로써 자신의 수익을 획득해나가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에서 조직된 노동자의 투쟁 성과가 노동자 계급 전반의 성과로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직된 노동자 투쟁이 하위자본과 불안정 노동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20120806150619_8061.jpg ▲ 차라리 죽이라는 구호를 내보이는 불안정노동자들 ⓒ참세상

한편,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하위자본, 불안정 노동자의 영역이 대자본과 조직된 노동의 영역을 대체해나가면서, 이제 조직된 노동의 존재조건도 불안정해지고 있으며 그 결과 노동계급 전반의 조건이 열악해지는 노동의 불안정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서는 투쟁을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모순의 집약 지점인 중소영세사업장과 불안정노동자가 직접 정치의 주체로, 투쟁의 주체로 조직화되어야 한다. 불안정 노동자의 주체화, 조직화는 대자본의 비용과 위험의 전가, 노동자 분할 전략을 무력화하고 자본주의 노자관계의 모순을 드러내는 핵심 지점인 것이다. 

노동자 계급 연대를 위해 불안정 노동자 주체화 필요

한편 불안정 노동자를 주체로 조직화하는 것은 다양하게 분할되어 존재하는 노동자들의 계급적 연대를 복원하기 위한 핵심 지점이기도 하다. 지난 10여년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분할하고 일방적으로 모순을 전가하는 자본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연대와 공동투쟁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되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들은 노동자 계급 구성원들간 연대의 확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조건이 양호한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이 조건이 열악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도와주는, 일종의 시혜적 실천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투쟁이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장기화될 경우 시혜적 실천은 당사자인 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만을 유발하면서 지속되지 못하고 한시적인 것으로 끝나곤 했다. 

한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공동투쟁 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과도하게 기대하고 의존하는 태도를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기대와 의존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되는 한편,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 문제해결에 나서기보다는 자신들에게 의존하려고만 한다는 불만을 갖는 결과를 가져왔다.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공동투쟁은 상호 신뢰보다는 실망과 불신을 쌓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결과 공동투쟁의 실질적 성과를 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는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들이 직접 문제해결의 주체, 정치의 주체로 서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불안정 노동자의 주체화는 일방의 시혜적 실천이 아니라 진정한 노동자계급 연대를 구축하기 위한 핵심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운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실험 필요

한국의 노동운동은 1987년 이후 일정하게 ‘시민권’을 인정받아왔다. 여전히 반노조적인 정부에 의해 탄압받고 노동권이 제한되는 상황에서도 노동조합은 기업단위의 협상을 통해서 권리를 확장해왔다. 그에 대한 자본의 대응은 노동권에서 배제되는 노동자들을 만드는 것이었다.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기업단위의 노동조합 활동 구조에서 노동권이 배제된 상태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조건에서 불안정 노동자를 주체로 조직화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일정한 규모가 있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기업단위의 노사관계를 통해 노동자들의 권리를 일부 실현해왔던 노동조합 운동의 방식을 변화시킨다는 의미를 지닌다. 

일단, 지금까지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인 사업장 단위 조직화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물론 노동자 집단이 형성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사업장이라는 점에서 사업장 단위로 조직화가 이뤄지고 그 성과들을 지속적으로 외부로 확대해나가는 것은 유의미한 조직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에서 사업장 단위 조직화는 상당한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먼저, 사업장 단위 조직화는 개별 사업장 단위에서 노사담합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오늘날 대자본은 다단계의 하도급 위계를 형성하고 다양한 불안정 노동자층을 확대하여 노동자들 간 위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위험과 비용이 연쇄적으로 생산위계의 하위로 전가되는 구조를 강화해나가고 있다. 이는 자본간 권력격차를 심화시킴과 동시에 다시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어느 기업 소속이냐에 따른 노동자 집단 간 권력격차를 낳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업장 단위 조직화는 외부로의 모순 전가를 담보로 한 노사간 담합 가능성을 높인다. 그에 따라 사업장 단위에서의 내적 연대와 단결은 사업장 외부의 계급적 단결로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어렵고, 오히려 자본의 분할전략에 활용되기 쉬운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 오늘날 불안정 노동자들의 다수는 영세사업장에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사업장 단위 조직화가 쉽지 않은 조건이다. 또한 불안정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실직과 이직, 새로운 사업장으로의 입직을 반복하면서 빈번히 사업장을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하나의 사업장에 집착하지 않는 조건에서 개별 사업장에 국한된 운동, 작업장의 노동조건에 국한되고 있는 현재의 운동으로는 불안정 노동자의 조직화와 주체화의 성과를 내기 힘든 조건이다. 

