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 별관 4층 금속노조 3회의실에서 조촐한 토론회가 열렸다. 한 해 가까이 지속되었던 진로 논쟁과 4.11 총선을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되돌아보고, 앞으로 진보정당에 여성주의가 스며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논하는 자리였다.

사회는 장혜옥 여성위원장, 발제자는 최혜영 경기도당 사무처장, 지정 토론자는 장주영 성정치위 운영위원, 이명희 경기도당 녹색위원장, 김현우 서울시당 강남서초당협위원장이었다. 발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1) 1년 전 무렵에 있었던 당 진로논쟁에 대한 평가 2) 4.11 총선에 대한 평가 3) 여성주의 정당을 위한 쇄신 방안이었다. 

당 진로논쟁에서 여성주의적 관점과 가치, 논쟁방법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하였는데, 지난 진로논쟁에서는 여성주의 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으로서 가져야 할 가치 자체와 실현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4.11 총선에서도 진보정당이 여성주의 의제를 끌고 가기 보다는 전형적인 여성성에 충실한 여성진보정치인의 이미지 소비와 새누리당의 다문화 의제 선점만이 있을 뿐이었다. 여성주의 정당을 위해서는 여성과 청년을 주요 주체로 삼아 노동정치를 재구성해야 하는데, 당내 쇄신방안으로는 1) 당 조직운영 쇄신 2) 남녀동수제 실행계획 즉각 착수 3) 여성발전기금 마련/의무화 4) 보수정치, 패권주의가 설 수 없는 여성주의적인 정당운영 문화 정착을 제시하였다.

20120625224455_5302.jpg ▲ 지난 20일 열린 새로운 진보좌파정당 건설을 위한 토론회 <진보의 씨즌 2, 어떤 진보냐구? 우리는 여성주의 진보정당을 원한다!>


장주영 "사고의 관점 바꿀 수 있는 경험과 교육 필요"


발제 이후 첫 토론자로서 토론을 시작하였다. 발제문을 읽고나서 발제문의 전반적인 취지에는 동의했으나, 발제문에서 제시한 전망과 방안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당 내에서 여성주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천, 기풍이 형성되어야만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발제문 자체에 대한 토론보다는 지금까지 당 내에서 여성주의가 받은 취급에 대한 경과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였다. 

여성주의가 당 내에서 스스로 이슈를 만들어 내고 주도하기 보다는 성폭력 뒤처리 전담반으로서 호출된 점, 지역으로 갈수록 당 내에서 여성주의적 가치를 공유하기 보다는 남성중심 문화에 젖어 있는 점, 여성위원회가 당 내 여성주의자들의 허브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한 점, 여성위 구성원들이 여성주의 사업보다는 당의 전반적인 정치일정에 중심을 두었던 점, 여성주의자들의 언어가 당적 권위를 갖지 못 하고 여성주의자 개개인의 주장으로 밖에 머무르지 못 했던 점을 다루었다. 

결국 여성주의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갖가지 제도와 장치뿐만 아니라, 사고의 관점을 바꿀 수 있는 경험과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 당의 성평등/여성주의 교육과 콘텐츠가 당 내외를 불문한 지역 활동가들이 열 일 제쳐두고 달려올 만한 수준과 역량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 뿐이다.)


이명희 "공동육아, 대안학교, 생협, .... 공동체운동 통해 여성이 주체될 수 있어"


두 번째 토론자인 이명희 경기도당 녹색위원장은 여성들이 지역에서 중심이 되어 꾸리고 있는 경제/문화/사회 공동체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 논하였다. 

투표하는 일 이외에 잠들어버리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삶 자체를 재구성하는 권력이 필요하고, 지금까지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남성을 매개로 해야만 여성들의 공적활동이 가능했다. 그러나 오히려 공적/사적 영역을 구분하지 않았던 여성의 입장에서 민주주의를 통해 작은 자립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국가 내 거대권력을 보이콧하는 공동육아, 대안학교, 생협, 마을만들기 등 공동체운동이었으므로 이를 통해 여성이 주체가 되고 구성원이 동등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데 무리가 없다고 하였다. 이렇게 생활세계를 여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사회로 이행할 방법을 찾아내는 게 여성주의 정당이라고 얘기하였다.


