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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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논평]

공공주택정책의 ‘파산'을 선언하다
- 9·1부동산대책의 문제점


지난 9월 1일, 정부는 ‘규제합리화를 통한 주택시장 활력회복 및 서민 주거안정 강화방안'(이하 9·1부동산대책)을 내놓았다. 부동산 업계로부터 “부동산규제완화 종결자"(부동산114)라는 평가를 받은 이번 대책의 핵심은, ‘주택시장을 통한 경기부양’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끊임없이 부동산대책을 내놓았다. 이런 저런 조치 등을 포함하면 이번 9·1부동산대책은 10번째 조치에 해당한다. 단일 조치로 가장 많은 대책이 나온 것이고, 사실상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에 있어 ‘부동산 정책'을 빼면 아무것도 없다는 세간의 논평을 확인시켜 주는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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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을 위한, 오직 건설자본을 위한

이번 대책의 특징은 그간 내놓았던 부동산 대책의 맥락을 봐야 제대로 짚을 수 있다는 것이 노동당의 관점이다.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건설사들의 줄도산을 막기 위해 주택 매매시장 활성화를 레버레지로 삼겠다'는 것이 기본 골격이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사실상 민간주택시장을 과점하고 있던 대기업 건설사들은 사업조정에 나선다. 

하지만 정부의 SOC사업 확충도 해외시장을 통한 판로개척도 어려운 상황에서 결국 건설사간 강제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건설사들의 미분양 아파트를 사주어 한숨 돌리게 한 후, 주택매매시장이 조금 오르자 구입 원가대로 건설사들에게 그대로 주어 시세차익을 가져가게 한 것만으로도 부족했던 것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첫 번째 부동산대책은 공공분양을 줄이겠다는 것이 핵심이다(4·1대책). 즉, 대기업 건설사들의 안정적인 시장 보호를 위해 공공이 임대주택 등을 공급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간 지속적인 요구가 있었으나 안전상의 이유로 미뤄졌던 수직증축 기준을 완화했다. 정부가 발 뻗고 나서서 대기업 건설사들의 영업을 뛰어 준 셈이다. 

이를 통해서도 민간주택시장의 거품이 잘 안생기니, 아예 수도권 공공택지 내 분양주택 물량을 줄여준다(7·24 후속대책). 그 뿐만 아니라, 정부가 거간을 서서 민간 분양주택을 임대주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한편, 금융대출을 통해 아예 후분양을 유도하는 등 적극적인 시장조정조치를 취한다. 

문제는 이렇게 대기업 건설사들을 밀어주어도 별다른 효과가 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당시까지 국민들의 소비심리는 매우 위축되었고, 가계부채의 문제가 1년 내내 사회적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취득세율 영구인하 조치에 나선다(8·28대책). 세금을 깎아줄 테니 돈 있는 사람들은 집을 사라고 부추긴 것이다. 이 덕분에 2013년 말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천조 원을 넘어섰다(한국은행). 그야말로 서민들의 주머니를 긁어서 건설사 금고로 이전시킨 것이다.


‘빚내라, 빚내라’에서 ‘재건축 몰아주기'로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2014년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나온 ‘주택기금과 금융공사의 모기를 통합한 ‘디딤돌' 대출’은 임대주택 거주자를 주택소유자로 만들기 위한 대책이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를 초래한 '페니메(Fannie Mae)' 등 주택금융기관이 했던 일을, 바로 2014년 초에 정부가 시작한 것이다. 

뒤이어 민간 임대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한 세제, 금융지원 강화라는 명목으로 임대시장의 기업화를 추진한다. 3월 5일 보완조치 이후 발표된 7·24대책에서는 아예 LTV(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를 각각 70%와 60%로 일괄 적용하는 방안을 내놓는다. 애초 무주택자를 위한 대책이었던 디딤돌론은 주택소유자까지 확대하고, 해외 투기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부동산 투자 이민제 투자 대상’도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그에 따라 나온 대책이 바로 9·1부동산대책이다. 정부는 대책을 발표하면서 전년 대비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고 있으며 매매활성화 역시 뚜렷하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이는 거짓이다. 왜냐하면 이번 9·1부동산대책은 ‘결정판'이라고 부를 만큼 공격적인 대책이며 사실상 9·1부동산 대책 이후, 새로운 부동산대책은 불가능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9·1부동산대책의 핵심은, 일부 언론에서 관심을 보이는 청약제도 개편이 아니다. 그것은 뻔 한 눈 돌리기에 불과하다. 중요한 제도 변화이기는 하지만, 노동당의 관점에서 정부가 이번 대책을 통해서 노리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재건축 거품의 조장이라는 측면이다. 정부는 재건축 연한을 기존 40년에서 30년으로 축소하는 안을 내놓았다. 건설기술이 발전할수록 건물연한이 줄어드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지만, 이를 강남 3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모양새가 더 우습다. 수치적으로야 이 조치로 혜택을 보는 가구수가 3.7만호로 전체의 14.9% 밖에는 되지 않지만, 실제 나머지 85%에 달하는 지역은 재건축 여력이 없어 사실상, 기존 40년 연한 시기에도 재건축이 되지 않았던 곳이다. 

