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현장은

고리1호기에도 밀양 송전탑에도 '여기 사람이 있다'

posted Nov 24, 2013
Extra Form
발행일 2012-08-3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밀양 송전탑 건설현장은 마치 총성 없는 전쟁터 같다. 덜컹거리는 고리1호기가 돌아가는 바닷가는 무섭도록 고요하다. 한전 계획대로 송전탑 건설이 완료되면 이곳 밀양도 인적없는 겉으로는 평화로운 마을이 될 것이다. 한전이 바라는 것이 그것인가.


핵발전소 폐기! 세상을 바꾸려면 반드시 만나야 한다 


무더위가 한풀 꺾인 8월 마지막 주말, 진보신당이 시동을 거는 탈핵연대버스에 올랐다. 고리1호기 앞 기자회견 후에 부산 해운대 앞에서 캠페인을 벌이고 <765송전탑 건설중단>을 요구하는 밀양 투쟁현장을 방문할 것이다. ‘진보신당연대버스’라고 반짝이는 전광판 버스를 타고 기장군 장안읍으로 달렸다. 

고리1호기 정문 앞에는 부산과 대구에서 온 당원들이 기다리고 있다. 부산시당 위원장님을 비롯해 화덕헌 해운대 구의원의 고리1호기 폐기 발언에 다들 머리를 끄덕였다. 정문을 굳게 걸어 잠근 고리원자력본부 앞에 경비들이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곳에 그런 핵발전소가 있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1.jpg ▲ 조용하고 평화로운 바닷가, 여기에 핵발전소가 있다. (사진: 진보신당)
2.jpg ▲ 5천만의 시한폭탄, 고리1호기 폐쇄하라! 납품비리와 커넥션으로 얼룩진 고리1호기, 이미 30년 수명기한을 넘겼음에도 8월초부터 재가동 중이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바닷가 주변을 걸으며 ‘고리1호기 폐쇄’라고 적힌 노란리본을 달았다. 고리1호기를 등지고 걷는 바닷가 주변은 따가운 햇볕과 달리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조용한 동네에 몇 개 있는 가게마저 문을 닫아 아무도 살지 않은 마을 같다. 대체 이곳에 사는 분들은 후쿠시마를 재앙을 떠올리게 만드는 고리1호기가 존재를 아실까. 벌써 35년째 가동하고 있어 항상 그곳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보일까. 마음이 무거웠다. 

서둘러 버스에 올라 부산의 중심 해운대로 향했다. 8월 말 해운대는 젊음으로 넘실댄다. 비키니 수영복으로 한껏 멋을 낸 여성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기 엄마,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8월의 해운대에 탈핵 시위대가 섰다. 사람들 출입이 잦은 샤워장 앞 공터에 방사능 폐기물통 주변을 검은 티셔츠와 노란 티셔츠로 둘러 핵을 상징했다. 여기 부산에서 고리까지 21.95km라는 눈에 띄는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몇 명은 고리1호기 폐쇄를 주장하는 피켓을 들고, 또 몇 명은 선전물과 서명 판을 들고 해운대를 찾은 시민의 눈길을 붙잡으려 애썼다. 

3.jpg ▲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고리1호기까지 21.95km.


시원한 바닷가에 몸을 던지려는 사람들과 노후 원전 고리1호기가 폭발하면 후쿠시마 꼴이 되니 폐기해야 한다는 탈핵 시위대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마침 금속노조 부산조합원들의 투쟁 캠페인 덕분에 분위기가 발랄해졌다. 부산의 젊은 청년당원이 대거 몰려와(?) 탈핵스타일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저녁식사 후에 예정된 탈핵콘서트를 위해 아주 간단한 준비활동에 다들 신나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탈핵스타일’

어쩌면 올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애인을 영접하듯 동작의 노영수 당원은 수영복과 구명조끼, 노란색 튜브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바닷물에 몸을 던졌고, 용산 이효성 사무국장도 덩달아 해운대 바다를 만끽했다. 바다가 있음에도 바라만 보는 아쉬움을 달래며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몰려오는 파도에 바지가 젖었지만 가슴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저녁은 김밥 두 줄. 약간 섭섭했으나 적은 회비로 운영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 

타고난 춤꾼 부산의 김진만 당원을 앞세운 탈핵스타일이 시작됐다. 진보신당이 낳은 래퍼 ‘윤원필’ 당원의 노래는 해운대 밤바다를 흔들고, 색소폰과 트럼펫, 드럼으로 구성된 밴드 ‘스카 웨이커스’의 공연이 밤하늘을 울렸다. 멈춰선 시민들이 탈핵콘서트와 하나가 되는 것 같다. 심재옥 부대표와 이선주 서울시당 공동위원은 끓어오르는 몸의 기운을 발산했다. 

