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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비극에 맞서

파리 ‘테러’에 대한 하나의 입장



11월 13일 파리에서 프랑스 최악의 테러 참사가 일어났다. 이슬람국가(ISIS) 무장 세력은 비무장 민간인에 대해 무차별 소총 사격과 자살 폭탄 공격을 가하였고, 이로 인해 최소한 129명이 숨졌다. 부상자도 200명이 넘으며,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로 프랑스 시민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고, 희생자에 대한 애도가 커다란 물결을 이루고 있다.


이슬람국가는 이 공격이 자신들이 벌인 일이며, 앞으로도 프랑스에 대해 더 공격을 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 맞서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는 이 공격을 “전쟁 행위”라고 지칭하고, 프랑스는 이에 대해 “무자비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 것이고 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카산드라의 예언을 보는 것 같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했던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말을 떠올리면, 이번 공격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류는 절멸의 공포 속에서도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버린 적이 없고, 학살의 절망 속에서도 사유의 작동을 멈춘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선 올랑드 대통령이 이번 공격을 “전쟁 행위”라고 말한 것은, 그로서는 대응 공격의 의지를 강하게 표현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달리 보아도 적절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번 공격을 테러라고 보기보다는 전쟁이라고 보는 게 사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근대 들어 테러 행위는 한 번의 위치 바꿈을 경험한다. 원래 테러는 지배 권력이 (정치적) 반대파를 억압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프랑스대혁명기 자코뱅의 통치를 ‘테러 독재’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이런 테러가 특히 20세기 들어 정치적 약자 혹은 소수자의 ‘의사 표현’(?) 방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테러는 오늘날과 같은 의미를 획득했다. 물론 양쪽 모두 정상적인 의미에서 초법적 혹은 불법적이라는 위상은 똑같다. 이를 자코뱅은 ‘혁명적 합법성’이라는 말로 설명했고, 20세기의 테러리스트는 ‘대의’나 ‘역사’라는 말로 자신을 정당화하려 했을 뿐이다. 따라서 오늘날 테러라는 말은 기성 질서가 자신을 옹호할 때 가장 좋은 무기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전쟁은 언제나 문명과 함께 해 왔다. 우리는 전쟁 속에서 드러나는 ‘야만적 행위’에 속아서는 안 된다. 어쨌든 유럽에서 1648년 이후 전쟁은 국가의 정당한 업무에 속하며,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쟁 수행의 정당한 방식을 정하는 제네바 협정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를 말해준다. 올랑드가 “전쟁 행위”라는 말을 했을 때 그는 무심코 이슬람국가를 하나의 국가로 인정한 셈이다.


우리가 여기서 문제삼아야 하는 것은 그 국가가 ‘정상 국가’인가 아닌가이다. 그런데 그 기준은 무엇인가? 아마 여기서 사람들마다 다른 의견이 나올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최소 기준’을 내세울 것이다. 아우슈비츠 이후를 살아가는, 그만큼 커다란 고통과 희생을 겪고 살아남은 인류가 내세울 수 있는 ‘최소 기준’은 인류와 개별 인간의 존엄성이다. 이를 짓밟는 것은 그 어떤 화려한 무화과 잎사귀로 가려 있다 하더라도 다 껍데기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슬람국가의 공격에 분노하고, 그 희생자에게 연민을 느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전쟁이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교전 수칙을 지키고, 정당한 목적을 위해 수행한다는 ‘정당한 전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가? 우리는 전쟁이 일시적인 해결 말고 갈등을 종식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대개 전쟁은 소수의 이익을 위한 것이거나 소수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최소 기준’으로 돌아온다. 전쟁이 아무리 문명과 함께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류와 개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거나 충족시켰는가? 어떤 시점에서,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우리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까지의 문명에 대해 ‘불만’이 있다. 또한 올랑드의 “무자비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말 속에서 또 다른 비극의 전조를 본다.


이런 비극에 맞서는 우리의 태도를 정하는 ‘최저 기준’은 당연히 보편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인류와 개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말 속에 이미 들어 있기도 하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이슬람국가에 대한 분노도,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파리의 희생자들만이 아니라 파리 공격 하루 전에 있었던 베이루트 교외 지역에 대한 공격의 희생자들에게도 똑같이 연민을 느낀다. 그것은 참사가 연대를 요구하기 때문이며, 이는 모든 희생자를 향한 것이다.



2015년 11월 16일

노동당 대변인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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