이런 점에서 개별 사업장을 넘어서는 포괄적 조직화 전략이 요구된다. 개별 사업장이라는 기존을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의제 설정과 조직화, 주체화 전략의 시도가 요구된다. 개별 사업장 조직화와 투쟁 성과를 외부로 확산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작은 사안으로부터 사업장을 넘어서는 의제와 조직화 전략을 설정하고 이를 보다 큰 범위와 사안으로 확대해나가는 시도가 모색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사업장 단위를 넘어서는 유력한 시도였던 그간의 산별 조직화 경험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요청된다. 더불어 화물연대, 학교 비정규직, 시설관리 노동자 등 직종별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 시도에 대한 평가를 통해 조직된 노동자들이 진정한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오늘날 다단계 하청연계가 강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하청연관을 따른 조직화, 중소영세사업장이 집중되어 있는 공단 등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단위 조직화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그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3) 더 많은 불안정 노동자들이 권리의식을 갖기 위해 (김혜진)

불안정노동자가 진정한 정치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기업이나 정치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를 만드는 노동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들은 생존의 문제로 고통받고 있기 때문에 작은 시혜나 정부 정책에 쉽게 기대게 된다. 때로는 자포자기하고, 어떤 경우에는 이 고통의 근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기업과 정부가 이야기하는 대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더 많은 이들이 불안정노동의 근원적인 문제를 깨닫고 권리의 주체가 되어야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그래서 불안정노동자 정치대회의 두 번째 주제로 ‘불안정노동을 없애기 위해서 어떻게 더 많은 이들이 권리의식을 갖게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 큰 주제 아래 다음의 세 가지 작은 주제들을 토론할 예정이다.

불안정노동에 순응하는 이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기획 

자본의 힘이 사회적으로도, 기업 내적으로도 압도적인 상황에서 정치권에 대한 압력투쟁이나 기업단위만의 노동자 투쟁으로는 지금의 상황을 반전시키기 어렵다. 지금은 우리가 자본을 포위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이미 전체 노동자들의 50%가 넘는 수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고, 80%를 넘게 차지하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고용형태와 무관하게 불안정한 노동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자신이 불안정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자영업자’ 혹은 허울좋은 ‘프리랜서’라는 인식 아래 갇혀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이 일자리가 ‘알바’이며 거쳐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며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기 위안을 한다. 

20120806151053_2502.jpg ▲ 청소노동자 행진 ⓒ참세상
기간제 노동자들과 파견 노동자들은 기간제법과 파견법이 만들어졌을 때 강력하게 저항하며 싸웠지만 이제는 ‘나는 원래 2년짜리’라는 생각에 갇혀 계약해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중소영세사업장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린 채 ‘이대로도 좋다’고 여긴다. 중장년 여성들은 ‘그나마 일하게 된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많은 이들이 불안정노동은 잘못된 것이며, 그 책임은 정부와 자본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현실은 변화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광범위한 불안정노동자들을 불러 일으켜 세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들을 광범위하게 조직하고 선전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불안정노동자들이 불안정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도록, 이런 상황이 ‘원래 이런 것’이 아니며, 이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함께 이야기해보는 것이 첫 번째 토론주제이다. 

지금 벌어지는 비정규직 투쟁의 의미를 확산하고 연대를 만들기

두 번째 토론주제는 지금 벌어지는 비정규직 투쟁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확산하고 연대를 만들어내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상황은 문자 하나로 해고되고 불법파견으로 인해 중간착취 당하고 최저임금에 시달리는 현실은 대다수 중소영세사업장의 현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륭전자의 투쟁은 전체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었다. 

KBS 계약직 노동자들의 투쟁도 그들만의 투쟁이 아니었다. 기간제법의 정규직화 조항을 피해가기 위해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에 저항하는 투쟁이었기에 기간제법에 의해서 고통당하는 우리 모두의 투쟁이었다. 