그런 와중에 김현우 위원장과 김종회 당원, 이효성 사무국장은 선전물을 나눠주고 서명을 받고 있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부산 정승호 당원과 회포를 풀었다. 귀여운 아들을 안고 부인과 함께 나온 정승호 당원은 조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데, 노조활동을 열심히 하고 싶으나 변화를 만들기 쉽지 않다고 한다. 

4.jpg ▲ 방사능 위험을 알리는 설치물 주변에 널린 저것은... 바다로 풍덩 빠져들어간 사람들이 벗어놓은 허물들?
5.jpg ▲ "우린 탈핵스타일~! 고리1호 완전 폐쇄 Hey, 그래 폐쇄 Hey!"
6.jpg


해운대 밤바다를 떠나 송정 해수욕장 앞 민박으로 옮겼다. 시골 골목길을 연상케 하는 민박집 앞에서 맥주 한잔으로 부산 당원들이 준비하고 있는 뒤풀이를 기다렸다. 부산당원이 직접 마련한 홍합탕, 오징어 부추 부침개, 소고기 로스구이, 당원 텃밭에서 따온 상추와 깻잎, 과일까지 더 바랄게 없는 안주상에 진솔한 만남의 밤이 시작됐다. 긴긴 밤 잠들지 못하는 일군의 무리들이 송정 해수욕장 바닷가에서 뒤풀이 열기를 이어갔다.

일요일 아침 10시, 어제 765송전탑 공사를 막으려던 밀양주민과 문정선 민주통합당 시의원이 공사를 맡은 대동전기 관계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급보를 받고 서둘러 도착했다. 밀양시청 앞에 허윤영 경남도당 위원장과 김성훈 의정지원국장 등이 농성텐트를 지키고 있다. 텐트 앞엔 송전탑 중단투쟁에 함께 하겠다는 각 당의 현수막이 보인다. 서울, 부산, 대구, 경남당원들과 어제 폭행사태 현장으로 갔다.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공사현장
 
그늘진 곳 하나 없이 그 쨍쨍한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밀양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 자재 앞을 지키고 계셨다. 모두들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르신들이다. 전날 있었던 폭행사건으로 모두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 헬기를 통한 자재공급을 막으려는 밀양 주민과 문정선 여성 시의원이 대동전기 직원들한테 폭행당해 문 시의원은 병원에 입원해 있다. 대동전기 현장소장과 직원은 문의원의 목을 꺾고, 성추행을 저질렀다. 

7.jpg ▲ 밀양 송전탑 건설현장. 한전 측에서는 헬기로 자재를 실어나르고, 주민들은 그 자재들 앞을 나르지 못하도록 지키고 서 있다. 매일매일이 한전과 용역들과의 전쟁이다.


올해 초 이치우 어르신께서 분신하신 후, 송전탑 공사를 막으려던 보살님을 한전 직원들이 성폭행에 준하는 폭행을 저질렀는데 이번에도 같은 직원들이 폭행한 것이라니 기막혔다. 문 의원 몸을 발로 짓누르고 한 시간 이상 문의원에 배위에 걸터앉아 성추행을 저지른 대동전기 직원들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가. 힘없는 밀양 주민들이고, 여성이라고 이렇게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가.  

공사 관계자들은 재빨리 현장사무실 창문 블라인드를 내리고 몸을 피했다. 용케도 주민 눈에 발각돼 폭행을 저지른 현장 소장과 직원 얼굴을 똑똑히 봤다. 자신들이 저지른 성폭행, 성추행이 어떤 범죄인지 알기나 하는 걸까. 민주통합당 장영달 경남도당 위원장을 앞세워 거세게 항의했으나 ‘사과’를 받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밀양주민 곁을 지키고 있지 않는가. 몇 달에 한번 찾는 탈핵버스가 아니라 그분들 곁에서 함께 지키고 싸우지 못하는 우리가 부끄러웠다.  

