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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가 2008년 벽두에 입시자율화 방안을 발표하고 정부조직 개편한다고 할 때, 작성한 겁니다.

<레디앙>에 실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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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자율화는 승차거부의 자유

- 인수위의 교육부 개편에 부쳐 -

 

송경원(교육), 080119

 

 

‘저기’로 가기 위해서는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 마을버스를 타고 가다가 지하철로 갈아탄다. 그런데 마을버스는 웬만한 결격사유만 없으면 탈 수 있는데, 지하철은 어지간히 까다롭다. 이것저것 따지는게 많다. 그래서 지하철을 탈 때는 신경이 곤두서고 가슴도 두근거리고 잠도 덜 잔다.

재밌는 것은 내릴 때다. 마을버스나 지하철이나 모두 ‘저기’로 갈 수 있다. 물론 걸어서도 갈 수 있다. 하지만 마을버스만 탔느냐, 지하철도 이용했느냐에 따라 누구는 찬밥신세가 되고 누군 사람이 된다. 뿐만 아니라 똑같은 지하철인데도 서울 2호선이냐 아니냐에 따라 누군 사람으로만 인정받고 누군 꽃가마를 탄다. 간혹 걸어서 가겠다는 경우도 있는데, 그럼 “나가 죽어라”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니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서울 2호선을 타려고 한다. 하지만 2호선 지하철은 따지는게 많다. 그래서 타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는 아이들이 넘쳐난다. 당연히 꽤 비싼 암표도 상당하다.

그래도 그동안에는 ‘어떤 마을버스를 탔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마을버스도 중요해진다. 지금까지 지하철, 특히 서울 2호선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승차거부를 해왔는데, 앞으로는 승차거부의 사유도 ‘자기 마음대로’ 한단다. 그러면서 지하철 갈아타기 전의 마을버스에 등급을 매기는 등 ‘마음대로 승차거부’의 여러 방안이 흘러나온다.

이쯤 되면 “승차거부 웬 말이냐”를 기본으로 하면서 “2호선 폐쇄하라”부터 “2호선 늘리고 개방해라”까지의 말들이 나올만 한데, 상황은 반대다. 그동안의 승차거부나 앞으로의 ‘지 마음대로 승차거부’에 대해 대체로 ‘그럴 수 있지’나 ‘공정하기만 하다면야’라는 반응을 보인다. 어떤 이는 핏대를 세워가며 ‘지 마음대로 승차거부’를 ‘자율’의 이름으로 옹호하기까지 한다.

 

교육을 교육이라 부르지 못하고

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안이 발표되었다. 처음엔 교육부는 ‘인재과학부’로 이름이 바꾸겠다고 했다. 교육계에서는 말들이 많다. 교육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경우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며, 이명박 정부가 교육을 포기한 것이라고 항의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인재과학부’도 맞는 말이다. 서열화된 지하철은 그대로 둔 채 마을버스마저 300개 일류 위주로 운용한다고 했으니, 이명박 정부의 주요 관심사는 서울 지하철 2호선과 자사고 마을버스다. 기조가 엘리트 양성이니, 인재과학부는 그에 걸맞는 명칭이다. 교육?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나 기조 앞에서 교육부를 뭐라고 불렀든 교육은 이미 없다.

따라서 일부 교육계의 주장처럼 설령 명칭만 인재과학부에서 교육과학부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그 속은 인재과학부나 엘리트양성부요, 부자 우대부나 사교육대박부다.

 

자율과 권한 이양의 뒷면

교육부 개편의 요점은 대학과 교육청으로의 권한 이양이다. 대학과 교육청 입장에서 보면 자율이다. 권한이양과 자율이라, 이거 좋다. 하지만 누구까지의 자율인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권한이양과 자율의 핵심은 인사와 재정이다. 인사권과 재정운용권이 넘어가야 한다. 지금 대학과 교육청에는 재정운용권이 어느 정도 이양된 상태다. 그래서 대학은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다. ‘대학당국과 운영자만’ 등록금을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딱 거기까지다. 학생이 반대해도 대학당국은 이양받은 등록금 자율 책정의 권한을 행사하여 등록금을 올린다. 학생과 학부모가 돈 걱정의 나날을 보내도, 닥치는대로 알바했지만 돈을 마련할 수 없어도, 돈 때문에 휴학해도 아랑곳없이 등록금을 올린다. 이게 등록금 자율화의 결과다. 정확하게는 대학당국과 운영자까지만 등록금 책정권을 이양한 결과다.

권한이양과 자율은 약자까지 가야 한다. 아니면 약자에게 주고, 강자는 규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강자의 얼굴만 달라질 뿐, 약자가 힘든 것은 매 한가지다.

이번에 인수위가 권한을 이양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인사권이다. 대학이 자기 마음대로 학생을 뽑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약자인 학생에게 인사권을 주는 게 아니다. 강자인 대학에 인사권을 주는거다. 소위 ‘학생선발의 대학 자율’인데, 이거 그럴 듯 해보일 뿐이다.

