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http://www.mediaus.co.kr/)에서 연재 중인 찐기춘의 당협위원장 라이프를 미디어스와 협의 하에 동시게재합니다 <편집자>



별다른 신념 없이 운동을 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운동exercise을 할 때는 꾸준하게 스스로 동기 부여해야만 작심삼일을 피할 수 있고, 체육 이론에 기반한 올바른 방법을 따라야만 부상 없이 신체능력의 발달을 도모할 수 있다. 운동movement에 있어서도 그렇다. 다치지 않고 오래오래 운동하려면 방법도 잘 알아야 하고 마음도 강하게 먹어야 한다. 그래서 위대한 운동권 선배들은 그렇게 학습을 강조했었나 보다. 사회주의 이론을 공부하고 토론도 하며 운동의 방향을 설정하고, 시기마다 정세를 판단하고 지난 시간 활동을 평가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운동권에는 있지 않던가.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이런 전통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 이미 운동권은 멸종위기에 처해 있었다. 학과 학생회는 운동과는 아무 관련 없이 행사 중심으로 운영된 지가 오래되었고 총학생회는 어용이었다. 3학년이 되어서야 운동권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신임 총장이 발표한 학과 구조조정안에 저항하려고 본관을 점거했을 때였다. 철야농성을 하다 보면 선배들끼리 잡담을 하는 중에 "요즘은 PD 애들도 책을 안 읽어" 같은 말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 말을 듣는 나는 PD도 뭐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게 뭔지도 몰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협 위원장을 하고 있는 지금도 종종 농담처럼 "김예찬 부위원장이 강남서초의 브레인을 맡고 있고, 저는 강남서초의 노브레인을 맡고 있습니다"라고 얘기한다. 물론 농담 아니다.


나 같은 당원이 나 하나는 아니기 때문에 당은 언제나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역대 당 지도부 중 당원 교육 강화를 목표에 포함하지 않은 지도부가 한 번도 없었을 정도다. 나도 이제는 좀 미성숙에서 탈피해서 주체적으로 살아 보자는 생각에 교육받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찾아가려고 한다. 당비 꼬박꼬박 내고 당권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당이 어느 곳을 향해 가려고 하는지 알지 못하면 어디 가서 ‘저 진성당원이에요’ 할 수 없어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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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가세입자 문제를 주제로 라떼킹에서 열린 당원모임 (사진=진기훈)


최근 한 달 사이 강연을 세 번 들었다. 첫 번째는 상가세입자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3월 강남서초 당원 모임을 하면서 서울시당 김상철 위원장을 초청해 당의 입장과 정책을 듣는 자리를 만들었다. 장소 또한 현재 투쟁 중인 라떼킹 강남역점으로 잡았다. 지금까지 연대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투쟁이 당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확인하고 상가세입자 문제가 왜 중요한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기획한 강연이었다. 이날 강연에서는 세입자들이 줄줄이 쫓겨나는 것이 부동산을 통하면 쉽게 재산을 불릴 수 있게 되어 있는 법 따위에서 기인하는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확인했다. 동시에 우리 당은 애시당초 건물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당이기 때문에(?) 문제의 핵심 쟁점인 점유권에 있어 적극적으로 세입자의 입장에서 싸울 수 있는 당이라는 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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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당 장애인평등교육에 참여한 당원들 (사진=백상진)


두 번째 강연은 서울시당에서 하는 장애인 평등 교육이었다. 당규 제6호 제13조(광역시도당의 위원장은 해당 광역시도 장애인위원회와 협의하여 연 1회 이상 당해 지역 소속의 당원을 대상으로 장애인평등교육을 실시해야 한다)에 따라 시당이 기획한 월례교육사업의 일환이었다. 장수마을(삼선4구역)과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는 배정학 당원이 강사를 맡아 주셨다. 주제는 장애인 평등이었지만 직접 차별 뿐 아니라 소수자에게 기회와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간접 차별 또한 문제라는 이야기는 기계적 평등으로 해결할 수 없는 모든 소수자 문제에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장애인 운동의 전개 과정 부분에서는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사고에서 촉발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의의와 현 상황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2015년 지금도 사회 일각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장애인들이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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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원되기' 행사에서 강연을 하는 노동당 강상구 대변인 (사진=백상진)


마지막으로 들은 강연의 제목은 '역사를 잊은 당원에게 미래는 없다'였다. 이 어마어마한 제목을 지은 것은 '비공식 전문 기획단 음기양조'다. 음기양조는 단 세 명의 당원으로 구성된 기획단으로, '당원-되기'라는 타이틀을 걸고 일련의 비공식 당원 교육을 진행해 왔다. 당에서 제공하는 교육이 미비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발적으로 기획단을 결성해 직접 강연을 만드는 음기양조는, 옆에서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때로는 미안한 마음까지 들기도 한다.


강사를 맡은 강상구 현 노동당 대변인은 훌륭했다. 본격적으로 진보정당 건설 운동이 시작된 90년대 중후반 이전에도 노동자 정당, 민중 정당을 건설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었음을 보여주면서 시작된 강연은, 2000년대 민주노동당의 부흥기와 이후의 쇠퇴까지 이어졌다. 여러 자료와 주요 사건을 비교 분석하면서 진행되는 강연을 계속 듣다 보니 현재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고 왜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원외정당이 된 직후 입당한 나에게는 원내정당 시절 기획했던 사업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들이 참고가 되기도 하고 자극도 되었다.


강연을 쫓아다니며 든 생각은 역시 운동권의 아름다운 전통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었다. 비단 의미 있는 당원이 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계속 운동을 해 나가기 위해서도 그렇다. 향후 어떤 방향으로 가더라도 그 길은 지금까지의 활동에 대한 평가 또는 반성 위에 놓인 길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길을 가야할지 확신할 수 없고 그렇지 않으면 길 위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났을 때 돌파할 수가 없다. 또 언젠가 헤매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많이 배우고 생각해야겠다. 또 어딘가의 강연에서 만납시다.



진기훈 / 노동당 강남서초당협 위원장

일명 '찐기춘'. 2011년 명동 마리 등 철거투쟁을 시작으로 진보정당 운동에 적극적 관심을 갖게 됐다. 통합진보당 창당으로 당시 진보신당이 둘로 쪼개지자 중앙당에서 상근을 했다. 2012년 총선 때는 진보신당 팟캐스트 '찐기춘의 개그펀치'라는 코너에 출연해 집회에서 부적절한 개그를 했다가 폭행당한 사연 등을 소개하며 남다른 감각을 과시했다. 이후 진보정당에 재정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당협위원장으로 진보정당운동 일선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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