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논평]
문재인 정부 정책평가 시리즈2. 성평등
‘혐오민국’은 성평등한 나라로 거듭날 수 있을까?
- 낙태죄 폐지와 차별금지법 제정은 성평등 사회 선결 과제
- 여남 구별 없는 육아휴직 의무화 없이는 여성의 이중부담만 강화할 뿐
촛불의 힘으로 열린 19대 대통령 선거는 문재인 후보의 당선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불과하다. 지난 3개월간 촛불 시민들은 “이게 나라냐?”는 구호를 들고 다양한 목소리로 거리에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나라를 나라답게”, “국민을 위한 나라”라는 슬로건으로 이에 화답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나라다운 나라, 국민을 위한 나라에 여성과 성소수자는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열린 TV 방송토론회에서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식의 동성애 혐오 발언을 하더니, 논란이 일자 “군대 내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뜻이었다고 해명성 발언을 했다. 이 해명성 발언으로 문 대통령은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지도 못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던 문재인 후보는 여성단체들의 낙태죄 폐지 공약 요구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앞세워 사실상 반대 뜻을 밝혔다. 이는 문 대통령의 ‘나라’와 ‘국민’에 여성과 성소수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역대 정부에 비해 진일보한 정책이나 정책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젠더폭력방지기본법’ 제정 등 젠더 폭력에 대한 공약, ‘성평등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설치해 성주류화 전략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공약은 성평등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조현옥 씨를 청와대 인사수석으로 임명했다. 이는 후보 시절 이야기한 남녀동수내각을 위한 의지로 읽힌다. 그러나 핵심 정책에서의 뚜렷한 한계는 부분적인 진보성을 잠식하고도 남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육아휴직 의무화를 공약하지 않았다. 육아휴직 의무화 조치 없는 육아휴직 제도 강화는 일과 가정에 대한 여성의 이중부담만 강화할 뿐 젠더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할 우려가 크다. 문재인 후보가 공약한 ‘자동 육아휴직제도’는 출산휴가 이후 별도의 신청 없이 자동으로 육아휴직에 들어가게 하겠다는 제도다. 하지만 현재 5~9인 규모 사업체에서의 출산휴가 사용률은 55.1%, 배우자 출산휴가 사용률은 34.1%에 불과하다. 이를 감안하면 그 효과는 대단히 제한적이며 기존의 젠더 불평등과 젠더 내부의 계층 불평등을 그대로 재생산하게 될 것이다.
남성이 육아휴직 사용 시 6개월간 육아휴직급여를 두 배 인상하는 ‘아빠육아휴직보너스제’ 공약은 전체 육아휴직 사용자 중 남성 비율이 5.6%에 불과한 현실을 고려하면 너무 순진한 접근이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접근에는 여성의 돌봄 전담을 원칙으로 하고 남성에게는 돌봄이 의무가 아닌 ‘하면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는 성차별적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여성과 남성을 가리지 않는 육아휴직 의무화는 최소한의 조치다. 또한, 보편적 양육자 모델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남성 정규직 전일제-여성 비정규직 시간제로 나뉘는 성별분업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여기에서도 한계가 뚜렷하다.
여성과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을 위한 선결 과제로 낙태죄 폐지와 차별금지법 제정은 오랫동안 여성계의 숙원이었다.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 바라보고 저출산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국가주의적 관점을 바로잡지 않고는 일과 가정에 대한 여성의 이중부담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이를 법제화하는 것에는 반대하고 혼인 및 가족구성권에 대해서는 차별하겠다고 말한다면 앞뒤가 안 맞는 주장에 불과하다. 성평등한 나라는 대통령의 페미니스트 선언이나 그럴듯한 정책 문구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3일째인 지난 12일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출산이나 휴직·결혼 등 납득할 만한 사유가 있으면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출산과 결혼이 비정규직 사용에 납득할 만한 사유인가? 결혼과 임신, 출산 때문에 경력단절 경험이 있는 기혼 여성취업자의 46.7%는 앞으로도 비정규직으로 사용하라는 말인가? 결혼하면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임신하면 퇴사를 강요하는 성차별적 기업의 만행을 국가가 앞장서서 공인하겠다는 것인가?
강남역 1주기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DAHO)을 맞는 2017년 5월 17일, 우리는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회에 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을 위한 나라’에 여성과 성소수자도 포함되어 있다면 공허한 선언을 넘어 낙태죄 폐지와 차별금지법 제정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권유지를 위한 표 계산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 아닌가? 우리는 성평등한 나라를 원한다.
2017. 5. 17
노동당 정책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