즉, 전체 비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의 수요에 맞춘 정책이냐가 ‘특혜'여부의 관건이라고 볼 때 이번 9·1 대책은 사실상 강남3구에 대한 특혜다. 더구나 재건축 안전기준을 시설물 안전여부가 아니라 매우 주관적인 평가기준인 ‘주거환경' 비중을 40%(기존 15%)로 높임으로서 시설물 안전검사가 사실상 기술검사라기 보다는 욕구조사로 바뀌게 되었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두 번째는 정부의 부동산 공공성 정책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외국의 20% 대에 달하는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말할 것도 없이 여전히 4% 대에 머무르고 있는 공공임대주택 확충계획을 발견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번 대책에서는 그동안 민간건설 주택에서 적용하던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줄였다. 게다가 대규모 택지개발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장치 중 하나였던 택지공급사업을 중단하기로 선언했다. 그 뿐만 아니라 건설사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되던 재개발 재건축의 비리를 없애기 위해 도입한 ‘공공관리자' 제도도 사실상 폐지한다. 

여기에 기반시설 등 공동주택에 필요한 녹지나 행정기관 설치를 위해 운용하던 기부채납도, 지역에 맞게 적용하던 데서 벗어나 국토부가 일률적으로 축소 관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사실상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주택정책의 공공성을 완전히 걷어낸 것이다. 

세 번째는 정부가 담보대출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부분이다. 정부는 주택기금의 대출 방식을 기존의 무한책임대출 방식에서 유한책임대출 방식으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그 전에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는데, 주택가격이 떨어지면(담보가치가 떨어지면) 이를 다른 자산의 청산을 통해서라도 징구했지만 이제는 떨어진 주택만으로 상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무리해서 주택담보대출을 가져다 써도 최종적으로 담보물만 던져주면 관련 채무는 ‘0’이 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거주하고 있는 자가주택 1채만이 담보물일 경우에는 유한책임이든 무한책임이든 크게 상관없이 부담이 된다. 하지만, 자가주택 외에 투자용 주택을 레버레지로 대출을 받는다고 했을 때엔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동산 거품을 통해서 담보가치가 올랐을 때 대출을 늘리고 거품 조정기에 해당 자산을 비부동산으로 돌리면 깡통이 된 담보물만으로도 막대한 차익을 얻을 수 있다. 부담은? 고스란히 주택기금을 책임지는 일반 국민들이 진다. 부동산 투기꾼들의 재산불리기를 위해 정부 기금에 구멍을 뚫어 놓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를 묻게 되는 9·1대책

노동당은 이번 9·1대책은, 그야말로 9(1)1 사태와 같은 재앙이라고 평가한다. 모든 국민이 여전히 4월 16일 세월호 참사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월호진상규명법 제정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때에, 박근혜 정부는 재벌을 위한, 건설사를 위한, 부동산 투기꾼을 위한 그들의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한푼 두푼 오르는 전월세에 시름하고, 팍팍한 월급봉투에 눈물짓고, 세월호 참사에 한숨 쉬는 국민은 안중에도 두지 않은 것이 이번 9·1대책이라고 노동당은 판단한다. 오로지 얄팍한 이윤의 논리에 춤을 추고 자신들의 불법과 특권이 권리인 양 착각하는 ‘그들’만 있을 뿐이다. 정부가 모두의 정부가 되지 못할 때 배제된 국민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2014년 9월 1일, 대한민국의 공공주택정책은, 한 줌 대기업 건설사의 이윤 앞에, 죽었다. [끝]


2014년 9월 3일
노동당 정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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