재능교육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단체협약을 인정하라며 투쟁함으로써 우리가 노동자라는 사실은 법으로서가 아니라 단결과 투쟁으로 증명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이미 불법파견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현실을 대변하고 변화시키고자 한다. 이런 각각의 의미가 살아날 때 연대도 확장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비정규직 투쟁도 그 의미를 사회적으로 확산하기보다는 조용하게 해결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확산되면 자본과 노동의 대리전이 되어버려 이기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용히 이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비정규직의 현실을 제대로 알리고, 이 투쟁이 단지 ‘우리만의 것’이 아닌 전체 불안정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것임을 이야기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호소함으로써 연대를 확장하고, 그렇게 연대하는 이들이 이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짜 이기는 길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함께 이야기해보자. 

기업의 전횡적 지배에 맞선 다양한 부문과의 연대

세 번째 토론주제는 기업의 전횡적 지배에 맞서는 연대를 만드는 방안이다. 

우리사회는 기업의 이윤이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기업에 대한 규제 장치가 없어지면서 기업의 이윤논리가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용역깡패를 투입하며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고 강정의 구럼비 바위를 빨리 깨도록 독촉하며, 개발논리를 앞세워 용산의 철거민들을 죽이기도 했다. 골목상권을 파괴하면서 중소영세상인들의 삶을 빼앗고 있기도 하다. 환경을 기업의 이윤과 맞바꾼다. 

예전에는 국가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지만 이제는 돈을 주고 집회를 사거나 명예훼손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곳이 바로 기업이다. 이처럼 기업의 전횡은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기업의 전횡에 맞서는 투쟁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싸움이 자본을 고립시키는 싸움이 될 수 있도록 광범위한 연대전선을 만들어야 하고 그 전선에서 불안정노동철폐운동은 매우 중요한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기업의 이윤논리에 의해 희생되고 단지 노동권만이 아니라 삶의 권리, 생활의 모든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불안정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기업의 전횡에 맞서는 다양한 이들과 연대하고, 그 전선에서 최선을 다해 앞에 설 때 기업을 제대로 포위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투쟁이 단지 불안정한 일자리를 안정적인 일자리로 바꾸는 것에만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불안정한 일자리를 양산하고 노동자들을 일회용품 취급하여 권리를 박탈함으로써만 자신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구성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안정노동철폐를 원하는 이들은 그러한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다양한 운동들과 만나야 할 것이다. 

불안정노동을 철폐하기 위한 저항의 네트워크를 구성하자

‘불안정노동을 없애기 위해서 어떻게 더 많은 이들이 권리의식을 갖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에게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노조를 중심으로 요구하고 투쟁하는 것을 넘어서는 사회적 투쟁의 기획도 필요하다.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 캠페인처럼 광범위하게 청소노동자들의 권리를 알리고 이것에 근거하여 다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전략이 있었다. 지금 민주노총에서 제안한 ‘비정규직 없는 일터 천만인 선언운동’도 불안정한 노동으로 고통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일깨워 ‘내가 권리의 주체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들고자 하는 기획이다. 

또한 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에서 제안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권리헌장 운동’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하는 이들이 누려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를 사회적으로 알려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기업의 이윤만을 위하는 사회이고 비정상적인 사회인지를 보여주면서, 노동권의 기준을 세우고자 하는 운동이다. 

이런 운동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조직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는 광범위한 연대체가 구성될 수도 있고,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단처럼 한 사업을 중심에 놓고 여러 단위가 만나는 사업단이 구성될 수도 있다. 

불안정노동문제를 고민하는 많은 이들이 ‘노동권’과 ‘단결의 권리’를 중심으로 만나서 함께 투쟁하고, 그 안에서 많은 이들이 자율적으로 사업을 만들어나가는 네트워크가 구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조직되어 있는 단위들을 뛰어넘어 이렇게 광범위한 이들이 만날 수 있을 때 불안정노동철폐의 날도 그리 먼 날만은 아닐 것이다. 

불안정노동철폐를 위해 헌신해오셨던 여러 분들, 그리고 불안정노동철폐를 바라는 많은 분들이 ‘불안정노동자 정치대회’의 자리에 모여서 함께 방안을 논의하고 새로운 저항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되기를 바란다.

