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비례성 강화 개헌한다면서 뭐 하는 짓인가
- 기초의회 4인 선거구 좌절과 정부 여당의 위선
기초의회 4인 선거구의 씨가 마르고 있다. 지방의회 선거제도에서 4인 선거구는 소수정당이 지방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통로라는 점에서 가히 소수정당 말살에 다름 아니다. 비례대표제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주도해왔던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과 한통속이 되어 이 같은 폭거를 자행하는 현실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전국 기초지자체 선거구 획정 결과는 참담하다. 지난해 11월 서울시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내놓은 안은 4인 선거구를 35곳으로 잡았으나 양대 거대정당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반대 속에 7곳으로 축소된 안이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부산시의회는 오늘 16일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제시한 7곳의 4인 선거구를 모두 없애 2인 선거구로 쪼갠 최종안을 본회의 통과시켰다.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인 경기도의회도 획정위가 정한 2개의 4인 선거구를 없애고 2인 선거구만 늘린 안을 통과시켰다. 인천, 경남, 전주 등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자유한국당이야 소선거구제 중심의 국회의원 및 광역의회 선거제도의 핵심 수혜자이자 일관된 옹호자였다는 점에서 언행일치의 측면이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제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주도해 온 정당이 아닌가. 대통령 산하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최근 대통령에게 제출한 개헌 자문안에 선거제도의 ‘비례성 강화’가 포함된 사실에 비춰서도 정부여당은 자유한국당보다 더한 비난을 받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의회, 경기도의회 등 다수 의석을 차지한 지방의회에서조차 노골적으로, 때로는 이심전심으로 자유한국당과 협력해 4인 선거구 말살에 나선 사실은 지방자치의 역사에서 수치스러운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광역지방의회와 기초지방의회 모두 비례대표는 전체 의원정수의 10% 이내로 정해져 있어 거대정당이 싹쓸이해왔다. 광역의회 지역구는 1인 선거구로 되어 있어 이 역시 거대정당이 독식해왔다. 기초의회 지역구만 2∼4인 중대선거구제로 되어 있지만 그나마 2인 선거구가 압도적으로 많아 역시 거대정당의 놀이터였다. 지역 공동체 형성과 풀뿌리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분투해온 소수정당 후보에 찍은 거의 대부분의 표가 사표가 되는 현행 지방자치 선거제도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도 내에서, 기초의회 4인 선거구 확대는 사표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불평등 선거를 개선할 거의 유일한 방안이었다. 눈앞의 지지율 고공행진에 취해 이조차 거부한 더불어민주당이 앞으로 어떤 논리와 염치로 비례대표제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주도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4인 선거구 말살은 개혁 지체와 좌절의 이유를 자유한국당 탓으로 돌려온 민주당의 수십 년 버릇에 대해서도 새삼 감회에 젖게 한다.
6월 지방선거 실시 3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의 개악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유권자들이 소수정당의 사표를 훔쳐 배를 불려온 자유한국당의 일관된 도둑놈 심보와, 말과 실천을 달리하면서 유권자를 호도해온 더불어민주당의 일관된 위선을 심판해주길 바랄 뿐이다.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지방선거의 선거제도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것만이 근본적 해결책이다. 광역의회는 지역구를 없애고 모든 의원을 정당득표율에 따라 선출하는 전면 비례대표제로 전환해야 한다. 기초의회는 2인 선거구를 없애고 모든 선거구를 3∼5인 선거구로 바꿔야 한다. 이런 수준의 개혁 없이는 지방의회는 도둑놈 정당, 위선 정당의 독무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018년 3월 16일
노동당 정책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