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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에는 몇 개의 위원회가 있을까. 아마 저마다 떠오르는 위원회들이 있을게다. 나 역시 몇몇 이름을 떠올리다가 이참에 당 홈페이지에서 찾아보기로 마음 먹고 메뉴를 눌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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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체에 처음으로 싣는(그래서 조금 떨리는!) 글의 서두에 뜬금없이 위원회 얘기를 꺼낸 건, 최근 비공식적으로 위원회임을 ‘자처’하는 어느 모임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2014년 10월 17일 현재 성인 회원수 18명. ‘남녀노소’ 단 4글자로 요약할 수 있는 간결한 멤버구성. 누구나 처음 만나더라도 10시간쯤 수다를 떨 수 있는 동질감과 애잔함(?)으로 똘똘 뭉친 이 모임의 중심엔, ‘아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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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참 많다...]


이쯤 되면 다들 눈치를 챘겠지만, “육아위원회”는 아기를 키우고 있는 노동당 엄마, 아빠들 몇몇이 모여 만든 소모임이다. 올 봄, 가까이 사는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고충과 안부를 묻다가 자연스레 페이스북 그룹에 둥지를 꾸렸고, 저마다 지인을 불러들이면서 모임의 윤곽이 잡혀졌다. 사람들이 모이고 틀이 잡히자 ‘꼬마사람인권옹알이’라든지, ‘엄빠당(엄마아빠당)’같은 이름들이 물망에 올랐고, 농담처럼 육아‘위원회’로 정착하게 됐다. (개인적으론 ‘육아’와 ‘가사’ 노동이 허드렛일 취급당하는 사회에 대한 일침으로 ‘위원회’라는 호칭을 더 강조하고 싶다.) 모임의 나이로 치자면 ‘육아위원회’는 그야말로 갓 태어난 아기와도 같다. 육아에 대해 얘기하고 공감하며 함께 고민하는 정도로 이제 막 발걸음을 떼었으니까. 농담 반, 진담 반처럼 ‘위원회’를 내건 이 모임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니 무엇을 꼭 해야만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모두 좀 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고민하고, 육아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육아위원회는 지금까지 4번의 오프 모임을 가졌다. 모임엔 당원이 많지만 비당원도 있고, 생협이나 민중의 집 같은 단체에서 주관하는 외부 육아 관련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 중, 유모차를 끌고 세월호 단식농성장을 찾아 단식 중인 이용길 대표를 격려하고 최연소 농성장 방문 기록을 갈아 치웠다든지, 광엘모(광화문역 엘리베이터 설치 시민모임) 기자회견에 참석해 한 목소리를 낸 일은 제법 묵직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앞으로 모임의 주 목적과 활동은 최근에 만든 자운고 연고같이 아기들을 위한 천연 제품 만들기, 육아용품·옷·장난감·육아 노하우·고민 등을 나누는 활동에 좀더 방점이 찍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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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엘모 기자회견에서 연대발언을 한 육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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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가려운 피부에 좋다는 천연 자운고 연고를 함께 만들었다]



10월 9일 한글날에는 가장 많은 회원들이 모였다. 그동안 아기와 엄마들만 모였던 것에서 나아가 아빠들도 함께 모이자는 얘기들이 나왔다. 주로 수도권 서쪽에 사는 회원들이 많아 경기 동부(?)지역에 사는데다 평일에 출근하는 나는 오프 모임에 참석하는 건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는데, ‘추운 겨울 되기 전에 한 번 다 모여보자!’는 의지와 엄마들의 작당(?)에 모임은 일사천리로 추진되었다. 장소는 서촌에 위치한 혁이네. 엄마들은 영화 「지미스 홀」을 보고, 아기와 아빠들은 그동안 단란한 시간을 갖기로 했다. 맙소사, 이렇게 멋진 꿍꿍이라니...! 

