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책논평]
지주회사 제도 개혁으로 경제력 집중 해소해야
- 대한항공 재벌가 갑질 파문의 교훈
대한항공 직원들이 오늘(5월 4일) 광화문에서 조양호 회장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연다. 직원들이 지배주주 겸 경영자 재벌 가문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여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그조차 신분 노출을 우려해 가면을 쓰고 한다고 한다. 재벌가의 갑질이 어느 수위에 이르렀는지 보여주는 풍경이자 재벌 문제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신호탄이다.
재벌이라는 용어가 한국의 고유명사이듯 ‘갑질’이라는 용어도 그렇다. 그런데 이에 대한 처방으로 보수언론은 재벌 2세와 3세들의 삐뚤어진 인성 탓만 하고 있다. 이런 설명과 비판으로는 올바른 해법이 나올 리 없다. 재벌가의 갑질은 재벌의 소유지배구조와 그러한 소유지배구조에서 비롯된 경제력 집중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대한항공을 핵심 계열사로 하는 한진그룹은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기업집단으로 묶여 있다가 2013년에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소위 ‘자사주의 마법’이 활용됐다. 대한항공이 보유한 자사주 6.76%는 의결권이 없었지만, 인적분할 방식으로 지주회사 한진칼과 자회사 대한항공을 분할하면서 대한항공의 의결권 없는 자사주가 한진칼의 의결권 있는 내부 지분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 결과 조 회장 일가는 자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순환출자 체제에서보다 더욱 확고한 그룹 지배력을 확보하게 됐다. 조 회장 일가의 지배력이 넘볼 수 없는 왕국과 같은데 직원들이 그간 회장 일가의 온갖 갑질에도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현행 지주회사 규제는 인적분할 시 지주회사에 자회사 자사주에 대한 분할신주 배정을 허용하는 등, 총수 일가가 자기 지분의 추가 투자 없이도 방대한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는 여러 경로를 열어 놓았다. 경제력 집중 억제책으로 도입한 지주회사 제도가 오히려 그 반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수년 사이 재벌 그룹들이 너도나도 순환출자 구조에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내막도 바로 자사주의 마법과 같은 지주회사 제도의 허점이 관련 제도 개혁으로 봉쇄되기 전에 막차를 타려는 의도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주무부처의 수장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배구조 투명성만을 내세워 지주회사제도 개혁을 방치하고 있다. 국민경제 입장에서 누가 어떻게 지배하는지 안다고 해서 얼마나 큰 이익이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신호는 이미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김상조 위원장이 규제 강화하려는 일감 몰아주기만 해도 그 구조적 기반은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이다. 자영업 문제도 유통업과 물류 시장에 대한 재벌들의 장악력에 비례해서 심각해졌다. 그리고 세계적인 비웃음을 사는 재벌가의 갑질은 기업집단 소유지배 관련 제도와 이에 따라 가속화되는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지주회사 제도를 미국이나 유럽처럼 개혁하는 것이 시급하다.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대한 분할신주 발행을 금지하고,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보유 비율을 최소 80% 이상으로 상향하며, 손자회사 보유는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재벌가가 자신들의 지분 보유 수준에 합당한 계열사만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사실상의 재벌 해체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도 주요 재벌 대기업의 2대 주주로서 적극적인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지분이면 조 회장 일가의 버릇을 고칠 수 있는 힘이 충분하다. 물론 국민연금 내부의 지배구조 역시 가입자인 노동자와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민주화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당 정책위원회
2018년 5월 4일