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도긴개긴, 오십보백보는 이럴 때 쓰는 말
- 헌재 위헌 결정 취지 위배하는 정당법 개정안 규탄한다
25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회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헌정특위) 정치개혁소위원회는 지난 15일 회의에서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 선거에 두 번 참여해 두 번 모두 의석을 얻지 못하거나 100분의 1 이상의 유효 득표를 하지 못한 경우 정당등록을 취소한다”는 내용의 정당법 개정에 합의했다고 한다.
이번 법 개정은 지난 2014년 1월 헌법재판소가 현행 정당법 제44조 제1항 제3호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하여 의석을 얻지 못하고 유효투표총수의 100분의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한 때” 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등록을 취소한다는 규정이 위헌이라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2012년 4.11 총선에서 노동당의 전신인 진보신당(1.13%)과 녹색당(0.48%), 청년당(0.34%)은 의석을 얻지 못하고 유효총투표수의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해 다음날 자동으로 등록 취소됐다. 이에 진보신당 등은 2012년 5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며, 헌재는 그 주장을 받아들여 2014년 1월 28일 기존 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정당법 제44조 제1항 제3호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며 “정당등록 취소조항은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될 수 있지만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청구인들의 정당설립의 자유를 침해한다”라고 판시했다.
그런데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나 정당설립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위헌 결정된 조항의 개정안이 국회의원 선거에 “한 번 참여해”를 “두 번 참여해”로 바꾸고, “100분의 2 이하의 유효 득표를 하지 못하면”을 “100분의 1 이상의 유효 득표를 하지 못하면”으로 “완화”한 개정안이란다.
헌정특위 위원들에게 묻고 싶다. 기회를 2배로 늘리고, 커트라인은 반으로 낮추면 ‘침해의 최소성’이 해결되는가? 2% 이상으로 제한하면 위헌이니 선심 써서 1% 이상으로 낮추면 위헌이 아닌가? 그럴 거면 이왕 쓰는 선심, 0.5%는 왜 안 되고 0.1%는 왜 안 되는가?
대한민국 헌법 제8조 제1항은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라고 규정하여, 국민 누구나가 원칙적으로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정당을 설립할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헌재는 위헌 결정을 통해 “그러므로 정당설립의 자유를 제한하는 입법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하고 불가피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그 제한이 정당화될 수 있으며, 그 경우에도 정당설립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헌재에서 지적했듯이 “현행 정치자금법은 정당의 국회의원 의석수 또는 국회의원선거 등에서의 득표수 비율을 기준으로 정당에 지급되는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을 차등지급하도록 규정하여 국회의원선거 등에서 일정 수준의 정치적 지지를 얻지 못한 정당에 대한 국고 지원을 배제하는 등”, 정당등록 취소조항이 없다 하더라도 원외 정당, 소수 정당을 “자연스럽게 배제할 수 있는 장치들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선거에서 의석 확보 여부나 득표율은 정당에 대한 국고 지원 등을 허용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 정당의 존립 자체를 결정하는 요소로 기능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한마디로 이번 정당법 개정안은 헌재의 위헌 결정에 부합하지 않는 도긴개긴, 오십보백보 위헌 취지 수정안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왕정이나 귀족정과 다른 점은 정치에 참여하는 데 있어 아무런 자격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
헌재에서 위헌 결정이 난 정당법 제44조 제1항 제3호는 개정이 아니라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만약 국회에서 정당법 개정안을 이대로 통과시킨다면, 노동당은 또다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것이다. 또한, 차제에 현행 정당설립 요건 규정을 모두 폐지하고 정당 등록만 하면 정당으로 인정되도록 정당법을 개정해야 함을 밝힌다.
(2018.3.26. 월, 평등 생태 평화를 지향하는 노동당 대변인 류증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