김현우 "아저씨 진보정당, 여성정치의 기치 걸고 사업 중심으로 에너지 모아내요"


세 번째 토론자인 김현우 서울시당 강남서초당협위원장은 녹색당이 과연 여성친화적인가 하는 질문으로 토론을 시작하였다. 현재 당은 ‘아저씨 진보정당’인데, 당 내에서 여성정치/여성주의에 대한 에너지가 부족한 상황이므로 여성정치의 기치를 내걸고, 사업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만나 이미지와 에너지를 모아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얘기하였다. 

발제자가 제시한 공동대표제의 경우 가사노동 성격의 일들이 여성대표에게 집중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있으나,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민주노총 여성 조합원이 7% 정도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남한의 여성경제인구는 50%를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노동자들의 노조 가입 비율이 낮은 이유가 무엇인지 풀어내야 할 필요를 제시하였다. 또한, 당 내에서 여성주의에 대해 공식으로 얘기할 방법으로 기관지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재창당에서는 여성주의적 지향과 청사진을 먼저 제시하여 끌어나가달라고 주문하였다.

이후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고 참석자 각자의 간략한 소개 후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의 발언을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20120625224253_9201.jpg ▲ 지난 20일 열린 토론회 <진보의 씨즌 2, 어떤 진보냐구? 우리는 여성주의 진보정당을 원한다!>


박선미(경기 고양) - 발제문만 가지고는 파악하기 어려운데, 진보신당 여성위의 여성주의는 자유주의 여성주의, 사회주의 여성주의, 마르크스 여성주의 중 어디에 해당하는가. 발제문의 여성주의와 이명희, 장주영이 말하는 여성주의가 만나는 부분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확인하고 드러낼 필요가 있다.

김윤희(서울 성동) - 정당은 역동적이고 활동적인 곳이므로 여성주의를 책 문구로부터 끄집어내기보다는 당 내 여성들의 활동으로부터 나온다고 봐야 할 거 같다. 진보정당 10년의 평가 토론회 때 나온 얘기들만 제대로 해도 여성주의 정당은 가능할 것이다.

김숙진(경남) - 아저씨 진보정당에 절대적으로 동의하고, 이렇게 여성주의 정당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 자체로 부럽다. 명랑운동회에 가족이라는 말이 들어갔으나 사실 여성과 생태가 중심이 되었다. 새로운 시도를 해볼 예정인데, 경남 지역은 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

심재옥(서울 구로) - 진보신당이 갖는 여성정치, 정책, 노동에 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려 했던 게 ‘돌봄노동’ 의제화였으나, 계속 유보가 되었다. 당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대응이 늦었고, 여성위의 개입 정도나 역할에 대해 정리된 바가 없었다. 여성주의에 대한 추상적 정의보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본다.

박육남(인천) - 여성주의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나 노동을 인간화 시키는 것이라고 본다.

양경규 - 노동중심정치에 대해 관심이 많아 여성주의적 노동정치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왔는데, 생물학적 여성주의가 강조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성주의가 관철되어가는 사업의 문제라고 보고, 당 내 공론화와 당의 여성주의가 사업과 어떻게 만나는지가 중요하다.

이 날 토론회는 앞으로의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그려나가기 위한 의견을 모으는 자리라기보다는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못 했던 여성주의 사업과 실천에 대한 토로가 이루어진 자리였다. 아무래도 여성위원회 구성원들이 활동가로서 창당 이후 지속된 성폭력 사건 뒤치다꺼리를 비롯하여 지방선거, 당 진로논쟁, 4.11 총선에서 중심역할을 맡다보니 계속해서 에너지를 소진하기만 했던 게 가장 큰 이유라 본다. 여성주의는 여성들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지금까지 불평등과 억압을 가능하게 했던 시스템을 이성애자/비장애 남성들이 인정하고 인지하여 바꿔나가야만 가능하다. 

[ 장주영 (대전시당 당원사업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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