아기다리고기다리던 그날이 왔다. 요새 그렇게 '핫' 하다는, 그리하여 걱정과 염려가 들 수밖에 없는 서촌을 향해 집을 나선 우리 부부는 흡사 실크로드 대장정을 떠나는 사람들의 심정이 되었다. 멀더라도 단순한 경로가 아닌, 여러 개의 교통수단을 번갈아 타는 코스를 유모차와 아기짐을 짊어진 채 통과해야한다. (그리고 똑같은 길을 다시 돌아와야 한다.) 아기 짐은 왜 늘 필요한 짐만 넣어도 여행 짐이 되고 마는걸까. 그 많은 짐을 싸고 이동하는 동안 대개 아기를 둔 부모는 약속 시간에 늦곤 한다. 약속 시간에 맞추려면 홀몸이 준비하는 것보다 2배는 더 서둘러야 함에도 늘 변수가 생기고 움직임이 더뎌지는 것이다.

집에서 나온 지 두 시간여가 흐른 뒤에서야 우리는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양주 오남리에서 경복궁 인근에 위치한 서촌까지 오는 동안 나의 모든 관심은 ‘엘리베이터가 어디 있는지’에 쏠려 있던 것 같다. 우리가 도착한 후에도 여러 엄마 아빠들이 각자의 사정에 맞게 속속들이 약속 장소에 모여 들었다. 당초 계획해 둔 ‘o시o분 집결-자기소개’같은 일정은 달아난 지 오래였다. 초면이었지만 소개는 잠시 미뤄둘 만큼 이미 모두가 자연스럽게 녹아나는 분위기였던 것도 같다. 


어느 정도 사람이 모이자 혁이네에서 칼국수집으로 이동해 점심을 먹기로 했다. 칼국수를 먹는 동안 한 아기는 낯을 가리고, 다른 아기는 이유식을 먹고, 또 다른 아기는 수유를 하고.... 아기들은 각자 기고 만지고 빨고 울고 노는 일대 과업을 수행하며 엄마아빠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자그만 골목 안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셨을 칼국수집 할머니의 눈에도 아기 다섯과 어른 십여명이 복작거리는 광경은 감탄이 나오는 광경인가보다. 음식을 갖다주실 때마다 연신 이렇게 많은 아가들이 모인 건 처음 본다며 놀라신다. 덩달아 우리 모두에게도 웃음이 번졌다. 내 끼니는 출산 이후로 늘 2순위였지만, 모두 그러고 앉아있으니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위안을 얻게 된다. 생각해보면 고민 없는 사람 없고, 고민이 하나도 없는 순간들도 거의 없다. 모든 현재진행형의 고민과 힘겨움은 직면하는 그 순간만큼은 올곧게 가장 크고 깊다.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바뀌어 하하호호 웃으며 얘기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만이 약간의 위로가 될 뿐. 흘러가는 시간과 모두가 그렇게 흘러간다는 보편성은 아기를 기르는 엄마와 아빠에겐 가장 큰 힘이 된다.