밀양댐 건너편에도 대책위의 작은 텐트가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옆 공사자재 야적현장 출입을 막느라 철문을 굳게 잠그고 차로 막았다.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밀양 전역에 송전탑으로 도배를 하려는 것인가. 이런 송전탑 공사현장이 밀양에만 69군데나 된다고 하니 몸이 열 두 개도 아니고 어떻게 다 지킬 수 있을까. 대동전기의 폭행사태를 떠올리며 불안하지 않은가 여쭤보니 “여자들이 더 잘 지킨다. 다 여자들이 지키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신다. 한전은 “당신들은 전기 안 쓰나”며 마치 이곳 밀양주민을 위해 송전탑을 놓는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 신고리 5,6호 발전소의 전기는 수도권으로 공장으로 들어 갈 텐데 주민을 얼마나 우습게 알면 이런 거짓말을 할까 싶다.

9.jpg ▲ 어르신들이 송전탑 건설을 막아내고 있는 밀양. 진보신당 탈핵연대버스 승객들이 공사자재 야적현장으로 걸어올라가고 있다.
10.jpg ▲ 굳게 닫힌 철문 사이사이로 "765kV 절대안돼!" 리본을 달다.


충무김밥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곧바로 분신하신 이치우 어르신이 살던 보라마을로 옮겼다. 송전탑을 놓으려면 마을에서 충분히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농가 바로 옆 이치우 어르신 논 위로 송전탑을 놓는다고 한다. 그런데 도면엔 농가가 없고 직선처럼 보인다. 누군가 도면에서 농가를 지운 것이다. 직선으로 놓으려면 송전탑 4개 정도면 충분한데 누군가의 땅을 피하려 한 것인지 곡선으로 에둘러 가다보니 8개나 놓게 되고 그것도 농가 바로 옆 이치우 어르신 논을 지나가게 된 것이다. 고압 송전탑 때문에 건강 해치고 농사 망치고 평생 재산이나 다름없는 농토를 잃게 되는 억울함을 한전은 “당신들은 전기 안 쓰나” 한마디로 일축했고, 어르신이 분신하고 나서야 언론의 보도가 이어졌던 것이다.  

이치우 어르신이 돌아가신 자리에 노란색 자주색 국화꽃을 심었다. 땅을 지키고, 마을을 지키고자 한 이치우 어르신의 억울함을 풀어드리지 못해 죄송스럽다. 핵발전소 건설을 막아야 송전탑 건설도 막아낼 수 있지 않은가. 정답은 나와 있지만 아직까지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지 않다. 반값 등록금처럼 ‘핵발전소 폐기’와 ‘송전탑 건설 중단’을 공감하고 외칠 수 있는 날이 국화꽃처럼 활짝 피어나기를 빌어본다. 

11.jpg ▲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하여 돌아가신 자리, 노란색 자주색 국화꽃을 심었다.


밀양 송전탑 건설현장은 마치 총성 없는 전쟁터 같았다. 평화로워 하품나는 고리1호기 핵발전소와 대비되는 모습에 안타깝다. 한전 계획대로 송전탑 건설이 완료되면 이곳 밀양도 인적없는 겉으로는 평화로운 마을이 될 것이다. 한전이 바라는 것이 그것인가. 

탈핵이라는 거대 담론이 주는 부담감만큼이나 ‘탈핵의 현실화’는 간단치 않다. 핵발전 산업계에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이 많고, 이를 중심으로 한국사회가 운영되며 이미 한국인의 일상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핵발전소 폐기! 아직은 소수의 싸움이고 하얗게 머리가 센 어르신들이 앞장서고 있지만 대안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고자 한다면 반드시 마주쳐야 하고 만나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9월4일 중앙당에서 주최하는 탈핵 당원 강연회에 참석하자. 김익중 교수님의 빼어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다. 

[ 황혜원 (진보신당 서울시당 녹색위원장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laborkr@gmail.com

Articles

2 3 4 5 6 7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