(4) 대리주의를 넘어 정치의 주체로 (김선아)

삶의 양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불안정노동이 정치운동과 만나야 한다

지금 ‘정치’라는 것은 수많은 오해를 낳고 있다. 노동자 계급 정치,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노동자 정당을 만들고 노동자 국회의원을 제도 정치권으로 보내는 것이 노동자 정치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야기한 왜곡은 적지 않았다. 노동자의 요구가 제도정치권 내에서 왜곡되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정치’ 자체가 왜곡되고 협소해졌다. 그러나 정치는 삶의 문제이고 우리의 삶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지금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자본주의를 넘어 이후 우리의 삶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우리의 상을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를 변혁하는 노동자 정치의 첫걸음이다. 

불안정노동은 삶 전반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저임금은 생존 때문에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우리의 삶의 풍성함은 파괴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서 노동자들은 피폐해진다. 이렇게 우리의 삶의 권리를 박탈하는 불안정노동에 맞서기 위해서 우리가 요구하는 새로운 삶에 대해서 제시하고 그를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 이것은 때로는 제도개선 요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노동법 개정 투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우리의 삶의 양식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그를 위해서 우리의 노동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정노동자들의 정치 주체화가 중요한 것이다. 불안정노동자정치대회에서 ‘불안정노동철폐운동이 왜 정치운동과 만나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대리주의를 넘어 정치적 주체로 서야 한다

정권과 자본은 성장과 질서라는 말로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고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 사회적 권리의 배제는 노동현장 뿐 아니라 한국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배제와 포함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이며, 배제되지 않기 위해 타인을 밀어내고 자발적 복종과 침묵을 강요하는 것으로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위기를 전가시키고 있다. 1997년 이후 2012년까지 진행된 대중적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운동이 근원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할 시점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가 체제 그 너머로 나아가는 것을 차단하고 자유민주주의라는 법제도의 틀 안에서 정치적 소외구조를 재생산할 뿐이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애초에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는 착한 자본주의로 고쳐보자는 것이 아니었으며, 위기라는 레토릭의 반복은 자유민주주의를 재구성하자는 것이 아니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불안정노동자들 역시 그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대리해야 하는 것, 정당정치를 통해서 만들어진 법과 제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노동자 정치라는 것도 불안정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나서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정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 노동자들을 대상화해왔다. 좌파정치는 배제된 사람들의 삶과 투쟁의 현장에서 함께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을 ‘보호’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배제된 이들 스스로가 주장하고 말할 수 있도록 ‘함께하는 것’이다.

20120806151401_7614.jpg ▲ 파견노동철폐 등을 주장하는 김선아 진보신당 부대표와 김일웅 진보신당 서울시당 위원장 ⓒ뉴시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불안정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주체로 서야 한다. 정치인들에게 기대거나 혹은 정규직에게 기대거나, 혹은 상급단체의 힘에 기대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삶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힘을 합하고, 바로 그 힘을 통해서만 세상이 변화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이 변한다는 사실을 더 많은 불안정노동자들에게 알림을 통해서 큰 힘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기존의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조정하는 것에 맞서 싸워야 한다

불안정노동자들은 지배적 질서 속에서 삭제되었던 말과 행동을 통해, 기존 질서에 대항해 싸우는 것을 통해 비로소 정치적 주체로 설 수 있다. 노동하는 사람의 절반이 비정규 불안정노동자로 이루어진 현재, 자본이 강요하는 수직적 위계를 뭉뚱그린 채 노동중심을 말하는 정치는 현실에 눈감는 것일 뿐이다. 이는 정치를 체제 안에서 경제적 이해의 실현을 도모하는 분업화된 대리정치로 전락시키는 것과 곧바로 이어진다.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지금 사회에서 이것이 보편적인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이자 욕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의 사회에서 우리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이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다. 고용불안으로 인해 생존의 고통에 시달리고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하지 못하고, 경쟁 속에서 시달리는 지금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노동자들의 삶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의 지배질서는 이러한 불안정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삭제한다. 사회 전체를 뒤바꾸지 않는 이상 자신의 권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급진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는 불안정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순치시키고, 시혜의 대상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불안정노동자들의 정치는 지금이 얼마나 왜곡된 사회인지를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더 이상의 경쟁을 거부하고, 위계질서 속에 낮은 위계에 위치하기를 거부하고 삶의 불안정성이 마치 자신의 책임인 것처럼 내모는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불안정한 미래를 거부하고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과정이 바로 기존의 질서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투쟁과 정치의 분리를 뛰어넘어 의제를 급진화하고 일상에서 정치와 투쟁이 만나게 하자