배에 뭔가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나는 걸 보니 어지간히 식사는 했나보다. 아기 입에 밥 한 숟갈 집어넣는 일이 인생에서 이렇게 중대한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식사가 끝나고 나니어느덧 예매해 둔 영화 상영 시간이 훌쩍 가까워져 있었다. 다시 우리의 베이스 캠프인 혁이네로 돌아와 엄마들은 아기들과 아빠에게 안녕을 고하고 룰루랄라 영화관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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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관 문턱을 밟아본 게 언제일까. 집에서 영화를 본 적은 있지만 커다란 스크린에서 쏟아지는 스펙터클을 느껴본 지는 아주 오래다. 얘기를 나누어보니 다들 최소 1년 이상은 된 것 같다. 오늘 보기로 한 영화는 켄 로치 감독의 「지미스 홀」. 1년만의 관람작을 선택하기 위해 지미스 홀과 「초콜렛 도넛」을 두고 고민했지만, 먼저 영화를 본 친언니가 노동당원들에게 딱! 부합하는 영화라 하기에(그리고 언니도 파주당협 당원이다.) 선택하게 됐다. 감독의 은퇴작이라는 얘기도 선택에 한 몫 했다. 감독의 전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인상깊게 보았다면, 같은 시대적 배경(1920년대 아일랜드 내전 시기)의 이 영화도 나쁘지 않을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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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아기 엄마들은 작품과 상관없이 잠시 눈꺼풀이 내려오는 걸 열심히 막아야 했지만 이내 작품에 빠져들 수 있었다. 주인공이 훈남(!)이기도 했고, 추천의 변대로 실화를 다룬 스토리가 우리 당원들이라면 더 살갑게 느낄만한 내용이었다. 우울한 시대 상황을 그리고 있고, 밝지 않은 결말이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내게 언제까지고 밝은 느낌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영화관을 나오며 사회를 바꾸는 것과 아이를 기르는 것은 비슷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가 배운 건 머릿속에 영원히 남아. 그것은 부술 수 없어.” 이 한 마디 대사가 자녀의 삶 속에 무수히 많은 나이테를 새길 육아위원회의 엄마들에게 깊은 자욱 하나 남겨주었네. 육아위원회가 함께 볼 영화로 참 잘 골랐다. 여성 동지들은 영화관 밖을 걸어나오며 “민중의 집은 지었으니 이제 아이들에게 자전거만 가르치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영화 보러 가걸랑 전화하지 말라고 등을 밀어준 짝꿍들이 있어 아기 엄마들의 영화관 나들이는 육아위원회의 즐거운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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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불 꾸불 좁은 서촌의 골목길을 따라 다시 혁이네로 돌아오니 아기와 아빠들은 계획했던 대로 낮잠도 자고 놀기도 하면서 제법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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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아이돌 그룹 같다.. 단, 품에 안은 아기만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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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들이 무서워 종일 울기만 한 우리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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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고 영화 한 편 봤을 뿐인데 시간 참 빨리 간다. 수유하는 엄마들끼리, 아기를 보살피는 일에서 해방된 아빠들이 각자 다른 공간에서 수다를 떠는 동안 어느덧 해가 저물어갔고, 그냥들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저녁 식사도 함께 하기로 했다. 우리는 아기들 있는 집엔 필수 요건인 좌식 식당에 들어가 뜨끈한 백반과 술 딱 두 병씩을 시켜놓고 빙 돌아 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학생 때를 제외하면 ‘아이 엠 그라운드 자기 소개하기’ 하듯 이렇게 한 명, 한 명 수줍게 소개하는 순간이 생각보다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사람이 고팠던 나는 이 순간이 참 좋았다. 놀이터에서 옆 애엄마에게 말도 걸기 쑥스러워 하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인데다, 그간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었던 탓이다. (집-직장만 존재하는 워킹맘은 더욱 그렇다.) 직장에서는 공간의 특성상 학생들과의 만남과 소통이 더 많은 편인데, 어린 학생들과 소통하는 일도 좋지만 보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나와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이들과의 소통에서 뭔가 배우거나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다. 사람에 대한 갈증이 출산 이후로 더욱 커졌던지라 ‘육아위원회’로서 아기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내겐 참 감사한 일들이다. 나와 같이 육아를 배워가고,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지닌 사람들이 더 많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비록 이 날, 영화보고 그 외의 시간에는 각자 아기들 돌보느라 대화는 많이 못 나눴지만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처럼 모두 좋은 사람들이란 걸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이런 류의 직감은 틀리지 않는다.) 이렇게 부부들이 다 같이 모이는 일이 또 언제 있을지 알 수 없지만(어쩌면 해가 바뀌기 전에 또 만날 지도 모를 일이지만!), 열심히 고군분투하며 육아하는 동지로서 오래도록 연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육아에 울고 웃는 부모들이여~ 육아위원회로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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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운 (노동당 구리남양주당협 부위원장 겸 대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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