 

학생선발은 학교선택을 침해

신자유주의의 시대이니 만큼,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따라 이야기하겠다. 교육의 주체는 학생, 학부모, 교사(교수), 학교(정부)인데,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소비자이고, 교사(교수)와 학교(정부)는 교육공급자다. 교육소비자와 교육공급자는 교육시장에서 각축을 벌인다. 그런데 가만히 두면, 교육시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교육’의 특성상 교육공급자는 자신의 교육상품에 대해 다 알지만, 교육소비자는 실제 경험하기 전까지 교육상품을 거의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의 불균형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공급자는 자신의 정보를 시장에 충분히 공시하거나 제3자(주로 정부)가 공시를 강제해야 한다. 뭐, 그래도 소비자가 속는 것은 크게 개선되지 않지만.

교육정보의 공개 이후에는 교육소비자가 물건을 꼼꼼히 따지면서 돈에 맞게 ‘합리적으로’ 교육상품을 선택하고 산다. 물론 교육을 필수로 생각하기 때문에, 교육의 수요는 교육상품의 가격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대학 등록금이 비싸든 싸든 간에, 졸업장의 가치가 크든 적든 간에 일단 대학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교육시장에서 교육소비자는 교육공급자의 상술 앞에서 ‘울며 겨자먹기’식 소비를 할 수 밖에 없는 등 꽤 부담스럽다.

그건 그렇다 치고, 교육시장의 최우선 가치는 교육소비자의 선택이다. ‘소비자 중심 교육’이나 ‘수요자 중심 교육’이어야 한다.

그런데 소비자중심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공급자의 ‘소비자 고르기’가 규제되어야 한다. 공급자의 소비자 고르기, 즉 학교의 학생 선발이 허용되면,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이 침해받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최상위 서열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성균관대가 학생을 선발하면, 성대를 선택하고자 하는 여러 학생 중에서 누군가를 잘라야 한다. 누군가에게 ‘승차거부’를 통보해야 한다. 그 누군가는 자신의 선택권을 침해받는다. 곧 학교의 학생 선발은 합격자 고르기가 아니라 탈락자 고르기이고 탈락자의 학교선택권 침해다. 이 때 학교는 강자이고, 학생은 약자가 된다.

따라서 ‘소비자중심 교육’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면, 마땅히 공급자의 소비자 고르기에 대해서는 ‘규제’라는 답을 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소비자중심 교육과 학교의 학생선발권 모두를 지고지순한 가치인양 이야기한다. 학생의 선택권과 학교의 선발권이 양립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물론 현실에서는 양립할 수 있다. 한국의 유아교육이나 대학교육에서는 이미 양립하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바로 옆의 저 유치원에 아이 보내고 싶은데, 거부당했다”나 “저 대학에 가고 싶은데, 안된데”이다. 또는 “이 유치원은 좋기는 한데, 돈 없으면 보낼 수 없다는군”이나 “이 일류대는 비싼 사교육 안받으면 갈 수 없나봐”이다. 이걸 학생의 학교선택권이라고 불러야 할까.

신자유주의 교육이 아니라 일반적인 교육논리로 이야기하면 어떻게 될까. 간단하다. 교육은 권리다. 학생의 학습권이 최우선 가치다. 교사, 학교(정부), 학부모의 권리는 학생의 학습권을 실현하기 위해 공히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노력의 형태는 ‘보장’이다. 권리는 립써비스 하라고 있는게 아니라 보장하라고 있는 거다. 대학교육을 권리라고 본다면, 대학교육을 보장해야 한다. 교사, 학교(정부), 학부모가 보장해야 한다. 이걸 ‘학습자중심 교육’이라고 한다. 또는 교육공공성이라고도 한다.

 

미국과 유럽의 차이

미국과 유럽은 여러모로 다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유럽의 교육은 다르다. 우리의 주요 관심인 대학입시만 놓고 보면, 통상 미국(영국과 일본까지)은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고, 학생선발도 대학자율이다. 하지만 유럽은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지도 않고, 대학의 학생선발도 제한되어 있다. 고교졸업자격이나 대학입학자격 등 최소한의 자격요건만 충족하면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

이 차이는 신자유주의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니다. 학교의 학생선발을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이다. 학교의 학생선발이 학생의 권리를 침해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다르다. 미국은 학생선발이 학생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보는 반면, 유럽은 학생의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본다. 그래서 유럽은 고교졸업이나 대학입학의 최소한의 자격만 볼 뿐, 개별 대학의 학생선발은 극히 제한적으로만 허용한다. 한국식 표현으로는 ‘평준화’되어 있다.

 

승차거부를 인정할 것인가

서울지하철 2호선에는 서울대, 연대, 서강대, 이대, 성균관대 등 상위권 대학들이 포진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높디높은 진입장벽을 세워놓고 ‘선발’이라는 이름으로 승차거부를 해왔다. 앞으로는 승차거부의 사유를 자기 마음대로 정한단다. 승차거부 앞에서 그동안 정식 지하철 승차권은 무용지물이었다. ‘나만’ 승차할 수 있는 암표가 해결책이었다. 이젠 사교육 암표의 가격이 대학들이 정한 승차거부의 사유에 따라 널뛰는 일만 남았다.

학생선발의 방식이나 공정성은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선발 그 자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학생선발이 만약 교육소비자의 학교선택권이나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면 학생선발권은 ‘규제’되어야 한다. 지하철 2호선의 승차거부가 부당하다면, 2호선을 폐쇄하던가, 2호선을 최대한 넓혀서 개방하던가, 다른 지하철도 2호선으로 만들던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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