지금껏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투쟁과 정치를 의도적으로 분리해 왔다. 현안 해결을 위한 투쟁의 집중은 투쟁의 수위를 정치적 파고를 만드는 것으로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방해했고, 내부의 노선 논쟁에 대한 회피는 비정규직 영역을 노동자 정치의 영역이 아닌 노사정합의의 영역 혹은 시민의 영역으로 내몰아 오기도 했다. 그리고 삶의 권리에 대하여는 제기할 기회조차 사실 얻지 못했다. 정치와 투쟁을 분리하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정치는 정치인의 몫이고, 투쟁은 투쟁하는 이들의 몫이라는 분리를 뛰어넘어야 한다. 정치는 그들의 몫이 아니라 투쟁하는 이들의 몫이라는 의지를 드러내고 정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 시작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왜곡되고 협소화된 ‘정치’의 개념에 갇힐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치의 주체임을, 나의 삶과 노동에 대하여 스스로가 주체임을 선언해야 한다. 불안정 노동의 철폐를 위한 투쟁의 주체로서 자신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발언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자신이 하고 있는 현재의 투쟁을 최대한 삶의 영역으로, 전체 노동자의 문제로 확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를 위해 우선, 의제의 보편화를 넘어서는 급진화가 필요하다. 사내하청 문제가 중요하니 이것을 전체 사내하청의 문제로 확대하자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문제를 만든 정몽구를, 정권을 끌어 내리는 운동으로 모아가야 한다. 정리해고자들이 복직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회사의 운영과 관련한 모든 것을 ‘경영권’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이 배타적으로 소유하면서도 온전히 책임은 노동자들에게만 떠넘기는 지금의 구조를 넘어설 것을 요구해야 한다. 투쟁하는 이들이 직접 정치적 요구를 시작해야 한다. 

비정규 문제가 제도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라는 인식을 형성하는 것을 뛰어넘어 자본주의에 대한 제기로 나아가는 급진적 의제화가 필요하다. 또한 일상에서 정치와 투쟁이 만나는 실험과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현장과 지역이 만나는 사례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노동복지센터와 같이 노동자를 시혜적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지역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사업이 아니라 오히려 지역 노동정치에 개입하기 위한 수단을 찾아내야 한다. 지역에서부터 삶과 정치가 부딪치는 매개를 찾아내고 이를 통해 정치를 실현하는 사례를 만들고 경험하는 것으로부터 뿌리깊은 정치와 투쟁의 분리 이데올로기는 극복될 것이다. 

마치며

불안정노동철폐는 단지 우리의 고용형태가 정규직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금도 많은 정규직들이 고용불안에 고통당하고 위계와 경쟁 속에서 피폐해지고 있다. 이런 삶을 지속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자본은 불안정한 노동을 만들지 않고는 도저히 유지될 수 없는 상태이다. 불안정노동은 망해가는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발악에 불과하다. 노동하는 이들을 내몰고 심하게 착취함으로써만 간신히 버티고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를 뛰어넘어 우리의 삶과 노동이 우리의 것이 되도록 만들자는 의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도 불안정노동자 자신의 몫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불안정노동철폐운동이 정치운동과 만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정치운동이란 우리는 표를 찍고, 누군가가 우리를 대리해주는 것이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투쟁이 확장됨으로써 스스로 그렇게 삶과 사회를 바꿀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치영역에서의 노력과 투쟁하는 현장에서의 노력이 하나로 만나, 진정한 정치를 실천하는 투쟁이 실현되도록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대리주의를 넘어, 정치와 투쟁의 분리를 넘어, 기존의 사회질서를 넘어 우리의 목소리가 발현될 수 있도록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불안정노동 철폐를 위한 정치대회에서 이 논의가 더욱 풍성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 김선아 진보신당 부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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